바란광야에서
"제 이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민수기 10장 12절]
히브리서 성경의 민수기 제목은 "광야에서(브미드바르)"이다. 시내광야를 떠난 후, 바란 광야에서 일어났던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반복되는 역사들을 수록한 책이 민수기다. 바란광야는 시나이 반도의 북동부, 미디안과 애굽사이의 가데스와 신광야를 포함한 지역을 말한다.
이번 여행중 카이로에서 아카바만에 근접한 타바 국경까지를 버스로 왕복하면서 차창 밖에 전개되는 바란 광야를 바라볼 수 있었다. 간혹 모래 위에 홀로 선 싯딤 나무를 제외하곤 나무도 풀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바위산, 흙산들 사이로 끝없이 펼쳐지는 삭막한 모래만이 있는 광야였다. 바란이란 뜻은 "빛나는 땅"이라는데 아마도 작렬하는 태양빛에 반사된 모래가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은 아닐지... 민수기는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를 계수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는데 당시 그 수가 60만을 웃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2백만 이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 많은 백성들이 풀도 보기 힘든 이런 척박한 광야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방황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도움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곳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고, 반석을 쳐 물을 내 주시고, 구름기둥으로 섭씨 55도 까지 치솟기도 한다는 사막의 태양열기를 식혀 주시고, 불기둥으로 수백 만 백성들의 행군을 인도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광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철두철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훈련장이 된다.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역했던 고라 자손들에게 하나님은 혹독한 심판을 내리신다. 그들 앞에 땅이 갈라져 반역자들을 삼켜 버리고 만다(민수기 16장 30절). 지진을 연상하며 이 구절을 읽었었는데, 직접 이 광야를 지나며 죽음의 원인이 지진이 아니라 사람을 삼켜 버리는 모래 수렁(Quicksand)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는 바로 이 광야를 그의 두 시종과 함께 낙타를 타고 횡단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도중에서 불행하게도 시종 중 하나인 소년 다우드가 모래 수렁 속에 빠져 사라져버리는 참극을 당한다. 이 모래의 소용돌이는 수십 수백의 생명을 자취도 없이 삼킬 수 있는 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행 마지막 날, 버스가 이 광야를 거의 벗어날 무렵 우리 일행은 모래바람을 만났다. 모래가 도로위로 날아들면서 시야가 흐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는 차량들이 속도를 내지 못해 한동안 정체된다. 버스 안까지 매캐한 모래먼지가 들어와 호흡이 불편해진다. 도로변에 눈처럼 모래가 쌓인다.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은근히 불안해진다. 누군가 통송기도를 제안하자 모두들 열심히 기도를 드린다.
버스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마실 물도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엄습해오는데, 이런 모래 바람 속을 걸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포는 어떠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광야에서의 삶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어떤 것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만 그들의 시선을 고정해야 살 수 있음을 배운다. 애굽의 압박에서 이스라엘을 구해주시고, 홍해를 걸어서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기억하며, 바로 이 구원의 하나님이 그들을 언젠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이 바란광야에서의 혹독한 삶을 헤쳐나가게 한다. 이렇듯 시나이 반도 북부의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감을 확립시키는 훈련의 장이 된다.
"사막은 가식을 쳐부수고 진실해질 것을 요구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에 있는 시나이는 확실한 명징성을 요구한다.
막연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왔다가 더욱 확실한 자기 의식을 가지고 떠나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부르스 페일리/Walking The Bible-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나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의 황금같은 40년을 광야에서 떠돌게 하셨다. 미디안 광야, 시내광야, 바란광야... 생존을 위협하는 척박한 곳에서 목초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이름없는 양치기로 머물게 하셨다. 80에 접어든 늙은 목자, 이제는 그의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도망자로 살면서 더 이상 그의 고향이었던 애굽에로의 귀향은 접어둔 지 오래였으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언약의 땅으로 이끌어갈 계획을 벌써부터 하시고 계셨다.
모세는 이 일에 적임자였다. 애굽의 궁정과 정치상황을 알고 그곳의 문화와 학문을 알고 있는 사람. 더구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광야에 대해 모세만큼 알고 있을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는 미디안땅(사우디 아라비아 서편)과 시나이 반도의 광야를 40년의 유목민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속속들이 섭렵했을 터이었다. 어디에 오아시스가 있고, 어느 곳에 양들을 먹일 풀이 있으며, 광야에 불곤 하는 모래바람의 시기와 징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 나름대로의 지식을 지녔을 것이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내몰으신 데는 다 그분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 내버려두심으로 그의 자만심과 교만을 다스리셨으리라.
"궁중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I am something같은 존재였다. 이 말은 왕자의 권세를 지닌 자신을 꽤 가치 있고 대단한 인물로 알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겠다고 발버둥을 친 것이다. ... 광야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I am nothing 같은 존재였다. 거칠고 험난한 광야생활 중에 비로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백이리라. 비우고 낮아지고 부수어져야 하나님이 부르신다. ... 출애굽 40년 동안 모세는 I am everything 같은 존재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붙들어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갈채 받고 환영받는 자리에 있던 모세를 끌어내려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자리까지 가게 하시고, 거기서 준비되고 훈련되어 출애굽의 지도자라는 위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신 것이다." -21세 리더십 에세이/배수영-
모세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허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시내산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자신의 존재목적과 사명을 깨닫게 된다.
광야의 선물: 하나님의 백성이란 정체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출애굽기 2장 23-25절]
고통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락함과 먹을 것과 잠자리가 보장되는 애굽을 결코 떠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히브리인들은 자연스레 애굽의 상위 문화에 동화되어 과연 이러한 민족이 있었는지 알 수조차 없도록 희미하게 사라져 갔으리라. 다른 많은 민족들이 세월과 함께 소멸해 간 것처럼...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민족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로니칼하게도 애굽인의 가혹한 압제가 그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시나이 반도의 사막들을 전전하며, 그 광야의 혹독함,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그 환경 속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곧은 목을 유연케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분인지를 배워갔다. 택하신 백성이라는 정체감, 그 정체감을 찾기 위해 40년간의 광야체험은 필수과목인 셈이었다.
"춤은 기쁠 때만 추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에도 춤을 추면 가슴 저미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춤은 바로 이런 춤입니다. 이스라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광야에서 춤판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는 한결같이 광야와 사막이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춤을 추었습니다. 사막과 광야에서 그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을 기다리던 하나님을 만났고, 모래 바람 소리에서 하늘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춤을 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 걸음씩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스텝에 자신을 맡기고, 천상의 소리에 발을 맞추며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한기채/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춤을-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3장 21-22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정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다. 그리고 말씀을 갖게 된다. 그들의 장막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지고, 그 성막 지성소에 하나님의 법궤가 자리잡고, 그 법궤 속에 십계명을 간수한다. 말씀이 이들 삶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광야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괴로운 광야 생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가운데서 인도하셨다.
주여, 내 인생의 광야 속에서도 내 이기심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이방인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하소서.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 걷는 인생여정이 되게 하소서.
나의 삶의 순간들이 구름기둥이 성막을 덮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며 사는 순례길이 되게 하소서.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1신)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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