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이집트,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wisdomwell 2008. 1. 13. 11:31

이집트,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이집트 시나이 반도 동북쪽해안에 위치한 누웨이바를 출발하여 요르단으로 향한다.  도로는 이스라엘과 이집트국경인 타바검문소에 이르기까지 계속 아카바만의 홍해를 끼고 북으로 이어진다.  3월의 홍해는 늦은 아침 햇살 아래 짙은 청색으로 반짝인다.  바다 해안에는 듬성듬성 지중해스타일의 하얀 집들과 휴양시설들이 눈에 뜨인다. 

 

 

 요르단에 가려면 이집트와 요르단 사이에 불과 수마일 정도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이스라엘 영토인 에일랏을 지나야만 한다.  문제는 일단 이스라엘 입국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이웃의 아랍권 국가들에 입국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을 인도하는 이집트 가이드, J선교사는 모두에게 "No stamp! (스탬프 찍지 마세요!)"를 이스라엘 담당관에게 말하라고 가르친다.  이스라엘이 아랍권의 적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왕따 당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을 넘으려면, 카이로 시내 한복판을 ?고 지나가는 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이곳에는 차, 버스, 인파가 없고 불신만이 들끓는다." 

 브루스 페일리가 그의 여행기에서 지적한 그대로의 분위기이다.  적대적인 기류가 국경을 흐르고 있기에 자연 국경을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을까? 모두들 긴장한다.  이스라엘에겐 그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검문검색이 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가이드는 국경검문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과거의 에피소드를 섞어 거듭거듭 설명하며, 우리를 잔뜩 긴장속에 몰아넣는다.  과거 고추장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에 몇몇은 고추장을 자진 신고하여 가이드에게 아예 맡긴다.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면 그때 찾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집트 출국신고.  여권을 거두어 출국 스탬프를 찍고, 다시 돌려받고 기다리고...  이스라엘에 들어서면서 입국을 위한 사전 인터뷰를 한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전 일행이 약식 인터뷰를 거친다.  그리곤 여권을 검사하고 전산화하는 입국신고, 모두들 "No stamp!"를 20대의 유대인 아가씨에게 앵무새처럼 외쳐댄다.  짐들을 통과시키는 일, 그리고 마지막 통관의례... 한 사람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모두의 발목이 잡히는 공동체이기에 마지막 사람이 통과될 때까지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깔린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의 시종들에게 갈 길을 제지당하고 그들의 짐들을 펴 보여야 했었다.  아, 이를 어쩌나?  막내 베냐민의 곡식자루에 애굽 총리대신이 쓰던 은잔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베냐민만 잡아가도록 둘 수 없어 열 명의 형제가 모두 다시 요셉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것도 애굽(이집트)에서 가나안(이스라엘) 땅으로 향하던 도중의 사건이었다.


 

 

 

 최후의 일인이 검문소를 완전히 통과하고 드디어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모두들 출애굽을 실감하며 환호작약한다.  국경 바로 옆쪽에 새파란 바닷물이 넘실댄다.  종려나무가 그 큰 키를 자랑하며, 수려한 자태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모습이 시원스럽다.  잔뜩 움츠리며 긴장했는데 의외로 그 누구의 가방도 열어보여야 되는 일없이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아카바만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휴양도시 에일랏(Eilat)을 지난다.  2, 3마일 남짓 달리면 요르단이다.  이스라엘 땅이 두 아랍권 국가 사이에서 살짝 손을 뻗쳐 남쪽의 바다를 만지고 있는 형국이다.  에일랏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에겐 얼마나 경제적, 전략적 이득을 줄 것인가?  직접 아라비아와 인도와 아프리카로 연결될 수 있는 요지가 아닌가?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겐 여러 국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불편을 안겨주지만, 유태인들에겐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아카바 만의 항구인 셈이다.  10분도 못되어 우리는 힘들게 입국했던 이스라엘을 다시 떠나는 출국신고를 한다.  입국했다는 도장도 없는데 무슨 출국이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의 직원이 일행을 저지한다.  아직 타바 국경검문소에서 연락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국경에서 시간이 지체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모두가 통과될 때까지....

 

 

 

 짐가방을 끌고 요르단 국경검문소로 가 요르단 입국신고를 한다.  아직 우리를 안내할 요르단의 가이드가 오지 않아 모래먼지가 피어오르는 국경에 몇 분간 앉아 휴식을 취한다.  단 10분이면 올 수 있는 타바 이집트 국경에서 이곳 요르단 국경까지의 그 가까운 길을 세 개의 나라를 지나느라 약 3시간을 소요한 셈이다.  유럽 여행하며, 여러 나라를 통과하면서도 이런 검문소를 거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여행을 수월하게 했었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하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 걸리지 않았나....


 

 드디어 요르단을 안내할 가이드 이집사님이 밀짚모자처럼 챙이 큰 모자를 쓴 채 우리를 맞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요르단에서의 성지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버스는 아카바만을 뒤로 한 채 북으로 향한다.   "저 뒤편이 아카바입니다."  아카바!(Aqaba)!  1917년 8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베두인 족 반란군과 함께 오스만 터키 주둔군을 기습공격으로 대파한 곳, 터키군의 요새와 대포가 있었던 곳 그곳이 바로 아카바이다.  지금은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이자 휴양도시로 그 쾌적한 날씨와 아름다운 바다로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다.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가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저희가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 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왕상 9장 26-27절]

 그 옛날 솔로몬 왕은 이 아카바로 추정되는 곳에서 조선사업에 일가견이 있는 두로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상선을 만들어, 아라비아, 인도,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뱃길을 뚫었다.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 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 [열왕기상 10장 11, 12절]

 솔로몬은 또한 이 홍해 해안에 무역 선단을 만들어 바다 건너 먼 지역과 무역해 엄청난 양의 보석을 들여오기도 했다고 성경은 기술한다. 

버스는 무사히 국경을 넘은 기쁨에 긴장이 풀린 일행을 싣고 그 유명한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질주한다.  솔로몬이, 또 스바의 여왕이 그 수행원들을 이끌고 화려한 행렬을 이루며 바로 이 길을 지났으리라...

 

 

 

 버스가 와디럼으로 향하는 사막길로 접어들면서, 가이드 이집사님이 이곳 역사를 이야기한다.  비잔틴 시대 이후 성지순례가 본격화되면서, 순례자들은 이 뜨겁고 척박한 광야길을 걸어 순례길에 나섰다.  때로는 풍토병에 쓰러지고, 도적떼의 표적이 되었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 머나먼 여정에 오르곤 했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러한 순례자의 순례길을 확보키 위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편하게 안락한 버스에 몸을 싣고 쉬운 순례길에 오른 셈이다.  물걱정, 음식걱정, 잠자리 걱정 없이....  우리는 오늘 밤 이 광야의 한 천막에서 경험삼아 하룻밤을 잘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세월을 이 모래 위에 누워 밤을 보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1신 (2006년 6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