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성지순례 1] 하나님의 산-시내산 등정

wisdomwell 2007. 10. 27. 11:30


 

 

 하나님의 산-시내산 등정

 

"한 가지 대답은 이미 분명해졌다. 그것은 사막이 아주 정신적인 땅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막의 산은 깊은 영감을 준다." -부루스 페일리/워킹 더 바이블

 

시내산 등정이 계획된 날이다. 시내산은 홍해 북부에 돌출한 시나이 반도에 있는 산이다.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바위산이다. 반도의 남단, 시내광야의 산악지대에 있는 한 산이라는 것 외에 이 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가장 유력시되는 견해는 시내산을 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나오는 호렙산 줄기의 최고봉 무사산[아랍명 Jebel Musa(모세의 산); 2285m]과 그로부터 3.2km 서남쪽에 있는 카타린산(2,621m)과 서북쪽에 있는 '라스 에스 사프사페(Ras es-Safsafeh; 1993m) 사이의 세 정상중 한 곳으로 잡고 있다. 그중에 무사산이 출애굽에 등장한 시내산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주장이다.

 

시내산은 일찍부터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 인식되었고, '야웨의 산'으로도 불렸다. 양을 치던 모세가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받은 곳도 이 산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후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곳도 이곳에서였다.


 

시내산의 낙타와 베두인 안내인

- 당신의 인생여정의 안내자는 누구입니까? -

 

 

누웨이바의 한 호텔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새벽 12시 30분 시내산을 향하여 떠나다. 모세에게 있어 시내산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 자신이 누구이며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함께 깨닫게 된 성스러운 산이었다. 모세가 그랬었던 것처럼 나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재확인하는 시내산과의 만남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 가슴에 차온다. 버스 창 밖을 보니 별이 요란하다. 두 시간 가량 사막길을 달려갈 터인데 어두워 사막은 보이지 않고, 대신 버스 차창으로 까만 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새벽 2시 30분경, 시내산 밑 주차장에 도달하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데, 주차장의 작은 구멍가게만은 시내산 등정을 앞둔 사람들에게 음료수와 스낵을 파느라 불을 밝혔다. 주차장에서 성 카타리나 수도원 부근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낙타를 타기 위해 대기했다. 어둠 속에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오직 하늘에 가득 박혀있는 별을 보는 것이 기쁨이었다. 줄을 서서 낙타 몰잇군이 와서 안내할 때를 기다린다. 난생처음 짐승의 등 위에 타는 경험이었으므로 흥분도 되고 조금 겁도 났다. 어제 한 한국사람이 낙타에서 떨어졌다며 휠체어를 타고 옮겨가는 것을 휴게소에서 본 기억이 있기에 더 그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베두윈 한 청년이 나의 손을 마구잡이로 끌더니 조금 걸어가 앉아있는 낙타에 타게 했다. 낙타가 청년의 지시에 따라 너무 급히 일어나는 바람에 허리가 뒷 안장에 부딪쳐 아픔이 느껴졌다.

 

긴장이 되었지만, 가능한 한 유연하게 낙타의 걸음걸이의 리듬과 나의 자세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깜깜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벌써 나의 앞쪽으로도 많은 낙타들이 산을 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아릭! 아릭!" 낙타를 모는 베두윈 청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들렸다. 그러자 나의 낙타가 갑자기 앞쪽으로 뛰다시피 내닫는 것이었다. 앞쪽 안장 손잡이를 잡는 손에 자연 힘이 들어간다. 내가 탄 낙타는 다른 낙타들을 추월하며 계속 앞쪽으로 앞쪽으로 내달았다. 산을 오르고 있었음에도 힘좋게 빠른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나의 몸무게가 다른 이들보다 가벼워서 신이 난 걸까? 체중이 작은 편이어서 낙타에게 덜 부담이 되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릭! 아릭!" 청년의 목소리가 어둠을 깨곤 한다. 그건 그렇고 이 낙타는 왜 이렇게 다른 낙타들을 젖히며 앞서가는 것일까? 어떤 때는 좁은 산길을 추월해 가느라고 내 발이 양쪽으로 다른 낙타들의 몸통 사이에 끼기도 해서 애를 먹었다. 점프하듯 내달리는 낙타였지만 긴장을 풀고 낙타의 달리는 리듬에 적응해갔다.

 

까만 하늘에는 내가 전갈좌로 기억하는 별자리가 계속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한밤중의 사막속의 산이었음에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할 정도의 온도였다. 그저 가파르게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뿐, 정작 이 모세의 산의 모습은 암흑속에 잠겨 있었다. 모세는 이 산에서 40주야를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며 보내지 않았던가? 사막의 산 속에서 총총 하늘에 박혀 빛나는 별들을 보며 낙타의 보조에 나의 몸을 의지한 채 약 한 시간 가량 산을 오르니 산 중턱에 베두윈 사람의 휴게소 불빛이 밝게 빛났다. 드디어 낙타에서 내릴 지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계속 추월해온 나의 낙타 덕분에 우리 일행 중 가장 먼저 낙타 종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휴게소는 먼저 온 다른 그룹들로 벌써부터 붐비었고 베두윈 가게 주인은 뜨거운 물과 커피로 손님을 끌고 있었다. 천막 안, 길다란 카펫이 깔린 돌의자에 앉아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한 사람, 한 사람 도착한 일행들은 그들의 낙타여행 경험을 나누기에 부산했다. 모두들 특이한 경험인지라 흥분된 분위기였다.

 

"어찌나 안장이 좁은지 허리에 계속 부딪쳐서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휴게소 오기도 훨씬 전에 내려놓고 글쎄 걸어가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아주 좋았어요. 옆에서 도와주고 낙타 등에 발도 올리도록 도와주어서 잘 왔어요." 만족한 미소가 흐른다. "어머, 나는 낙타 등에 발을 올려놓으려니까 못 올리게 하더라고요.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오려니까 힘이 들었는데..." "처음부터 안장이 비뚤어졌는데, 바로 잡아주질 않는 거예요. 안장이 떨어질까 봐 계속 애를 먹었지요. 계속 낙타를 위해 기도했어요. 낙타가 잘 가도록 낙타에게 이야기하며 왔지요"

 

맨 마지막으로 도착한 분의 이야기. "내 낙타는 영 힘이 없는지 잘 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계속 힘이 들어하며, 못 가니까 몰잇군이 채찍질을 해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낙타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어요."

 

 

사람마다 각각 다른 낙타 경험이 있었다. 어떤 낙타, 어떤 몰잇군과 만났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나의 낙타를 몰았던 그 청년은 아마도 다시 산을 내려가 또 한 번 사람을 태우려는 욕심에 그렇게 거칠게 낙타를 몰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낙타에서 떨어진다면 과연 그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시내산에서 죽은 관광객을 산밑에까지 태워주지 않겠다고 해서 보통 10불이면 되는 것을 60불을 주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상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단 한 시간의 낙타체험이었었는데 그 낙타를 모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자세로 그의 일에 임하고 있었는가에 따라, 모두들 전혀 다른 체험을 한 것을 전해 들으며, 우리 인생이라는 여정에서의 만남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다시금 생각케 되었다. 좋은 친구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고전과의 만남....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인생 여정을 각각 다른 빛깔로 채색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신(神)과 만나느냐? 하는 것이리라. 그 만남은 단지 이생뿐만이 아니라 영겁의 세월까지 끝없는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가능한 한 고객이 불안하지 않도록,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산을 오르도록 배려해주며 낙타를 모는 친절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고객이야 어찌 됐든 나의 돈벌이가 급해 낙타를 다그친 몰잇군도 있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암흑속에서 우리는 그저 모든 처사를 이 낙타를 모는 사람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낙타가 잘못된 길로 가든 함부로 뛰어가든 중도에 서버리든 그것은 오직 이들의 지시에 달려 있었다. 인생의 나그네길도 그런 것이 아닌가? 과연 이 길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파멸의 나락으로 가고 있는지... 나를 안내하는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과연 나는 어떤 신에게 나의 인생길을 의탁하고 있는가? 끝까지 나를 사랑하며 책임져 주시는 신이 나의 인도자인가? 아니 무신론자처럼 전혀 믿을 것이 없는 "나"라는 신을 믿고 있진 않은가? 물질이 나의 신인가? 명예가 나의 신인가? 나의 이기심에 이끌려가는 삶은 아닌가? 아니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진 않은가?

 

시내산을 오르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생각해본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애굽기 20장 3절] 제 1계명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셨는지 낙타를 모는 베두윈들을 보며 생각해 본다. 친절한 베두윈 안내인과 돈벌이가 앞서는 거친 베두윈 사람, 그중 어떤 이를 만났느냐에 따라 여행길이 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거짓 신들을 만날까봐 경계하셨다. 그 신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당할 파멸을 아셨다. 죽음의 길, 심판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을 아셨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첫 계명을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너의 하나님이니 나의 말에 순종하라고... 그것이 너희가 파멸이 아닌 구원의 길로 가는 것임으로.... 애굽의 그 많은 신들, 가나안인들의 신들, 이방의 신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 위에 뛰어난 신이신 당신의 인도함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올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셨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선택한 백성들의 살 길이므로..

"지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참된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R. A. 토레이-

 

시내산 정상의 해돋이 -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감

 

휴게소에서 다른 그룹의 가이드가 우리 일행의 가이드에게 전하는 말을 들었다. "오늘 나이지리아 사람 하나가 시내산에 오르다가 죽었대요. 심장에 이상이 있었나봐요." 일 년에 평균 두세 사람이 시내산 등정에서 사망한다는 안내 선교사의 이야기였다. 찬 공기와 급격한 경사가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리를 줄만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시내산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이제부터 시내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걸어서 800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일이 남았다. 꽤 가파른 돌계단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플래시를 비추며 암흑속의 돌산길을 올랐다. 평소 산책습관이 여기서도 도움이 되었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힘든 줄 모르고 정상 바위산 바로 밑 또 다른 휴게소에 이르러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모두가 도착한 후, 임목사님의 인도로 시내산 정상 베두윈 휴게소에서 새벽예배를 드렸다.

 

 

사람들이 시내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바위 산 꼭대기로 너도나도 무리지어 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왔는지... 동편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들 바위 위에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한 채, 뚫어지게 태양이 떠오를 동편을 향해 시선을 집중한다. 붉은 태양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여졌다. 드디어 시내산의 바위들이 떠오르는 아침햇살로 더욱 더 붉게 물들어진 채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없이 골이 깊게 파여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 나무도 없고, 풀조차 보기 힘든 울퉁불퉁 험한 바위산. 여명의 빛 속에서 하나님의 산 호렙의 장엄한 모습이 펼쳐진다. 아, 그 옛날 모세가 양떼를 몰고 다니던 모세의 산이구나...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산....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산, 제벨 무사. 출애굽의 사명을 완수한 후 다시 돌아와 십계명을 받던 성스러운 산, 호렙이구나.... 그리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던 산.

 

시내산의 장엄미가 넘치는 해돋이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들 속에 웃음이 감돈다. 잔잔한 감격이 눈 아래 보이는 연이은 바위 산 연봉들의 물결처럼 얼굴들 속에 파도친다. 모세는 가슴이 시려오는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서 시내산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았으리라. 그의 외로움이 깊은 고독으로 변하는 때,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셨고, 또 모세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셨다. 고독의 심연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주셨고 그에게 정체감을 주셨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안 사람은 사명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에...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고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출 19장 20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21장 3-6절]

 

하나님께서는 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으로 규정해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서 일년간 유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들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도록 그들의 삶을 인도할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출20:1-17).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절대적인 은혜였다.

 

 

십계명(말씀), 삶의 기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끝까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십계명과 율법들을 주셨다. 말씀을 주셨다. 당시의 다른 신들과 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 사이엔 이런 언약관계가 없었다. 말씀이 없었다. 이방의 신들은 단지 각기 개인들의 이기심에 근거하여 숭배하는 신일 뿐이었다. 신들을 기쁘게 하여 내가 짓는 농사가 잘 되어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기에 말씀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물질적인 복만을 바라는 우상숭배였기에 말씀이란 기준이 필요 없었다. 나의 이기심, 내 가족의 편안한 삶이 목적이었기에 말씀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런 신들과는 다르셨다. 하나님은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임을 선포하셨다. 약속하셨다. 그들을 구원해 냈고 앞으로 구원해 가실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그 언약의 일환으로 제일 먼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셨다. 사십 주야 시내산에 머물며,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것은 율법이었다. 말씀이었다.

 

 

십계명의 근거는 당시 다른 이방의 종교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 이기심에 근거한 것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섬길 것(1-4계명)과 다른 이웃들을 배려할 것(5-10계명)을 명하신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그 근간을 이룬다. 하나님과 이웃들을 내 몸을 사랑하듯 사랑했을 때, 진정한 나 자신의 풍성한 삶도 뒤따라오는 것임을 역설한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말씀이란 삶의 기준을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이 없는 다른 백성들과는 차별화된 삶을 살게 된다. 말씀이 없는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부화뇌동한다. 바람 부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중심의 축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말씀을 가슴에 새긴 사람들은 그 말씀이 삶의 등불이 되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

 

점차 퍼져가는 아침햇살과 함께 어둠속에 잠겼던 바위산 줄기줄기들이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하나님, 당신께서 나의 하나님 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당신의 딸로 택하여주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책임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하산길은 깍아지른 듯 가팔랐다. 돌이 많은 길이었고, 그 많은 순례객이 다녀갔을 텐데도 여전히 좁은 오솔길이었다. 모세가 이 산에 양떼를 몰고 왔을 그 옛날에는 길도 없는 험한 바위산이었으리라... 길 중간 중간에 베두윈 낙타 몰잇군이 "낙타! 낙타!" 한국어로 외치며, 낙타를 타고 갈 손님을 부른다. 그런가 하면, 시내산에서 나는 수정이 있는 돌들, 달걀 모양의 돌등을 파는 아랍인들도 있었다. 나무가 없어 산 아래의 길들이 굽이굽이 내려다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내산 아래 광야에 장막을 치고 일년을 지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성막을 만들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르비딤을 지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9장 2절]

드디어 모세의 산을 내려와 카타리나 수녀원의 황갈색 높이 치솟은 돌담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산기슭에는 그래도 나무들이 몇 그루 눈에 뜨이고, 비가 오면 물이 흐를 것 같은 와디도 보였다. 이 제벨 무사 동쪽 기슭에 있는 그리스정교의 성(聖)카타리나 수도원은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이 서고에서 1844년 시나이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시나이 사본은 4세기에 만들어진 헤브라이어 성서 사본으로서 성경 원문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금요일엔 문을 닫는 관계로 수도원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0신)에서 [2006년 5월]  사진: 2006년 4월 이집트 시내산에서 촬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