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터키, 그리스

아름다운 폐허-에베소(Ephesus)에서

wisdomwell 2011. 8. 24. 16:16

베일이 벗겨지는 고대(古代)도시, 에베소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사도행전 19장 17절]

 

 

 

사데교회가 있는 살데스에서 셀죽(에베소의 현재 이름)으로 가는 지름길은 구불구불 재를 넘어가는 산길이었습니다. 노오란 색, 하얀 색의 산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보즈산(Bozdaglak, 2,137m), 정상에 오르니, 산 아래 농가들의 모습이 옹기종기 정겹게 펼쳐집니다. 버스가 산을 내려갈수록 해묵은 올리브 나무들이 온통 산 구릉을 덥고 있었습니다. 진홍색 파피꽃들이 에게해와 에베소가 멀지 않았음을 암시해 줍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저는 새삼스레 제가 에베소를 참 좋아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저의 표정이 유난히도 밝고 명랑했습니다.

에베소에 이렇게 거대한 문화 유산이 있었을 줄은 저 자신도 미처 몰랐었기에, 폼페이에 버금가는 고대의 유적들을 보면서 그저 싱글벙글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수 차례의 지진으로 땅속에 파묻혀 있다가, 지난 1970년대에야 발굴이 시작되어 수줍은 신부의 베일이 벗겨지듯,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고대의 도시입니다. 약 30% 정도의 발굴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진귀한 유적들이 또 선을 보이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관계로 더 이상의 훼손을 입지 않은 채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결과라는 생각도 듭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터키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요소 때문에 이 고대의 도시, 에베소는 다양한 나라들과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겪어내야 했습니다. 현재 볼 수 있는 유적은 로마제국이 남겨준 것들입니다. 에베소라는 이 에게해 연안의 도시가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된 것은 BC 1세기경의 일이었습니다. 대리석이 우아하게 깔려진 1,2세기의 로마의 가도(街道)를 걸으면서, 이 곳에서 3년 가까이 거주하며, 이 길들을 오고 갔을 사도 바울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제게는 퍽으나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벤허나 스팔타카스 같은 영화를 통해 보곤 했던 로마제국의 스케일 큰 석조 건축물들의 잔해들이, 비록 무너져 내리긴 했으나 아직도 그때 그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어, 보는 것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습니다.

 

민회(民會)가 모이곤 했다는 음악극장 오데온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극장으로 거의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을 좋아해서인지 이런 극장만 보면 우선 가슴부터 설레곤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2차, 3차 여행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에베소는 인구 30만 명의 대도시였고, 클레오파트라가 쇼핑 여행을 올 정도로 활기에 찼던 상업과 종교와 유행의 도시였습니다. 에베소 시의 중심가, 큐레테스 스트리트에는 여러 로마의 황제들에게 헌정된 신전들과 기념건물들이 늘어서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목욕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목욕탕의 유적(온탕, 냉탕, 쉬는 방, 독서실, 탈의실이 구비됨)들, 병원을 알리는 뱀을 조각한 병원 간판이 있는가 하면, 창기들의 집이 가까이 있다고 표시된 싸인이 길옆 돌 위에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세상적인 풍요를 안겨준다는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숭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들을 신성시하는 황제 숭배, 영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는, 물질적인 번영과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세속의 물결이 팽배한 곳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 에베소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공존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관을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작은 물고기처럼, 그렇게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의 복음 전파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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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영순, 새벽에 쓰는 편지 (터키 성지순례) 

사진: 터키, 에베소 (Ephesus)에서.  200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