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Silk Road)을 지나며
하나님의 기기묘묘한 조각 작품들이 대규모로 펼쳐져 있던 터키의 중부 갑바도기아의 들판과 골짜기를 뒤로 하고, 황토흙이란 뜻을 가진 아바노스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갑니다. 터키에서 가장 긴 크즐으르막 강이 마을을 적시며 흘러가는데, 물빛이 황토색이어서 붉은 강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곳의 붉은 흙들은 도자기로 변신해, 테라코타란 이름의 터어키 토산품 도자기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일반 민가(民家) 같은데 집 바깥 벽에 수십여개의 황토빛 도자기들이 여기저기 걸려져 있는 풍경이 이채로웠습니다.
*** 도자기와 카펫으로 유명한
갑바도기아의 작은 도시 아바노스(Avanos).
손으로 직접 카펫을 짜는 터키의 여인과 함께.
아바노스와 네브쉐히르, 이 갑바도기야 도시에서 악사라이를 거쳐 코냐(옛이름: 이고니온)에 이르는 길이 바로 그 옛날 실크로드가 지나던 길입니다. 버스로도 3시간 남짓 걸리는 먼 길이었습니다.
기원 전 11세기 이후 셀죽 투르크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이 길을 지났을 것입니다. BC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의 야망을 품은 채 다다넬스 해협을 건너 중부 아나톨리야 지방의 이 길을 지나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원 전 5세기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가 또 이 곳을 통과했습니다. 정복을 위한 대 장정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무역을 위해 수많은 캐러밴들이 동서양을 잇는 이 황량한 광야길을 여행했을 터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 아바노스의 카펫 공장. 20여개의 카펫을 펼쳐보이며, 일행에게 카펫을 선전한다. 아름다운 문양이었다.
강수량이 적어 척박하고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듬성듬성 보이던 포플러나무들과 지은 지 오래되어 낙후되어 보이던 초라한 집들도 악사라이를 지난 다음부터는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악사라이에서 보이던 터어키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핫산 산(3,268m)도 점차 시야에서 멀어지고, 해발 1천 미터 고원지대를 버스가 달립니다. 가끔씩 길게 누운 낮은 산들이 멀리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길은 지평선을 안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평원 혹은 사막지역을 끝도 없이 달리는 것처럼, 중부 터어키의 이 비단길도 무작정 황량한 광야를 횡단해 갑니다. 옛날에는 약 25km 정도 달리면, 그 곳에 캐러밴들을 위한 여인숙 같은 쉼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25km마다 쉼터가 있었던 이유는 타고 가던 낙타들이 약 25km쯤 걸으면 더 이상 가지 않고 요지부동 멈추어 서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인지라,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할 것이고, 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온이 급강하할 것입니다. 척박한 땅, 물도 구하기 힘들어 갈증에 시달리는 길이었겠지요. 버스를 타고도 지루한 길인데, 낙타나 노새를 타고, 혹은 도보로 이 길을 갔을 것입니다. 어둠 때문에 더 가지 못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밤을 보내기도 했을 터입니다. 자연과 짐승과 강도의 위험이 숨어 있는 길. 이 길로 수많은 사람들을 내어 몬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영토확장의 야망과 물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욕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이 길을 지났던 또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목적 때문에 이 광야의 위험 속에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복음 -- 예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일념만으로 이 실크로드를 지나간 사람 --, 사도 바울이 그 사람입니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 26, 27]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뜨거운 열정을 갖게 했을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 24]
바울로 하여금 세 차례에 걸친 목숨 건 여행길을 떠나게 한 것은 주께서 주신 사명감이었습니다.
실크로드.
광야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평선 위에 지는 해가 구름 속에서 잠시 그 붉은 얼굴을 드러냅니다.
2천년 전 복음전파의 사명을 안고 미지의 도시, 이고니온을 향하여 이 길을 가던 사도 바울에게 비추이던 저녁빛이 오늘도 비단길을 붉게 물들입니다.
글, 사진: 이영순. 지혜의 샘 블로그 터키 갑바도기아, 아바노스, 실크로드에서.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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