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신 물이 있는 나라, 레바논
2006년 3월 25일, 아침 7시 반 경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출발, 요르단과 시리아 국경을 통과, 다마스커스에 위치한 사도바울 회심과 관련된 유적지들(바울이 아나니아를 만났던 곳, 직가, 사도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피신했던 곳을 기념한 사도바울교회)을 방문한 후,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에 이른 것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였다.
*** 시리아를 떠나며.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엔 시리아 대통령의 사진이 커다랗게 검문소를 장식하고 있었다.
**레바논 입국을 앞두고, 레바논 국경 검문소에서. 백향목이 그려진 레바논의 국기가 뒤에 보인다.
요르단과 시리아의 입,출국과는 달리 레바논의 입국시엔 단체로 입국신고가 되지 않고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개별적으로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이스라엘과의 준 전시상태여서인가? 입국절차가 까다로워서인지, 국경엔 수많은 차량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차돌을 입고 여행하는 아랍여인들도 심심지 않게 눈에 뜨인다. 우리 일행의 여권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있는 레바논 관리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어, 순서를 기다리는 일행들 역시 혹시나 그 관리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으려고 농담도 삼간 채, 굳어진 표정이 된다.
국경에서 한 시간 이상을 보낸 뒤, 드디어 입국이 허락되어, 레바논 땅을 달린다.
나무도 보이고 숲도 보인다. 사막의 열기와 메마름으로 초록빛을 볼 수 없었던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의 광야를 사흘 간 여행한 후, 만나게 된 레바논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자연 풍광의 넉넉함, 비를 뿌릴 수 있는 구름들, 초록빛이 주는 평온함. 저 멀리 눈을 얹고 있는 안티 레바논 산맥의 싱그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감정은, 안도감.. 이곳이야말로 사람이 살 곳이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 레바논인 안내인 레즈리와 레바논 산 위에 백향목
새로운 안내인으로 버스에 오른 레바논 여인 레즈리 또한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친절하게 레바논을 소개해준다. 레바논의 총면적은 10,452 sqKm로 남한 면적에 20분지 1 밖에 되지 않는 소국가이다. 남북의 길이가 210km, 동서의 거리 중, 가장 긴 곳이 70km이다. 네 개의 평행선이 레바논을 종단한다고 레즈리가 설명해 준다. 제일 서편으론 지중해가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다음엔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레바논산의 산줄기, 바로 그 다음이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남북으로 통하는 골짜기 길, 그리고 맨 동편에 안티 레바논 산의 줄기가 이들과 평행선을 그리며 남과 북을 잇는다.
우리가 탄 버스는 국경을 통과, 레바논 산과 안티 레바논 산의 줄기들을 양옆에 낀 채, 로마 시대 신전의 유적지로 유명한 바알백을 향해 달린다.
**** 바알백ㅡ거대한 신전의 유적지
황량하여 아무도 살지 않던 땅이 대부분인 요르단과는 달리 곳곳마다 집이 있고 밭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늦은 비를 만나 밭갈이가 한창이고, 어느 농가엔 복숭아꽃인지 핑크빛 과일나무들의 꽃들이 화사하게 대지를 덮고 있다. 연두빛 새싹들이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돋아나며, 생명을 노래한다. 농업은 레바논의 주요산업 중 하나다. 해안 낮은 산언덕에서 올리브, 체리, 자두, 사과, 포도 등 과일들을 재배하여 이웃 중동 국가들에 수출한다.
***안티 레바논산맥의 눈 덮인 산줄기를 배경으로 농가의 과일나무들이 핑크빛 꽃을 피운다. 레바논의 봄이다.
레즈리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레바논이 다른 점 3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휴일이 금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는 것, 둘째, 사막이 없고 그 대신 산과 눈이 있다는 것, 세째, 석유 대신 물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 다른 점 속에서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산업이 함축돼 있음을 알게 된다.
물이 풍부하고 농작물이 풍요한 나라이기에, 옛 페니키아(성서명: 베니게)로 부와 명성을 누렸던 레바논은 주변 정복자들의 끊임없는 야욕의 대상이 되는 운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강대국들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따라, 앗씨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비잔틴, 아랍, 맘룩, 오트만, 그리고 프랑스가 차례로 이 땅의 정복자가 되었다. 1943년 독립국가가 될 때까지...
레바논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대륙의 문화가 퓨전을 이루는 나라다.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개방적인 편이고, 다 문화의 나라답게 종교도 다양하다. 아랍계의 시아파(26%), 수니파(27%), 드루즈(7%)와 함께 다른 아랍국가에서는 찾기 힘든 기독교인들이 전체 인구의 41%를 차지한다. 민주공화국으로, 선거를 하면 대통령은 기독교인 중에서, 총리는 아랍 수니파로, 국회의장은 모슬렘 시아파에서 선출된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와 민족간의 파벌로 갈등의 불씨가 잠재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진: 2006년 3월 하순 시리아, 레바논에서 촬영
글: 이영순 성지순례기 (지혜의 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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