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길을 걸으며
아침 오랜만에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작은 나무다리 옆에 버들강아지처럼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LA의 건조한 날씨 탓에 늘 말라있는 시내이지만, 그래도 겨울철 우기엔 제법 다리밑으로 물이 흐르곤 합니다. 그리고 공원에 시내가 흐르는 곳에는 영락없이 봄이면 이 노란 버들강아지 꽃이 봄의 서곡을 연주하듯 싱그럽게 피어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 1-3]
선명한 노란 색이 산책객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버들강아지 꽃이 핀 걸 보니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구나.!! "
우와! 노란 버들강아지 꽃들 사이로 화사한 연분홍 벚꽃들도 그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군요.
벌써 사오년 전 일입니다. 공원 입구에서 시작해서 약 200m 남짓 되는 산책로 양편으로 자그마한 벚꽃나무 묘목들이 심겨졌고 나무와 함께 가로등이 길 주변에 세워진 것은....
벚꽃나무 묘목이 심겨진 다음 해에는 아직 어려서인지, 나무가지는 봄이 왔음에도, 묵묵부답,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 묘목들을 보며, 나는 벌써 쌍계사로 가는 화개장터의 벚꽃 십리처럼 여기에도 벚꽃들이 아치를 그리며 필 날들를
마음속에 그려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제법 꽃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벚꽃길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다리 앞에 작은 기념비 앞에 발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25살, 막 날개를 펼쳐야 할 나이에 타계한 한 젊은 청년을 기리며, 그의 대학 동창생들이 만들어 놓은 벚꽃길.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고, 또 삶에 대한 열정을 지녔던 아들이자 친구인 청년을 위한 헌사의 팻말이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꿈많은 청년을 예기치 않게 빨리 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져 옵니다.
화사한 벚꽃길과 젊은이의 죽음.
왠지 두 가지가 서로 부합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벚꽃처럼, 낙화가 되어 사뿐히 신의 품에 안긴 청년을 생각하며, 벚꽃길을 걷습니다.
.
슬픔 가운데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길을 생각해 내고
정성껏 마음을 모아 봄이면 봄마다, 그 환한 미소로
공원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도록
벚꽃길을 만들어준
따뜻한 가슴, 부드러운 손길들에 감사합니다.
해가 다르게 벚꽃들은 더 풍성하게 피어납니다.
지금은 아직도 작은 나무들이지만, 몇 해가 지나면,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 꽃 그늘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
벚꽃길에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피어난 벚꽃을 봅니다.
먼저 핀 꽃들은 바람이 불면,
꽃눈이 되어, 꽃비가 되어
떨어져 내립니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시구절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꽃들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이 벚꽃이 피기까지 애썼던 수많은 손길들,
그리고 이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햇빛과 바람과 비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분이 주신 풍성한 아름다움을 누리고 기뻐할 때입니다.
벚꽃이 활짝 피었으니 말입니다.
글, 사진: 이영순. 2009년 3월 Schabarum Park (Rowland Heights, CA. US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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