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제자들은 ...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요한복음 21장 8-12절]
숯불이 있는 바닷가의 아침
어린이들과 2박3일 캠프장에 가게 되면, 첫째날 아침엔 낯선 곳에서 만나는 첫 아침이어서 그런지, 훤히 동이 터 오면서부터 아이들이 부지런한 새들처럼 일어나 이곳 저곳을 탐색하며 뛰어 놀곤 합니다. 그러나 둘째날 아침은 그 양상이 돌변하고 맙니다. 전날 하루종일 성경공부며 수영, 뱃놀이, 게임 등 빡빡한 일정 탓인지 모두가 기상시간으로 정해놓은 일곱시가 되어도 곤하게 자느라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덕분에 상큼한 새벽 공기를 즐기며 아무도 없는 아침 바닷가를 혼자 거닐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젯밤 캠프 화이어를 했었던 바닷가에 발이 멈추어졌습니다. 아직도 타다 남은 장작에선 푸른 연기가 조용히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모닥불 주변에 의자 대용으로 놓여져 있는 통나무 위에 앉아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작은 나무 십자가와 그 위에 떨어져 내리는 아침 햇살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나무 십자가를 휘감는 연기를 보며 지난 밤 여기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려봅니다.
어젯밤, 이곳에는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모였었습니다. 바닷가의 캠프장에 걸맞게 이색적인 파티가 열렸었습니다. 이름하여 생선구이축제? 몇몇 집사님들이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서 어림해서 삼 사십 마리의 대구, 도미 등등의 생선들을 잡아가지고 오셨습니다. 어떻게 잡았을까? 놀랄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생선들이었습니다. 그 생선들이 알루미늄 종이에 싸여져,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생선이 구어지자, 삼삼오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리씩 분배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생선 두 마리를 무리에게 나눠주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듯이... 모두가 바닷가의 밤 속에서 배부르도록 구운 생선을 먹었었습니다.
어제 생선을 구워냈던 모닥불의 나무가 이제는 숯이 되어 아직도 연기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언제 보아도 서정적이며 여운을 길게 남기는 요한복음 21장의 바닷가 장면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실의에 잠겨 다시 어부생활로 돌아간 사랑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찾아 디베랴 바닷가에 가신 이야기.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의 장면들을 그대로 재현하심으로써 그들을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불러 주시는 주님의 모습이 기록된 요한이 쓴 복음 마지막 장.
특별히 21장 9절의 묘사가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제자들을 위해 친히 조반으로 생선을 굽고 떡을 준비하신 예수님의 자상한 모습을 그려보며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옴을 느꼈습니다. 아침 바다를 배경으로 통나무 장작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주님이 바로 이 자리에서 생선을 굽고 계신 듯한 친밀함을 맛볼 수 있었던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솨아 솨아... 규칙적으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다정한 주님의 음성이 되어 귀를 울려 줍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겸허해진 베드로에게, 주님은 거듭거듭 새 사명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첫번째 말씀에선 어린양이었는데 왜 그 다음 두 번은 그냥 양이 되었을까?
초등부 어린이 사역하며, "어린 양"이란 제목으로 주일학교 잡지를 몇 번 내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제 8월말이면 초등부 어린이 사역을 끝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9월부터 제게 장년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역의 장(場)을 열어 주셨습니다. 어린양을 대상으로 하던 일에서 양으로의 사역 전환입니다.
베드로에게 들려주셨던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주님의 음성이, 곧 제게 들려지는 실감나는 음성이 되어 파도와 어울어집니다.
"영순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바닷가에서의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품고 카타리나 섬을 뒤로 합니다.
부두 위엔 그곳 캠프장의 스태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저희들이 타고 떠나가는 배를 향해 환송의 춤사위를 엮어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디오스 2003 VBS!
사진, 글: 이영순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8신 2003년 9월)
2003년 8월 남가주 카타리나 섬 Campus by the ses에서.
예수와 베드로의 동상사진: 이스라엘 갈릴리에서 2006년 4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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