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영혼의 혁명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의 선율이 흐릅니다. 부드럽고 서정적이지만, 하던 일을 멈추게 할 만큼 사로잡는 힘이 있는 선율입니다. 나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불러내 미지(未知)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듯한 곡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으로 불러냅니다.
W.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220년 전의 시대를 살다간 사람의 마음과 그의 혼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두 세기가 넘는 시간적인 간격에도 불구하고, 같은 감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로마서 8장을 묵상하면서도 이와 같은 신비를 느꼈습니다. 사도 바울, 1세기를 산 사람이 아닌가? 2천 년 전에 쓰여진 로마서를 읽으며, 그의 편지가 주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생생한 현장감에 놀라게 됩니다. 신세대니 X세대니 5년만 나이 차가 나도, 서로 대화가 안 된다고 어울리지 않는 현상을 보고 있는 요즘에, 2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동일한 감격으로 다가오는 이 바울이란 사람의 편지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이 사진은 Alaska Activities Guide라는 작은 안내 책자의 표지 사진을 다시 찍은 것. 평지 위에 우뚝 솟은 맥킨리산의 위용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미국에 이민온 1.5세대들과 이야기해보면, 1세와 2세대와의 문화적인 갈등을 경험합니다. 같은 1.5세 사이에서도 이민 연수, 몇 살 때 이민왔느냐에 따라 문화적인 차이를 느껴, 가능하면 자기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처럼 전혀 문화배경이 틀린 사람이 쓴 이 글이 어떻게 그 고집스런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화와 언어와 역사가 틀린 사람들에게 똑같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일까요?
로마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글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의 깨달음이 결코 그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부터 나온 것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시공을 넘어선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이러한 지혜의 글이 결코 나올 수 없겠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 후서 3장 16절]
사도 바울 자신도 디모데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증언합니다.
로마서는 가히 혁명적인 책입니다. 이 책 때문에 방탕한 젊은 시절을 살았던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교부가 될 수 있었고(롬 13: 13, 14), 교황의 세력이 하늘을 찌를 때에 일개 수도승 마틴 루터로 하여금, 그 교황권에 과감히 도전하여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며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롬 1장 17절),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도도하게 유럽의 지성인들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칼 바르트를 감동시켜 인본주의적이고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신뢰에 빠져있던 그 사회에 '하나님 자신의 견지에서 인간현실을 조명하는, 혁명적인 신(神) 중심'의 사상을 전개하는 로마서 강해를 서술케 했습니다.
김 진홍 목사님 간증에 보면, 김 목사님이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고 인생의 가장 비참한 나락에 떨어져 있을 때, 그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주어진 말씀이 로마서 8장 12절이었고, KAL기 폭파범이었던 김 현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던 결정적 구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는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이렇게 조그만 책자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혁명을 가져다주고, 세상을 변혁케 한 경우도 없을 듯 합니다.
로마서는 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의 진수로 여겨지고, 그 중에서도 8장은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든 등반 끝에 드디어 산 정상에 올라서서 굽이굽이 눈 아래 펼쳐지는 작은 산들의 물결을 굽어보면서 "야호!" 소리지를 때 느껴지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상쾌함. 거칠 것 없는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는 것이 8장입니다. 로마서 8장은 구절구절이 금과옥조(金科玉條)입니다. 하나하나가 보석입니다.
마음을 집중하여 읽으면 사도 바울이 느꼈을 법한 강한 전율이 전달되어 옵니다. 성령의 강력한 인도와 감동이 필을 든 사도 바울의 손을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움직이게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벅찬 감동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로 이 편지를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해방선언문입니다. 영혼의 독립선언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2절]
7장에서만 해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장 19, 24절] 영과 육의 싸움에서 항상 죄성을 따라가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탄식하던 바울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깊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담대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생 수행을 하고 아무리 선을 행하려 해도, 결코 인간의 뿌리깊은 자기중심성이라는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간의 굴레를 바울은 뼈아프게 인식합니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 죄와 사망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우리들의 실존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에게 복음(Good News)이 전해진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사셔서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겨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sinful nature)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8장 9절]
"You, however, are controlled not by the sinful nature but by the Spirit, if the Spirit of God lives in you."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바울은 그의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자녀로서의 새로운 정체감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신분의 대 전환입니다.
로마서 8장은 펄떡 펄떡 거센 폭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산란기를 앞둔 연어처럼 생명력으로 충만합니다. 한창 달아오른 용광로 같습니다. 암벽을 뚫어 길을 내는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장 28절]
이 말씀 때문에 고통 중에서도 그 어려움을 감내할 힘을 얻은 성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저 자신도 이 말씀의 수혜자입니다. 고통에서 성숙을 끌어내시고, 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도록 인도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장 26절]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병이 들면,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또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할 사람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친히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대신 간구해주신다는 이 말씀만큼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가 느껴지는 말씀도 흔치는 않으리라 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위로 받은 성도들은 또 얼마나 많을는지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8장 35, 37절]
이렇듯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은 승리의 찬가입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향하여 승리의 축포를 쏘아올려 승전의 기쁨을 전파합니다. 개선행진곡이 백 그라운드 음악으로 깔려야 할 것만큼 힘과 권능이 넘쳐납니다. 2002년 월드컵 이태리와의 경기가 끝나고 8강에 오를 때의 놀라운 감격을 능가합니다. 영원한 승리의 선언에 "아멘!"하며 저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감동이 8장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8장 38, 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슴 벅찬 승리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드림.
글: 2003년 2월.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1신에서 사진: 아리조나 세도나,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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