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살아갈 때, 어떤 좋은 추억, 특히 어렸을 때와 집의 추억보다 더 든든하고 더 건전하고 좋은 건 없다는 걸 알아야 해.
어른들은 너희 교육에 대해서 많이 말하지만, 어릴 적부터 지녀온 좋고 거룩한 추억이 아마 제일 좋은 추억일 거야.
그런 추억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일생이 다하도록 까지 안전히 살 수 있어.
또 마음속에 좋은 추억이 단 한 개만이 남아 있대도, 그것이 장차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될 거야."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
이번 여름, 여름성경학교가 열렸던, "바닷가의 캠퍼스(Campus by the Sea)" 캠프장은 카타리나 섬의 주도(主都)인 아발론과는 멀리 떨어진 해변에 위치해 있어 이 곳에 오려면, 다시 작은 보트를 타고 와야만 합니다. 배 없이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우리들만의 천국이라고나 할까요.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넘어섰습니다. 어린이들이 숙소에 들어간 후, 밤바다의 별을 보러 나왔었습니다. 작년 이 곳에 왔을 땐 구름이 잔뜩 끼어 별을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었는데, 금년엔 감사하게도 구름 없는 맑은 바닷가의 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탁 트인 밤하늘과 선명한 별들. 보름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록 반달이긴 했지만 아직도 달빛이 바닷물 위에 희게 부서지며 해안선의 곡선과 산언덕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내 주어, 실로 오랜만에 밤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부두 위에 서서 바다와 달을 봅니다. 바닷물 위에 달빛이 내려앉을 때마다 둘은 함께 춤추는 듯, 은빛의 무늬를 그리며 반짝이곤 했습니다. 피아노곡 "은파"의 선율이 백 그라운드 뮤직으로 깔려야 할 것 같은 낭만적인 밤바다의 정경이었습니다.
같이 온 몇몇 집사님들은 떠나올 때부터 밤낚시의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여러 분들이 모여 부두에서 낚싯줄을 바닷물에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고기 좀 잡으셨어요?" "자 이거 보세요" 한 집사님이 자랑스럽게 내어 보인 양동이 속에는 커다란 랍스터 세 마리가 서로 엉켜 꾸무럭거리고 있었습니다.
2학년 은택이와 유치원생 수환이는 아빠들이 낚시질하는 주위를 돌아다니며, 잠을 잊은 채 마냥 흥겨워하고 있었습니다.
바다가제가 하나 둘 낚아 올려질 때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곤 했는데, 특히 자기 아빠가 바다가제를 낚아 올렸을 때에, 은택이의 기쁨과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엔, 모두 열 한 마리의 팔뚝만한 바다가제가 뚜껑을 밀어젖히고 나올 기세로 양동이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바닷가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서 이 랍스터들을 구워 먹게 될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키 위해 홀로 숙소로 되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은택이와 바닷가제. 밤바다에서 그의 아빠가 랍스터를 잡았던 이야기, 그때의 희열.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 랍스터를 구워먹던 일. 얼핏 보기엔 바닷가제의 추억이지만, 사실 그 속엔 아빠의 사랑이 감추어져 있기에 오늘밤의 풋풋한 기억이 은택이의 가슴속에 훈훈하게 새겨져 두고두고 남아 있을 것임을 압니다.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누군가에게나 그렇듯, 앞으로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바로 오늘밤의 이 추억이 은택이를 구해줄 것이라 믿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대로...
"어린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위기를 극복하는 강건한 자녀들을 얻을 것임이요..."
글, 사진: 이영순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8신, 2003년 9월)
2003년 8월 카타리나 섬에서 촬영. (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사진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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