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지혜의 샘

사랑과 슬픔의 이중주

wisdomwell 2008. 5. 24. 15:36

사랑과 슬픔의 이중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장 9, 10절]

 

 

 

언젠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일 것이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 슬픔이 아름다울까?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흐르는 눈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슬픔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슬픔 밑바탕에 언제나 사랑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의 상실, 사랑의 죽음, 미처 보내지 못한 사랑, 더 사랑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보내 버렸다는 아쉬움... 

 

"사랑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설령 그것이 슬픔을 가져오더라도....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을
완전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탄 줘잉]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이 책의 편집자 탄 줘잉은 여러 가지 감동스러운 이야기들을 엮어 우리가 살아생전 꼭 해야할 것들 49가지를 열거합니다. 소중한 친구 만들기, 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은사님 찾아 뵙기, 마음을 열고 대자연과 호흡하기, 단 하루 동심 즐겨보기, 남을 돕는 즐거움 찾기 등등...  이러한 제목으로 엮어진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솟는 감동들이 있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그 속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사랑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과 슬픔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엮어져 있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들이 교감하는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슬픔도 없습니다.  슬픔이 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무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시며, 울지 말라 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그들의 애통함을 표현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자신도 슬퍼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군에 간 20대 초반의 젊은 아들을 어이없게도 동료가 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들이 관을 붙들고 오열하는 모습을 TV에서 보노라니 울컥 눈물이 솟습니다.  그들의 슬픔 속에서 그 동안 애지중지 아들에게 기울였던 사랑과 그 사랑의 상실이 가져다준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 사원에 있었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참혹한 고통 끝에 숨진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내린 뒤, 무릎에 안은 채 그 아들을 들여다보며 극심한 슬픔에 잠겨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난 달, 잘 아는 권사님의 입관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언제나 장례식장에서 기억하게 되는 것은, 또 계속 간직하고 싶은 것은 고인이 베풀어주셨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추억들이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미처 고인에게 표현해드리지 못한 사랑이 우리를 또한 슬픔 속에 잠기게 합니다.  슬픔 속엔 늘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은 아름답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하나님께 위로를 받을 수 있기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슬픔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활짝 열리기에 슬픔 속에 복이 있다고 주님은 선포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도서 7장 3절]

 

 오스왈드 챔버스는 우리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극심한 슬픔을 통해서라고 단언합니다.  슬픔이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끌어주고 또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성공은 마음을 자부심에 팔리게 하기 때문에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지 못합니다.  일상의 권태는 불평과 불만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자신을 발견하게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극심한 슬픔을 통해서입니다.  ....  당신은 극심한 슬픔을 겪고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당신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극심한 슬픔을 겪어보지 못한 자는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습니다.  극심한 슬픔 속에서 당신을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다른 이들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슬픔이 변하여 비탄이 되고 비탄이 다시 원망이 되고 원망이 분노로 바뀌어 한(恨)이라는 앙금이 되어 남지 않도록, 하나님의 품안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당신에게 슬픔을 안겨준 사랑의 상실이, 하나님 주시는 위로 속에서, 다시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향한 위로와 사랑으로 부활하도록 주님의 사랑과 만나십시오.  그리고 슬픔 속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십시오.  그 슬픔이 영원히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중에 있는 자들을 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장 4절]

 

"커다란 참나무가 바람을 견뎌 낼 때면 가지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들여 마시고 줄기는 바람 쪽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터지는 슬픔을 아는 영혼만이 터지는 환희를 알 수 있다.  슬픔은 마음에 기쁨의 자리를 넓혀 주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에드윈 마크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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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3신 (2005년 10월)에서

사진: 1.  영화 "Passion of Christ"  2. 미켈란젤로 "피에타"   3.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퍼온사진들입니다)

음악: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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