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HolyLand): Israel

Via Dolorosa (슬픔의 길) [예루살렘 4]

wisdomwell 2008. 3. 21. 17:14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장 3, 4절]

 

 

 

 


 

 십자가의 길.  그 길은 슬픔의 길, 조롱과 수치의 길, 고통의 길, 패배의 길, 외로움이 밀려드는 길,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는 소망없는 길, 능욕과 학대가 정당화되는 길, 불의의 세력이 정의를 삼켜버린 길,  적대감과 살의가 팽배한 길, 죽음으로 가는 길, 검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려 사방이 어둠 속에 잠기듯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지는  길.

 

 빌라도의 재판정으로부터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수난의 길.  십자가의 길로 일컬어지는 Via Dolorosa(고난의 길)은 저를 포함한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찾아보고 싶은 성지순례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므로 십자가를 떼어놓고는 주님을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십자가의 길은 예루살렘 성내 아랍인들의 지역에 위치합니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드는 순례객들을 상대로 "원 달라! 원 달라!"를 외쳐대며 호객행위를 하는 노점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아랍인들의 장터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한 대 들어서면 꽉 차 버리는 좁은 옛날 그대로의 골목이기에 늘 복잡하고 정신없이 붐비는 길입니다.  소매치기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이 되어버렸기에 이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고맙게도, 저희 그룹을 안내하신 박목사님이 이런 혼잡을 피해, 새벽 5시에 비아 돌로로사로의 순례길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셨습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저희 일행은 소박하면서도 당당한 아름다움을 지닌 다마스커스 게이트 성문을 통해 구 예루살렘 성에 입성했습니다.  성 안의 아랍인 상점들은 너무 이른 탓에 굳게 닫혀 있어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가복음 15장 15절]


 

 미로와도 같은 좁은 길을 7, 8분 정도 걸어가 십자가의 길의 출발점인 헤롯이 세웠고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안토니오 요새가 있던 장소에 도달했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으로 맞으신 채찍 교회(Chapel of the Flagellation),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지신 형벌의 성당(Chapel of the Condemnation)이 위치한 곳입니다.  이 곳들이 십자가의 길 제 1역과 제 2역입니다.  조금 더 가면 "보라, 이 사람이로다!" 재판장 빌라도가 말했던 곳을 기념하여 지은 에체 호모(Ecce Homo) 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요새는 허물어지고 없지만, 아직도 그때의 것으로 여겨지는 에체 호모 아치가 비아 돌로로사의 길 위에서 옛 풍취를 전해줍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과 인간들의 사악이 어두운 갈보리를 가리켰을 때 어린양은 온유하게 그것을 위해 자원하여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이 모든 저주스런 사건들은 나의 죗값을 지불키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이 헷숀-  


 

 

인류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재판, 가장 부당했던 재판이 이루어졌던 그 현장에 우리는 새벽 찬바람도 잊은 채 서 있었습니다.  오늘의 순례길에 의미를 더해줄 십자가를 기다리며, 말씀을 읽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드디어 십자가가 도착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키보다도 작아 그리 무겁지 않은 반질반질한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의 키를 훌쩍 넘기도록 길고,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고, 채찍으로 심하게 맞아 찢긴 주님의 어깨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십자가였을 텐데, 우리는 얄상하게 생긴 십자가를 나누어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바로 그 길에서 십자가를 직접 어깨에 멘다는 그 사실이 모두를 숙연케 만들었습니다.  기도 속에 간간이 울음소리도 들렸습니다.  두 사람씩 십자가를 메고 새벽 비아 돌로로사의 길, 슬픔과 고통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돌들이 깔려 있는 길이었는데, 이 길을 오고갔을 수억의 사람들의 발길 탓인지, 맨들맨들 윤이 날 정도로 닦여져 있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갔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으신 지점부터 골고다 언덕과 주님의 무덤이 있는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개의 장소가 기념할 만한 곳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못 이겨 첫 번째 넘어지신 곳,  비수에 찔린 듯한 아픔으로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던 성모 마리아와 만나신 곳, 구레네 시몬이 엉겁결에 대신 십자가를 졌었던 곳,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의 피묻은 얼굴을 닦아주었다는 곳, 두 번째 넘어지신 곳, 주님의 고난을 보며 애도하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던 곳, 기진하여 세 번째 넘어지신 곳이 성묘교회 들어가기 전 십자가의 길 위에 역들(제 3처에서 제 9처)입니다.

 

 "마침..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마가복음 5장 21, 22절]

 


 "예수님은 처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실 수 없어 낯선 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사명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위해 십자가를 져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능력과 영광과 위엄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즉 의존적 인간이 되어-우리 가운데 있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헨리 나우웬-

 

 각 역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곳에 대한 설명과 함께 연결되는 성경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9신 (2006년 4월)에서

사진: 2006년 3월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