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소리의 성 베드로 교회 (St. Peter en Gallicantu)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 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가복음 14장 71, 72절]
시온산 아래 산자락에 1931년 지은 산뜻한 연 하늘색 돔을 가진 교회가 베드로 통곡교회입니다. 베드로 하면 연상되는 동물인 금빛깔의 수탉 조형물이 둥근 돔 검은 십자가 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이 교회가 성 베드로 갈리칸투(수탉 소리의 성 베드로 교회)임을 알려줍니다.
이 교회는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했던 곳인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라고 추정되는 지점에 지어졌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곳에서 최소 12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을 발견했고, 저택 아래 동굴은 마구간으로 쓰였는데 어떤 역사학자들은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만일 이곳이 가야바의 저택이었다면, 아마 예수께서도 이 가운데 어느 방엔가에서 거짓증거와 모멸과 조롱을 당하며 이 세상에서의 가장 긴 밤을 보내셨을 터입니다. 교회 지하에 바위를 파내어 만든 듯한 깊은 지하 동굴방에서 우리 일행은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이곳이 예수의 수난이 시작된 방인지도 모릅니다.
교회 마당에는 오래된 돌계단이 있었는데, 다윗성과 시온산을 연결해주는 도로의 일부로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옛날 그대로의 길이라고 합니다. 체포당하신 예수께서 이 길을 통해 군병들에 이끌려 조롱 당하시며 걸어 올라가시던 길이기도 합니다.
길 우편에는 이 수난의 돌계단 길을 채찍에 맞으며 힘겹게 오르시는 예수의 모습이 석판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석판이 걸려있는 축대 위에 무심하게 핀 분홍색 제라늄의 아름다움이 주님의 고통을 더 부각시켜 주는 듯 합니다.
돌계단 아래쪽 왼편 빈터에는 베드로와 그를 둘러싼 세 사람의 청동 조각상이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당황하여 "나는 그를 모릅니다!" 부인하며 손을 내젓는 베드로의 모습이 처량합니다. 불과 서너 시간도 되기 전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호언장담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의 호기는 어디로 갔나? 고문하겠다고 로마군인이 칼끝을 들이댄 절대절명의 순간도 아니고, 단지 어린 계집종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어" 라고 한 것뿐인데, 그는 혼비백산하여 아니라고 거듭해서 부인합니다. 급기야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발뺌합니다. 그의 세 번째 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귀를 울리는 두 번째 닭 우는 소리.
바로 그때, 베드로는 돌이켜 자기를 바라보시는 예수의 눈과 마주칩니다. 고통의 한 가운데 계신 주님이 그를 보십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돌보아오셨던 제자들인데 모두들 떠나가고 어느 누구 하나 당신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죽기를 장담하던 수제자 베드로마저 저주하며 당신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셨던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보았습니다. 예수의 눈빛 속에 "네가 이럴 수가?"하는 원망의 빛이나 혹은 "비겁한 녀석! 그럴 줄 알았어"하는 듯한 비난의 빛깔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음을.... "차라리 나를 책망하는 눈빛이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까지 시리진 않을 텐데...." 그는 보았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기에 슬플 수밖에 없는 눈빛, 무한한 용서와 한결같은 사랑이 담긴 눈빛을... 그리고 섬광처럼 떠오르는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이 떠오르자 그는 가슴속의 울컥 솟아오르는 격랑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뛰쳐나가 꺼이꺼이 아프게 통곡합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다니던 정신여고 강당 앞쪽에 붙어 있던 예수님의 초상화를 눈앞에 보는 듯이 기억합니다. 누구의 그림인지는 모릅니다. 단지 그 초상화 속의 연민의 정이 가득 담긴 슬픈 주님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눈빛은 용서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무언으로 말해 줍니다. 바로 이 초상화가 당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예수(누가복음 22장 61절)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리에서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가장 필요로 한 자리에서 그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러지 않겠나이다" 자신만만했던 베드로의 용기는 그저 거품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자신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결단, 나의 의지력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기도할 자리에서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도 주님께서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듭 잠에 빠져들 만큼, 기도의 절실함을 경험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일생 최대의 오점을 남기고 맙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게 될 유약한 자신의 신앙과 의지력을 과신하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은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자신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토로하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에 몰입합니다. 고난의 쓴잔을 예측하며, 하나님의 주권이 자신 안에 세워지기를 피땀 흘려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소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당당하게 자신이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온갖 능욕과 불의와 학대를 담대하고 의연하게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수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으로의 절대적인 순종이 그를 승리케 했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가 그 원동력이 되어 짐짓 패배자인 듯 했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베드로 통곡교회를 나서고 있는데, 어디선가 "꼬끼요--" 닭 우는 소리가 한 번, 또 한 번 들렸습니다. 베드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신호처럼...
"주님, 기도가 없으면, 나는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주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할 때에만, 나는 당신의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흔들림 없는 의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여, 당신이 나의 왕, 나의 주인 되소서."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9신 (2006년 4월)에서.
사진: 베드로 통곡교회.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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