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바위 (만국교회-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Olive grove)이 있는데... " [요한복음 18장 1절]
성경 말씀 그대로, 기드론 골짜기 지나 맞은편 감람산 자락에 올리브 나무숲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곳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종종 올라와 늘 하시던 대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4장 32절]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기념하여 바로 이곳에 "고뇌의 교회(Gethemane Basilica of Agony)" 또는 "만국 교회"라 불리는 1924년에 지은 교회가 있는데, 현재의 교회는 비잔틴 및, 십자군 시대 교회의 잔해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아침 8시, 교회의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고뇌의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앞쪽 제단 앞에 예수께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는 평평한 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위 주변은 주님 쓰셨던 가시관을 연상시키는 철제 가시가 둘러싸고 있었고, 제단 뒤쪽 벽에는 올리브 나무 숲 바위 위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를 천사가 위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교회당 안에는 신부님 한 분이 제단 옆에 홀로 서서 아무 성도도 없는 가운데 조용히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정적이 감싸 안았습니다. 침묵 속에 주님 기도하셨다는 겟세마네의 바위를 봅니다. 겟세마네. '겟'이란 말은 항아리란 뜻이고 '세마네'는 기름이라고 안내하시는 박 목사님이 말해 주었습니다. 기름을 짜는 틀. 올리브 기름을 짜내듯이 예수께서는 피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가는 그의 복음서[22장 44절]에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라고 의사다운 코멘트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복음 14장 33절-36절]
신이셨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기에, 다가올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고 "심히 고민하여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어 기도하신 예수. 마가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그의 복음서에 그려냅니다. 친밀감을 느낄 수 있기에, 마가가 묘사한 수난의 종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저는 좋아합니다. 극심한 고뇌의 험한 강을 넘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이 당신 안에 세워질 것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의 철저한 순종을 간구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임을 알면서도...
당신을 체포하기 위해 군병들과 제사장들이 보낸 하속들이 살기 등등하여 겟세마네로 몰려들었을 때, 예수는 그 당할 일을 아시고 담대하게 나아가 "누구를 찾느냐?"고 묻습니다.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내로라. I am he"고 그들에게 다가가니 오히려 저희가 물러서며 땅에 엎드러지는 진풍경을 연출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당신의 뜻을 맞추려는 결연함, 사명을 향해 확고한 걸음을 내딛는 그 모습에, 누가 쫓기는 자이고 주가 쫓는 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통해 이러한 예수의 의연한 모습을 그리며, 육신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만국교회 정면 4개의 기둥 위쪽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옴서의 저자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각기 자신들이 쓴 복음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시선을 끕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들은 그들이 보거나 들었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모습을 자신들의 빛깔을 넣어 그려냅니다. 저는 마가가 그려낸 예수의 초상화를 좋아합니다. 마가 자신의 얘기가 그의 싸인처럼 담겨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장 51, 52절] 예수께서 잡히실 때, 살의가 등등한 군병과 제사장들의 졸개들이 두려워 뒤집어쓰고 나왔던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어 도망친 청년의 얘기를 슬쩍 써넣은 마가. 아마도 그 청년이 바로 마가 자신이었을 거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교회 마당엔 감람산이란 이름답게, 수령이 꽤 오래된 많은 올리브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8백년, 1,200년 된 나무가 그 많은 세월 속에서 풍상을 겪으며 굵고 울퉁불퉁한 고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푸른 잎을 자랑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 자라고 있던 나무들은 아랍인들의 침입 시 전부 불태워졌는데 그 뿌리에서 다시 새순이 돋고 나무로 자란 것들이 있어 그 뿌리까지 따져 본다면 2천년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올리브 나무의 뿌리는 2천년 전 예수의 피땀어린 고뇌에 찬 기도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뿌리에 타오르는 듯한 주님의 음성을 안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날 밤, 기도로 무장하신 주님은 무리들에 이끌려 기드론 골짜기를 다시 지나 적의가 팽배한 가야바의 집을 향해 이 올리브 동산을 뒤로 하셨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9신 (2006년 4월)
사진: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에서 2006년 3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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