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요르단 5]와디 럼을 떠나며/ 돌아가는 길: 대로에서 광야길로

wisdomwell 2008. 1. 28. 14:31

와디 럼을 떠나며

 

 

 아침 일찍 사막의 일출을 보기 위해 캠프장 바로 앞에 깍아지른 듯 서있는 바위 언덕에 오른다.  크고 작은 돌들이 바닥에 깔려 제대로 길도 없는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올라 언덕 중턱에 이른다.  눈 아래 어젯밤 묵었던 캠프장의 흰 텐트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다.  마치 출애굽 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이 성막을 중심으로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었던 것처럼....  광활한 광야이니, 수십만 명이 함께 진을 치고 생활할 수 있었으리라.  어쩌면, 바로 이곳에서 캠프를 쳤을는지 누가 알겠는가?


 

 벌써부터 먼동이 터서 훤해오는데, 정작 태양은 바로 옆쪽 바위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태양이 산 위로 빼끔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시야에 전개되는 사막의 전경이 태양의 오름에 따라 점차 새벽 색깔에서 아침빛으로 변해 간다.  황금빛이 사막을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허허벌판이 거의 끝간 곳에 사막의 작은 마을이 정겹다.  마을이라고 해야 몇 채의 집들뿐이지만...  앞쪽에 길게 누운 바위산의 봉우리들이 성당의 첨탑처럼 예리하다. 

 

 

 

 

한참을 아침의 고즈넉함 속에 혼자 앉아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광야를 내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사막의 한 복판을 기차가 지나간다.  너무 멀어 장난감처럼 보이는 기차가 꾸준하게 사막을 달린다.  누군가의 수필 제목처럼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그런 것처럼, 아마도 아카바에서 다마스커스를 잇는 기찻길인지도 모른다.  로렌스가 터키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폭파했던 철로들이 바로 이 기차가 달리고 있는 철로이리라 짐작해본다.

 

 

 이 와디 럼의 사막에서는 도저히 세월이 가늠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맛물린 톱니처럼 돌아간다는 느낌 때문일까?  만 하루도 머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왠지 모를 서운함으로 다가온다.  사막은 천의 얼굴을 갖는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선 가장 아름다운 광야의 모습을 보여주신 모양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래 폭풍이나 화씨 120도를 치닫는 혹서의 사막은 분명히 어제 우리가 경험한 사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리라...  하산 길에 작은 돌을 주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래, 이 돌을 보며 와디 럼, 너를 기억하마.." 

 와디 럼을 떠나며 나는 내 마음 한 조각을 대신 이곳 사막 속에 남겨둔다.  언젠가 그 마음 조각을 찾기 위해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가는 까닭이 있어요.  하나님을 알아보기가 훨씬 쉽거든요." -브루스 페일리, Walking The Bible-

 

 

돌아가는 길:  대로에서 광야길로

 

 남서쪽에 펼쳐진 황량한 이스라엘의 네게브 사막을 뒤로하고, 버스는 왕의 대로(King's High Way)를 따라 에돔산지를 달린다.  왕의 대로는 B.C. 이천년 전 이전에도 실재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청동기 시대의 요새들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아카바만에서 다마스커스에 이르는 남북으로 �린 주요도로로 요단 골짜기 동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부터 바산, 길르앗, 암몬, 모압, 에돔을 통하여 남쪽 네게브를 지나 이집트에 이르는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대상로이다.  정말 유서 깊은 역사의 길이다. 

 차창 밖으로 바짝 메마른 험한 바위산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키작은 관목들이 모래 바람 속에 물기 없는 갈색의 앙상한 모습으로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대로를 지나가려고 에돔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에돔족속이 그 길을 막아서 갈 수 없었는데 과연 어느 길로 우회하여 가나안 땅까지 갔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길은?  아라바 계곡이었을 거라고도 하고 에돔 동쪽 광야를 따라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그것이 광야길이란 사실이다.


 

 그들의 길은 어렵고 험난한 길이었다.  메마르고 거친 광야길이었다.  모든 것이 확보되지 않은 채, 오직 하나님의 공급해주심만을 믿고 가야하는 철저한 순례의 길이었다.  성경은 다시 대로를 등지고 광야길로 돌아가야만 하는 고통이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쓰고 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수기 21장 4절]

 

 급기야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한다.  "왜 애굽에서 데려와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야.  여기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원망으로 소용돌이치는 백성 가운데 불뱀을 보내어 경고한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을 다시 살려주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을 구원해 주신다.  이 사건을 기념한 놋뱀의 조형물이 모세가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았던 느보산에 설치되어 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실망한다.  더구나, 그것이 편한 쪽으로의 변경이 아니라, 열악한 편으로의 변화일 때, 투덜대고 원망한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숱한 샛길, 골목길, 좁은 길, 돌아가는 길들이 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들을 멀지만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신다.  나의 할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함으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리라.

 "주님, 멀더라도 주님 원하시면 돌아갈 줄도 알게 하소서.  내 조급함 때문에, 내 고집 때문에 내 길만을 주장하지 말게 하소서.  불필요한 감정 싸움에 시달리다가 더욱 더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없도록 순한 양되어 주님 인도하시는 길로 가게 하소서."

 인생은 어렵다.  때로는 많은 장애와 좌절을 만난다.  항상 직진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때로는 빙 돌아서 가야만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  싸워서 쟁취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인내함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돌아가는 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뜻이 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려야 하리라.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2신(2006년 7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