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요르단 3] 사막의 로뎀나무/시간을 초월한 모래언덕

wisdomwell 2008. 1. 21. 06:53

 와디 럼의 광활한 아름다움에 숨을 죽이다      

 

덜컹대며 달리던 트럭이 우리를 한 바위 산 밑에 내려놓는다.  수십 미터 높이 치솟은 두 개의 붉은 바위벽 사이의 좁은 통로를 헤집고 들어간다. 

 

 

 

그곳 바위벽 위쪽, 옛 사람들이 새겨 놓은 그림들이 붉은 사암위에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 년 전 이곳을 지나던 캐러번의 자취일까?  아니면 사막을 찾았던 옛 수도승이 새겨놓은 것일까?

 

 

 

 

 

 

와디 럼, 베두인의 천막       

 

사막의 로뎀나무

 

 

우람하게 선 붉은 바위 밑, 사암의 일부가 바람에 깍여내린 탓인지 그 아래 모래들도 똑같은 붉은 색이다.  그 적벽돌색 모래밭 위에 키가 허리춤에 달하는 초록색 식물들 몇몇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게 로뎀나무랍니다." 

 

 

모두들 나무라기보다는 커다란 풀에 가까운 로뎀나무 주변에 모여든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분노를 피해 도망하던 중 브엘세바 광야에서 지친 채 나무 밑에 누워 차라리 죽기를 간구했었는대 바로 그때의 나무가 로뎀나무였었다[열왕기상 19장 4, 5절]. 

 

  

상상 속의 로뎀나무는 그래도 그늘을 줄 수 있는 웬만큼 큰 나무였는데 이것들은 키작은 관목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에서의 이 관목같은 나무의 존재는 한국 시골 마을의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리라.  로뎀나무의 뿌리나 줄기는 이스라엘에서 나는 식물들 중에 숯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광야에 사는 베두인 사람들은 이 로뎀나무로 숯을 만든다.  시편 120편 4절에도 '로뎀나무 숯불'이라는 말씀이 있다.

 

시간을 초월한 모래언덕(Sand Dune)

 

 

 일찌감치 와디 럼에 도착한 탓에 모래언덕(Sand Dune)을 등반(?)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눈앞에 수백 년 간 바람에 불려온 모래들이 쌓이고 쌓여 작은 산을 이룬 모래 언덕이  여체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우뚝 서 있다.  모두들 신들을 벗고 맨발이 되어 45도쯤 경사진 모래 언덕을 오른다.  맨발에 와 닿는 모래의 감촉이 부드럽고 정겹다.  푹푹 발이 빠지다 보니 가이드의 말대로 한 발짝 내디디면, 세 발짝 뒤로 물러나는 형국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자그마한 모래언덕을 오르는 데도 약 15분 가까이 소요된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모래언덕은 또 다른 사암 봉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바람에 불려와 사구(砂丘)를 형성한 모래들이 다시 굳어져 사암이 되고, 또 그 사암이 바람에 부서지며 모래가 되어 다시 쓸려 내려가 모래가 되고, 그런 순환들이 수 억, 수 천의 세월들을 지나며 거듭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사막의 산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영겁의 세월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지금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 이곳을 지나쳤을 지도 모를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도 저 사막 지평선 위에 나타날 수 있을 것같은 기분.  영원이란 단어, 무한이란 말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일까?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막의 모습은 또 다른 신비스러움을 배태한다.  앞쪽으로 기암괴석의 바위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봉우리 사이로 모래 벌판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린다.


 

 

 

 

 

 

 

 역사적으로는 눈앞에 보이는 바로 이곳에서 T. E. 로렌스가 아랍 반군들을 규합했고, 또 여기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촬영되었다.  그 당시 원근 각처에 흩어져 사는 베두인 사람들이 거의 모두 엑스트라로 동원되었고 주인공들이 타는 낙타는 오디션을 거쳐서 영화에 출연했다.  문명을 등지고 사는 이곳 베두인 사람들에겐 잊지 못할 사건이었으리라.

 

 


 산 정상에 있는 바위 위 모래 위에 이름 모를 사막의 작은 풀 한 포기가 마치 난처럼 고고하게 자라나고 있다.  도저히 식물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인 듯 싶은데, 모래 위에 녹색 잎이 유난히도 선명하다.  도대체 어디서 물을 공급받는 것일까?  어떻게 이 난을 닮은 식물은 메마른 모래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이토록 청초하고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생명의 힘을 본다.

 

 트럭은 다시 출발지였던 와디 럼 빌리지를 향해 달린다.  멀리 앞쪽에 무언가가 어른거린다.  트럭이 그 물체에 가까워지면서, 살펴보니 20여 마리 염소들이었다.  염소들이 모래뿐인 사막을 뛰어가며 모래바람을 일으킨다.  베두인 사람이 기르는 염소들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베두인 트럭 운전사와 함께.

 

얼른 보기엔,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메마른 사막인데, 도저히 생존이 불가능할 것같은 조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막은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을 닮은 풀과 염소들과 그리고 베두인 사람들을....   

 

사진: 2006년 3월 요르단 와디럼에서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2신 (2006년 6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