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요르단 7] 페트라의 무서운 아이들

wisdomwell 2008. 2. 11. 07:17

 

신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로마 점령시대의 잔재인 야외극장터와 모래바위를 조각해 만든 크고 작은 동굴 무덤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중에서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의 사암벽으로 유명한 한 동굴 무덤에 들어가 보았다.  수천 년 쌓인 지층이 적갈색, 벽돌색, 붉은색, 주황색 등등의 줄무늬를 동굴 벽에 그려넣고 있었다.

 

 

 

 

 페트라의 무서운 아이들  

 

 "원 달라! 원 달라!" 무덤 안에서 한 소녀가 이곳에서 주은 듯한 볼품 없는 작은 돌을 사라고 간청한다.  두 개를 샀다.  그랬더니, 어느 틈에 어디서 왔는지 다른 아이들이 달려들어 자기의 돌도 팔아달라고 막무가내로 길을 막는다.  이미 돌을 사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오죽 궁하면 그럴까 싶어 세 아이한테 각기 하나씩 돌을 샀다.  
 

"뷰티풀!(Beautiful!)"  그중 얼굴이 까무잡잡한 한 소녀가 나를 향해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 아이가 돌을 사주니까, 고마운 마음에서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 페트라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기념이 될 것 같아, 같이 왔던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사진을 찍자 마자, 소녀는 손을 내밀며 또 다시 "원 달라!"를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두 아이니까 2불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안 된다고 하자, 소녀는 "I am scared!" 라고 외쳤다.  사진을 찍히는 것이 두려웠으므로 돈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였다.  정작 사진은 자기가 찍자고 요청해 놓고 자기를 무섭게 했으니 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인데 벌써 그 눈에 사악함이 반짝임을 보았다.  아무리 관광지이지만, 이 소녀의 돈을 강요하는 방법이 거의 강탈 수준이었다.  안 된다고 무지개 무덤을 나오자 계속 두 아이가 따라 붙으며 돈을 달라고 외쳐댄다.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지겨워 2불을 주어버린다.  준 것이 아니고, 빼앗긴 셈이어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도대체 이 페트라의 아이는 왜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요르단, 이 척박한 땅에, 순박해야 할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나?  사뭇 유혹적인 눈빛으로 사진을 찍자고 해놓고는, 다음 순간 돌변하며 돈을 내라고 따라 붙는 어린 소녀. 열 살이나 되었을까?  무엇이 이 소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난하고, 학대가 심한 부모 탓일까?  아니면, 이곳 페트라의 이교적인 분위기가 영적으로 작용한 것일까?  마을은 마을이로되, 주거지대신 옛 공동묘지들로 이루어진 나바테안 왕국의 문화유산이 이 소녀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거라사 지방, 군대 귀신들린 사람도 묘지 사이에 살았다.  그리고 악령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무지개 무덤을 되짚어 나오면서 줄곧 이 페트라의 소녀 때문에 마음이 어둡고 착잡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페트라의 시작인데, 우리는 그곳 넓게 펼쳐진 바위들과 무덤 동굴들을 먼 발치에서 보며, 다시 발길을 돌린다.  당시 4통5달의 거점 도시였던 페트라의 문화를 구석구석 보려면 적어도 사흘은 필요하리라.  찬란했던 이 나바티안 왕국은 AD 106년 트라얀 로마황제에 의해 점령당한 후, 점차 그 빛을 잃어간다.  13세기 십자군에 의해 잠시 요새화 된 적이 있었으나,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가 재발견 할 때까지 페트라는 1,800년 동안 서구인들에겐 완전히 잊혀진 도시로 남게 된다.

 

 

 

 

므리바의 샘물/모세의 샘

 

 페트라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냈다는 므리바의 샘물이 있다.  모세가 그리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므리바의 물을 내면서 바위를 쳐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던 사건 때문이었다(민수기 20장).  우리는 모세의 샘물에 손을 담그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영순.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9신 (2007년 2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