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지혜의 샘

자연은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wisdomwell 2010. 5. 20. 15:16

 

 

 

이태 전이던가 어느 가을날, 바닷가 절벽의 풍광이 아름다운 라구나 비치에 갔었습니다.

그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여유로움을 갖고 싶어서였습니다.

바로 눈 앞에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곳에 빈 벤치가 있었습니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바닷물결, 파도를 타는 사람, 바닷가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물위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물새들, 바닷물과 교감하는 듯 수면에 떨어지며 부서지는 햇빛, 멀리 희미한 보랏빛으로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는 수평선... 바람과 파도, 갈매기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들...

그리고 피부에 와 닿는 따뜻한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의 감촉.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느끼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시원함이 있었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바다는 계속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읽으려고 열었던 책을 다시 덮었습니다. 바다가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생떽쥐뻬리가 그의 소설 "인간의 대지" 서두에서 썼던 구절, "대지는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면이 막힌 콘크리트 벽 공간 안에서 책은 그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책은 조용히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책이 해줄 수 없는 소중한 말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숲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숲과 돌은 어떤 스승한테서도 들을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준다."

-클레어보의 버나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declare)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proclaim). 날은 날에게 말하고(pour forth speech)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display)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시편 19: 1-4]

시인 다윗은 자연계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가 사용한 동사들을 보면, 자연계의 삼라만상이 큰 소리로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음을 봅니다.

들리는 소리는 없으나, 날은 날에게 샘이 솟아나듯이 말들을 쏟아내고 밤은 밤에게 하나님 창조의 지식을 전시해 보여줍니다.
언어가 없어도 그저 자연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그 창조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 창조의 춤사위를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위용과 아름다움 앞에서 사람이 쓴 책은 할 말을 잃고 그 입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들은 것이 없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로마서 1: 20]


 

 

 

게리 토마스가 쓴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라는 책을 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금욕 수도자 안소니(주후 251년 출생)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책의 위안을 거부하고 어떻게 만족을 찾습니까?"
안소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책과 철인(哲人)은 창조된 자연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내 앞에 있소."

주님 사랑 안에서, 이영순 드림.

사진: 2010년 5월 10일.  팔로스버디스에서 본 태평양 (California)

 아리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