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옛 두로 시의 영광과 몰락 [레바논]

wisdomwell 2010. 1. 17. 14:39

옛 두로 시의 영광과 몰락

 

섬이었던 도시, 지금은 육지와 길로 연결되어 있는 옛 두로 성읍의 유적지에 도달한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조성된 구조물의 유적들이 주류를 이룬다.  두로 성읍은 페니키아인들이 신성시하는 도시로 팔레스타인 본토와 그 맞은편 섬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두로의 중심은 섬에 있는 이 두로 성읍이다.  다윗 궁전을 지을 때 그 재료들을 보급한 히람왕(B.C.980-947)의 통치아래, 이 섬의 성읍이 아름답게 확장되며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섬의 주된 항구는 섬 남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히람왕에 의하여 축조된 방파제가 현재 수면 밑 1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다 위에 떠있는 도시, 두로.  탁트인 지중해의 반짝이는 푸른 물을 배경으로 폐허의 기둥들이 넓은 직사각형의 공간을 둘러 도열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켓이다.  마켓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경제 행위의 중심지였다.  상인들이 그들의 상품들을 진열하고 서로 흥정을 하고 상거래가 이루어졌던 로마시대의 장터이다.  이곳은 또한 시민들을 위한 모임과 여가를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성경 에스겔서(27장)는 두로와 교역하는 수많은 나라들과 그 통상품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두로가 해상무역을 통해 얼마나 화려한 경제적인 부를 일궈냈는지를 짐작케 한다.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상납과 납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너의 제조품이 많고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다메섹이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물화를 실었음이여, 저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극하였도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이러한 풍요의 탑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릴 날이 올 것을 예언한다.
   B.C.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자, 두로는 무역의 경쟁국이었던 유다왕국의 멸망이 자국에게 상업적 이익이 된다고 여겨 오히려 반겼다.  예루살렘으로 갈 무역량이 그 성의 멸망으로 두로에게로 올 것을 기대하고 크게 기뻐한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딛고 부를 더 쌓기를 원한 두로의 비열한 태도를 지적하며 선지자는 두로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다.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예루살렘)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같이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에스겔 26장 2,3절]


 화려하게 떠올랐던 섬 위의 도시, 두로.  선지자의 예언대로 두로는 예루살렘이 함락 당한 이듬해 침공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고 유린당한다(B.C 585-573년).
 에스겔서는 두로의 멸망의 원인이 그의 교만함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찌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 [에스겔 28장2, 5, 7-8절].   
 

 

지중해를 중심한 강대국들의 교역의 중심이며 교통의 요충지로 주변 나라들의 선망의 대상된 두로.  이러한 두로의 번영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 야욕을 부추기게 된다.  바벨론 다음엔 페르시아의 침입을 겪어야 했고, 그 이후엔 알렉산더 대왕, 로마제국 등이 두로라는 바다의 도시에 새로운 정복자로 등장한다.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은 이 전략적인 해변의 도시를 점령하기로 결정하고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다.  페르시아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두로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자 알렉산더를 환영했지만, 그가 그들의 성스런 섬 도시 두로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7개월간 두로를 포위하고 있었던 알렉산더는 드디어 섬에 이르는 방죽을 건설하여, 섬과 육지를 연결한 후 두로 성읍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이 공격으로 섬에 거주하던 6천명이 살육 당하고, 남은 사람들은 흩어져버린다. 

 

 

 

"항해자의 거한 유명한 성이여 너와 너의 거민이 바다 가운데 있어 견고하였었도다.  해변의 모든 거민을 두렵게 하였더니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로 거민이 없는 성과 같이 황무한 성이 되게 하고 깊은 바다로 네 위에 오르게 하며 큰 물로 너를 덮게 할 때에.."[에스겔 26장 17, 19절]  에스겔서의 예언이 그대로 실현된 사건이었다.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B.C. 64년, 새로운 정복자가 된 로마인들은 두로를 그들의 제국에 편입시키고 이곳에, 수로와 개선문, 거대한 히포드럼(전차 경기장) 등 이 도시의 중요한 조형물들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먼저 섬 도시에 이르는 길을 닦아놓는다.  황제를 위한 길이다.  길 좌우로 발굴된 옛 도시의 잔해들이 그 기초석들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로마식의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목욕탕, 물과 관련된 경기를 하던 풀장, 비잔틴 시대의 유적인 우아한 무늬의 모자이크 길,

 

 

 

 

 

 

 

비록 밑동이 잘라져 나가긴 했지만, 코린트 양식의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기둥조형물도 눈에 뜨인다.

 

 

 


 두로인들은 1세기 경, 최초로 유리를 제조해 사용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폐허의 한 구석은 유리공장이었던 곳으로 그릇, 항아리, 컵 등을 만들어 썼는데 아직도 그 유리의 잔해들이 남아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이스라엘 

 

  

 


 바다 저쪽 편으로 이스라엘의 해안이 보인다.  두로에서 이스라엘 국경까지는 불과24km.  그런데 우리는 직접 레바논/이스라엘국경을 넘지 못한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그 지겨운 출국/입국 심사를 수 차례 반복하며)을 거쳐 내일 아침 요르단/이스라엘 국경인 킹 후세인 다리를 넘어 이스라엘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눈앞에 바다물결이 머지 않은 곳에서 이스라엘 땅에 찰랑대고 있는데, 또 다른 두 나라를 거치며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언제쯤에야, 중동을 물들이고 있는 반목과 질시, 증오와 파괴의 역사가 매듭을 지을는지... 

최근의 이스라엘 군과 헤즈볼라의 접전으로 사태가 더 악화된 것이 마음 아프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글, 사진: 2006년 3월 26일 레바논 두로 (Tyr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