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성지순례: Egypt·Jordan·Lebanon

시돈의 구두닦이 소년[레바논 4]

wisdomwell 2009. 12. 6. 07:59

 시돈(Sidon/Saida)의 구두닦이 소년

 

 사이다(성경의 시돈)는 베이루트에서 48km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대부분이 수니 모슬렘이고, 기독교인도 많이 산다.  이곳 시돈은 예수님과 바울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복음서는 소리질러 간청하는 수로보니게(시리아계의 페니키안) 여인의 믿음을 귀히 여겨 예수께서 이 이방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이 시돈에서 일어난 일이다[마태복음 15장 21절이하].

 

 

 

 시돈의 상징물인 바다의 성채 (Sea Castle)가 보이는 곳에서 하차한다.  바다 성(城)은 1228년 십자군에 의해 지어진 바다와 항구를 조망할 수 있는 요새이다.  성채와 항구를 연결하는 둑길은 여러 번 개축되었는데, 현재의 것은 전형적인 아랍 스타일의 방죽이다.  비가 간간이 뿌리는 흐린 날씨 탓일까?  바다 속에 서 있는 성과 조망탑이 우중충해 보인다.

 

 

 바다 성에서 도보로 사도바울 기념교회를 가려면 아랍인들의 시장을 가로지르게 된다.  레바논 상인들이 수레에 잔뜩 야채들을 벌여놓고 팔고 있었다. 

수박만한 양배추며, 당근, 홍당무 등 싱싱한 채소들이 이곳 서민들의 활기찬 삶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좁은 시장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오래된 시장인지 바위를 파서 방을 만든 듯한 동굴가게들이 연이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어느 상점에선 나무를 직접 깍아 그릇, 채 등 여러가지 생활기구를 만들기도 하고, 옛날 한국에서 보던 수세미도 팔고 있었다. 

 

 

 

 

 

 

 

 

 

 

  

 

 

 

 

 

 

 

 

 

 

재래시장의 좁은 골목길들을 지난 곳에 조그마한 사도바울 기념교회가 옹색하게 들어서 있다. 

 

사도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도중 이곳 시돈에 기항한다.  이때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이 이곳 시돈의 친구들로부터 대접(병 치료)을 받도록 배려해준(사도행전 27장 1-3절) 사건을 기념한 곳이다.

 

 

 

 

 

 

 

 

 

 

 

 

 

 

 

 

 

 

 

17세기 오트만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비누박물관을 들른다.  불란서와 무역하던 교역처로 그 당시 말이 머물던 장소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비누를 만들어내던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여서 현재는 핸드 메이드 비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회랑 벽에 불붙는 거리의 모습과 함께 2005년 3월 26일이라고 쓰여진 포스터가 시선을 끈다.  공교롭게도 일주기가 되는 이날, 레바논 대통령이던가 국무총리이던가? 암살 당한 사건을 애도하는 포스터다. 

시리아가 그 암살 배후에 있었다는 설 때문에 결국 수년간 이곳에 주둔하며, 헤즈볼라를 지원해 왔던 시리아 군이 이 사건을 계기로 레바논에서 철수하게 된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이야기다.   
 

 

 바다의 성이 보이는 바다 연변 길에 13, 4세쯤 되어보이는 소년이 구두통을 들고 손님을 부른다.  30년 전 한국에서 보곤 처음 보는 구두닦이 소년이어서, 1960년대 우리 나라가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의 일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소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소년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활달해 보이는 그에게 나의 구두를 닦게 한다. 

소년은 검은 구두약을 문자 그대로 처바르고는 되는대로 후딱 닦더니 손을 내민다.  "투 달러!"  소년의 태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일에 정성을 보였으면 좋을 텐데... 하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돈을 구걸하는 이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이려니...

 

글: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5신 (2006년 10월)

사진: 2006년 3월.  레바논 시돈(Sidon/Saida)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