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영화 묵상

개구리 왕자와 아기 예수

wisdomwell 2009. 12. 25. 03:46

개구리 왕자와 아기 예수


“개구리 왕자”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 중에 하나다. 마법에 걸려 개구리가 되어버린 왕자. 개구리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키쓰까지 해줄 공주가 있어야만, 비로소 마법을 벗고 다시 인간 왕자가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어떻게 아름다운 공주가 이 초라한 미물에게 키쓰를 해줄 것인가?? 결국 그런 공주가 나타났고, 공주의 키쓰가 개구리로 변한 왕자에게 다시 제 모습을 찾게 해주어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줄거리다.

 

 


그런데 이번 성탄절 (2009년 12월) 새로 만들어진 디즈니 영화 “공주와 개구리”는 개구리 왕자의 원래 스토리를 이곳 저곳 비틀어 또 다른 동화를 만들어 낸다. 내가 이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러간 이유도 바로 이 색다른 전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흑인 여주인공 티아나가 개구리가 된 왕자 나빈에게 키쓰해준 순간, 앗뿔사! 개구리가 본연의 왕자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쁜 아가씨 티아나가 개구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아닌가? 문득 인간이 되신 예수, 성육신의 사건이 개구리가 된 공주 이야기에 오버랩 되었다.

 

 

 

 

영화를 보니 여주인공 티아나는, 개구리에게 키쓰해주는 것이 너무도 역겨웠지만, 다시 사람이 되면, 그녀가 꿈꾸는 식당을 열어주겠다는 개구리왕자 나빈의 약속에 솔깃해져서, 눈 딱 감고 운명적인 키쓰를 감행한다. 그런데, 일이 뒤틀려 자신까지 개구리로 변하는 기가막힌 상황을 맞게 된다.


만일, 당신이 티아냐였고, 사람으로 다시 회복되기를 간청하는 개구리를 만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측은지심이 있는 이라면, 끔찍하긴 하지만, 키쓰를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키쓰가 당신까지 개구리로 만들어버리는 위험이 있음을 알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복을 위해 그에게 키쓰해줄 것인가? 수년, 아니 수십 년이 될지도 모르는 세월 동안 개구리로 살기로 작정할 만큼 “개구리 왕자”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진 않기에 나라면, 단연코 “N0!”다.

 

아마 이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혹시, 당신의 아들이 개구리가 되었다면, 당신은 아들 대신 개구리가 될 자신이 있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성탄절. 예수님은 그렇게 오셨다.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셨다. 아름다운 공주가 개구리가 된 왕자를 구하기 위해 자진하여 스스로가 개구리가 되는 길을 택한 셈이 된다. 그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은 원죄의 쇠사슬에 묶인 채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해주기를 원하셨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죄의 굴레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음을 알기에, 결국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로 계획하시고 그렇게 하셨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넘쳐나는 긍휼 때문에…. 성육신의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신이 자원하여 인간이 되신 것이다. 그 영광과 존귀의 하나님이 누구에게도 해침을 당할 수있는 연약한 아기의 몸을 입고 초라하게 냄새나는 마굿간, 구유위에 누우셨다.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 죽음의 길을 향해 걸어가셨다. 당신의 모든 것을 비워 가난하게 되심으로, 인간을 부요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타락과 죄의 굴레를 벗겨내고,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시려고… (다시는 개구리로 살지말고 인간으로 살라고….)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며, 성탄의 기쁜 소식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

 

 

글: 2009년 12월 24일 지혜의 샘 블로그 http://blog.daum.net/wisdom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