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지혜의 샘

토마스 아켐피스와 Chantry Flat의 시냇물

wisdomwell 2009. 1. 20. 10:04

토마스 아켐피스와 챈트리 플랫(Chantry Flat)의 시냇

 

한기(寒氣)가 스며드는 새벽 미명입니다.  LA가 그 본연의 날씨를 되찾은 듯 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매일 두세 장씩 읽어가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읽어 제치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색과 명상을 요구하기에 아침 말씀 묵상 시간에 조금씩 읽어가기로 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글을 읽으면, Chantry Flat의 깊숙한 계곡이 생각납니다. 

 

Chantry Flat은 LA 동북쪽 아케디아 시(市) 뒷편에 위치한 산입니다. 

 

구불구불 6마일을 드라이브하여 산에 오르면, 주차장이 있고, 그 곳에서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라 약 0.7마일쯤 걸어 가면, 갑자기 물소리가 들리며 계곡을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부터 폭포에 이르기 까지 2마일 남짓 계속 계곡을 끼고 산행(山行)을 하게 됩니다. 

 

 

 

 

세속을 등지고 심심산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계곡입니다.  평일날 이 곳에 오면 그 적막함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30분 거리에 그 복잡한 LA가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도봉산 만장봉 오르는 길들을 추억 속에 되살리며 Chantry Flat의 계곡을 끼고 걷노라면, 중간 쯤에 다소 넓은 평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 곳의 물은 냇물 바닥이 넓고 평평한 까닭에 흐르지 않는 듯 합니다.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세한 물무늬를 만들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속삭이듯 은근하게 흘러갑니다. 

조용히 물살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헤르만 헷세의 소설 속 주인공, 싯달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마냥 주저 앉아 하염없이 물살을 보고 싶어집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물은 물이로되 같은 물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변화가 눈에 띄진 않지만 항상 새롭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바로 이 시냇물과 닮았습니다. 

폭포처럼 굉음을 내지도 않고 좁은 바위 틈을 비집고 흘러 내리는 물처럼 격정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의 글은 바로 이 잔잔한 시냇물처럼 부드럽고 은은합니다.  흐르는 것 같지 않으나 끊임없이 흘러 내립니다.  똑같은 물 같은데 새로운 물입니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촉촉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깊은 명상을 통해 흘러나온 글입니다. 

 

 

 

 

 

20대 중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수 세기를 걸쳐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로 사랑받아온 책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반쯤 읽다가 중단한 경험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 많이 써 있긴 했지만,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져 흥미를 잃었던 것입니다. 

책 중간 중간에 내가 그때 써 두었던 단상(斷想)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내용들을 읽어보니, 그때 내가 지성(知性)으로만 책을 대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으며, 그 때의 나의 이 책에 대한 접근방법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 발견합니다. 

 

성서가 그런 것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지성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영성(靈性)으로 읽는 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신앙으로 읽어야만 읽히는 책입니다. 

잘못된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려고 했으니, 문이 열릴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신 (2001년 1월)에서.

사진: 챈트리 플랫 (Chantry Flat, Arcadia, CA)  2008년 4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