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크릭 눈꽃축제의 기억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커튼을 여니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세도나에서 맞는 청명한 아침. 그러나, 아쉽게도 바로 떠나는 날이 아닌가? 비 때문에 올라가기를 미루고 있었던 오크 크릭(Oak Creek)을 오늘에야 가보게 되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아, 둘쨋날 비가 많이 오던 아침에 갔었던 전망 좋은 에어포트 메사를 다시 들렀습니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드라이브하여 전망대까지 올라갔습니다. 앞쪽으로 다소곳한 마을들을 품에 안은 채 병풍처럼 뒤쪽에 둘러 서있는 캐피탈 뷰트(Capitol Butte)의 수려한 붉은 바위 언덕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우뚝 솟은 붉은 바위 언덕을 덮고 있던 거대한 흰 구름의 무리들이 아침 햇살을 한 몸에 받자, 솟아오르는 구름 기둥의 모습이 되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마치 신선이라도 승천하는 듯,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비가 오던 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크크릭 계곡을 끼고 플랙스탭으로 가는 89A 산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 전 왔을 때의 그 세도나처럼, 새파란 하늘과 붉은 바위가 조화를 이루는 눈이 부시게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이틀 동안 비 때문에 온통 잿빛 구름으로 뒤덮였던 회색의 하늘만 보다가 새파란 하늘과 노랗게 물든 커튼우드 나무를 보니, 그렇게도 마음이 가볍고 환해질 수 없었다. 계곡을 옆에 두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드라이브 길은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겨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초가을부터 시작해서 한 겨울까지... 멀리서 온 해묵은 친구와 이런 비경(秘境)을 만나게 되니 나의 기쁨은 자연 배가 되었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하나님은 이곳에 설경을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처럼 가을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나와 친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을 뿐 아니라, 겨울의 한복판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두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늦여름, 초가을, 가을, 만추, 그리고 겨울... 오크크릭을 끼고 가는 산길의 고도(高度)가 높아져 갈수록 다양한 계절의 변화가 아름다운 자연의 수채화처럼 곳곳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노랗게 단풍이 든 커튼우드, 참나무들이 햇볕에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눈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잎을 거의 떨군 채 기세좋게 죽죽 뻗은 겨울나무들 사이로 아침녘의 햇살이 부챗살처럼 곱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드시느라, 어제는 그렇게도 끈질기게 비가 오게 하셨군요. 계절이 만들어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느라고....
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완벽한 겨울 속으로 돌입했습니다. 함박눈이 길 주위의 모든 것들을 덮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온화한데 눈은 소복하게 나뭇가지들 위에 눈꽃을 피웠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짓누름과 긴장에서 훌훌 벗어나게 하는 청명한 공기, 새파란 하늘, 새털구름, 그리고 하얀 눈길.... 나뭇가지에 핀 새하얀 눈꽃들이 바람이 불 때 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목련꽃, 큰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곤 했습니다.
렌즈에 오랜만에 보는 설경을 담고 또 담았습니다. 온화한 날씨 때문인가? 눈이 솜처럼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밤새 눈이 참 많이도 왔었나 봅니다. 계속 녹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피크닉 테이블에 아직도 쌓여 있는 눈이 족히 20 cm 이상 되어 보였습니다. 아, 이렇게 많은 눈을 보게 되다니... 몇 년만에 일인가? 온화하고 아름다운 겨울날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눈꽃축제에 초대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 날 오크 크릭에서 보았던 설경의 기억은 앞으로의 나의 날들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슴에 넘쳐나는 싱그러운 기쁨의 추억은, 세도나에서의 이틀간의 비오는 날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주여, 나의 삶 속에 예기치 않게 찾아드는 비오는 날들을 인내함으로 기꺼이 맞이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 궂은 날들을 통해 최선을 창출해내시는 분임을 믿고 감사함으로 주님만을 의뢰하게 하소서."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53신에서(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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