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편 24: 3]
세도나. 지난 5월 초, 교회 에녹회원들과 함께 아리조나에 위치한 세도나를 다녀왔습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버스 타고 아리조나의 국도 89번A를 스치고만 다닌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도나는 저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장엄한 붉은 바위들과 연녹색 신록들이 함께 조화를 이룬 세도나의 풍광이 아직도 내 가슴에 알 수 없는 충격과 애틋함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마치 세도나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세도나를 기억 속에서 불러내곤 합니다. "11월 오크 크릭 캐년에 단풍이 들면 다시 한 번 세도나를 찾으리라. 세도나의 구석구석을 알아보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아침 시편 24편을 묵상했는데, 이 시는 너무도 절묘하게 세도나와 연결되는 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세도나는 아주 오래 전엔 바다였었다고 합니다. 그 바다 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세우신 것입니다.
세도나는 누가 보아도 성산(聖山: 거룩한 산)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거대한 붉은 바위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우뚝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바위들이 이제 막 잎을 피우는 신록들의 여린 숲과 어울어져 그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짙은 쪽빛 하늘이 배경을 이룬 탓일까? 군데군데 떠 있는 뭉게구름이 더욱 더 새하얗게 보였습니다. 하늘이 저렇게 푸르른 것은 공기의 청량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도나의 정기(精氣) 때문일까요? ... 하늘과 구름과 산과 바위와 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성당 바위, 종(鐘)바위, 주전자 바위 등등, 그 바위의 생김새를 따라 이름이 붙여진 각양 각색의 바위들... 그 바위들의 위용과 산세(山勢)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전혀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도- 창조주의 손길을, 조물주의 솜씨를 느끼며 경외감에 잠겼을 것입니다. 세도나는 그 숱한 영겁의 세월을 뛰어 넘어 나를 당장 태초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순간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자연의 장엄함 앞에, 할 말을 잃고 나 자신이 피조물임을 다시 한 번 절감케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도나체험은 영적인 체험입니다. 그림을 보며, 그 속에서 화가의 혼을 느끼고, 그의 영과 만나듯이, 신(神)이 만드신 이 거대한 작품을 대하면서, 그 창조주의 영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세도나가 영감을 찾는 예술가들, 기(氣)를 받기 원하는 이들을 끌어 모으는가 봅니다.
이 세도나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이 느꼈을 감격을 생각해 봅니다. 들소떼를 따라 말을 몰다가, 친구들을 잃고 혼자 이 산 속에 들어서게 된 한 인디언 청년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바위들의 장관(壯觀). 때마침 석양의 태양 빛이 내려앉으며 온 산과 붉은 바위들을 더욱 더 붉게 물들여 놓습니다. 온통 진홍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위들에 둘러싸인 채 넋을 잃고 서 있었을 인디언 청년. 그의 충격적인 경외감을 상상해 봅니다. 그도 분명히 모세처럼 그의 신을 벗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神)을 향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세도나는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의 성지요, 성산이었습니다. 세도나는 누가 보아도 경외감에 휩싸일 수 �에 없는 그런 산인 까닭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예술작품을 대할 때 사람들은 '심금(心琴)을 울려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걸어두기만 했던 내 영혼의 비파 줄이 퉁겨져 노래가 되어 나오도록 감격적인 작품이란 말이겠지요. 세도나는 그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의 영을 울리는 곳. "거룩한 산"이란 이름이 걸맞는 그런 곳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인은 성산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편 24: 4]
마음의 동기가 순수하고, 행실이 깨끗하며, 생각이 바른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거룩한 산에 설 자라고 선언합니다.
세속의 때묻은 마음과 허탄한 생각, 더러운 손 그대로 이 곳에 왔는데... 그렇다면 나는 성산에 설 자격이 없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 절망감은, 시인의 다음 구절로 소망을 되찾게 합니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편 24: 5,6]
비록 나는 의롭지 못하고, 손도 더럽지만,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그의 얼굴을 구할 때, 구원의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여겨주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용납해주신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리하여 성산에 설 수 있게 하십니다.
세도나. 하나님의 영이 느껴지는 곳. 이 성산을 찾아,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 그 위대함 앞에 겸손하게 피조물로 서는 순간, 온갖 세속의 때 --욕심과 집착--들이 씻겨져 내립니다. 그리고 내 영이 새롭게 소성됨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나도 감히 그 분의 은혜로 이 성산에 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지만, 도심(都心) 속에서 보다는 자연 속에서 더 쉽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 창조의 솜씨, 그 흔적들이 가감없이 그대로 만나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녀온지 한 달도 채 안됐지만, 벌써부터 세도나와의 깊이 있는 또 다른 해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영순 드림
2001년 6월 새벽에 쓰는 편지 11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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