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동유럽(E. Europe)

[체코 프라하] 카프카의 성(城)

wisdomwell 2008. 6. 12. 16:47

 

프란츠 카프카와 프라하 성(城)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볼작을 낳은 체코는 또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라는 고독한 소설가를 탄생시킨 나라이기도 합니다.   프라하 성을 마주하며 실로 30여년만에 카프카란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 성(城: Das Schloss)을...  카프카가 머리 속에 그리며 썼던 성은 바로 이 프라하 성이었을 것입니다.  이 성 뒤편 황금소로(Golden Lane)에 살면서 그는 수없이 이 성 주변을 거닐며 그의 상상 속의 성(城)의 이야기를 익혀 갔을 터입니다. 

 

 프라하 시의 다소곳한 붉은색 지붕들이 정겹게 내려다보이는 낮으막한 언덕위에 서있는 프라하 성은 9세기 중엽부터 건축되어 14세기 카를 4세 때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듯, 몇 세기를 거치며 변천해간 다양한 건축양식--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프라하 성은,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살아있는 건축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프라하가 '중세 건축의 박물관'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프라하 성은 현존하는 중세 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로, 1918년까지 체코 왕들의 궁전이었는데 내부에는 약 4백 여개의 방들이 있습니다.  현재도 그 일부가 대통령 관저 겸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국기를 게양하여 대통령이 성에서 집무 중임을 알려줍니다.  궁전 앞뜰로 들어가는 성 입구 정문 좌우에는 거인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이단자를 굴복시키는 대형 조각품(18세기)이 있는가 하면, 그 밑에는 현역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궁전 앞 거리엔 1605년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업해온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그 집 유리창 안엔 십자군 당시 사용됐다는 말로만 듣던 정조대(貞操帶)가 진열되어 세인의 눈길을 끕니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얽혀 공존하는 곳, 그곳이 프라하입니다.

 


 

 프라하 성(城) 중심부에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첨탑들과 화려한 스테인드 글래쓰와 정교한 조각으로 내부 장식을 한, 아름다운 세인트 비투스(Cathedral of St. Vitus) 성당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14세기 초엽부터 건축되어 수세기를 거치면서 계속 지어져 간 건물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카를 4세의 모습을 담은 조각품이 성당 입구 외벽에 장치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수난의 장면을 정교하게 조각한 작품은 현관 윗부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조각품은, 성당벽 모퉁이들에 붙어있는 악마 모양의 석루조(石漏槽: gargoyle)였습니다.  비가 올 때 빗물을 모아 떨어지게 하는 괴물 모양의 낙숫물 받이입니다.  악마의 입에서 빗물을 쏟아져 내리게 함으로써, 마음 속의 모든 악(惡)을 쏟아버리고 깨끗하게 되라는 종교적인 염원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글쎄요, 악을 한 번 죄다 쏟아버렸다 하더라도 그 다음 번엔 악이 안 나오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요.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토해낼 비투스 성당의 괴물상처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복음 7장 21-23절]

 

     


 

 프라하 성의 작은 뒷문을 나서면, "연금술사의 거리"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황금소로를 만나게 됩니다.  페인트칠로 산뜻하고 예쁘게 칠해진 2층짜리 작은 오두막집들이 늘어선 것이 눈 안에 듭니다. 

 

 

 

지금은 여러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는 작은 가게들로 변모했지만, 16세기 말 이 황금소로가 처음 생겼을 때는 프라하성의 왕족, 귀족들을 시중하는 미천한 소시민들이 살았었습니다.  창이 없는 이층의 좁다랗고 답답한 복도에는 중세의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복도의 맨 끝방에는 예전의 고문실로 사용되었다는 어두운 방이 있었습니다.  방 속에는 당시의 고문기구들이 그대로 널려져 있습니다.  갑옷을 24시간 입고 있는 것도 그때의 고문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 황금소로 22번지는 1916년과 그 이듬해, 카프카가 기거하며 작품활동을 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카프카의 발자국들이 프라하성을 중심한 거리 곧곧에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이 거리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성(城: Das Schloss).  1969년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기 위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었던 가장 재미없었던 소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라하 성을 본 뒤,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한층 다른 기분으로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소설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면이 많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오지않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며 끊임없이 의미없는 대사들을 중얼대는 것처럼, 성의 주인공인 측량사 K도, 성에 들어가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의 모든 노력들이 좌절되고 맙니다.  성에 도달하려는 K의 노력은, 곧 인간계인 마을 밖을,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간주됩니다.  성(城)이란 천국이나 신의 은총, 또는 고원한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 소설의 역자는 쓰고 있었습니다.  K는 마을 안에서 철저하게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그의 고독은 그가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마을을 인간계로 보고 성(城)을 신(神)의 세계로 본다면, K는 신에게서도 부름을 못 받고, 세상에서도 소외된 철저하게 고독한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이방인으로서의 K는 간절하게 성으로부터의 부름을 갈구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데, 카프카가 계획한 소설의 마무리는 성(城)에서 K를 불렀을 때는, 이미 K가 성에 들어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였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 K는 바로 카프카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역자(譯者)는 "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천국과 지상을 맺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신을 따라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고 작품을 요약하고 있었는데, 카프카 역시 K처럼 결국 하늘과 땅을 맺어주는 열쇠를 발견하지 못한 채 4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카프카의 약력을 보니 그는 유태계 상인의 아들로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했으며, 엄격한 아버지에 대해 강한 컴플렉스를 느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자 상해 보험협회에서 서기로 근무, 1913년 약혼자와 파혼했고, 허약한 체질과 신경과민, 불면증으로 고생하기도 했으며 1차대전 후 폐결핵이 악화되어 40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은혜로 오시는 예수라는 열쇠가 결여된 유태교의 배경.  은혜보다는 율법적으로, 엄격하게 유약한 아들을 교육했을 공포의 대상인 아버지.  예민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물려주었을 신 개념은 "독재적인 신, 절대권력의 신"이 아니었을까요?  그 신은 먼저 찾아와 감싸주는 은총의 신과는 거리가 먼 그런 신이었을 것입니다.  간절하게 부르심을 간구하지만, 결코 불러주지 않는 K의 신(神)처럼...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느낌은, 곧 주변 사람들과의 단절로 이끌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작가로서의 민감성을 지닌 그가 겪어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더욱 기피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그 자신의 소외감과 자기상실의 골을 더욱 깊게 했을 것입니다.  그의 공허한 눈빛 속에 짙은 공허와 불안, 고독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어쩌면 감추인 뒷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즐겨 읽었던 작가 중에 토마스 만과 괴테가 있었고 나중엔 성서와 키에르케골의 철학에 심취했었다고 하니, 혹시 이후에 그의 말년의 병상에서 "성(城)"의 라스트를 은총과의 만남으로 다시 쓰기를 원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장 13, 14, 16절]

 

 건강한 여름 보내십시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0신 (2005년 7월)

사진: 체코 프라하.  2005년 5월 촬영

카프카가 거주했던 황금소로의 사진들은 "모두가 행복하게-수묵 blog"에 올려진 사진들을 빌려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