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가 쓰여진 역사의 현장
-- 얀 후스와 프라하 구 시가 광장 --
프라하 성, 카를 다리와 함께 빼어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프라하의 상징은 바로 구 시가 광장(Old Town Plaza)입니다. 타임머신을 5, 6백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것 같은 중세의 거리 풍경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거리와 광장.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솟은 성당의 첨탑들과 연두색 돔, 벽돌색 지붕을 이고 선 하얀 벽의 집들, 정교한 조각품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채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왕궁과 박물관들. 시대를 따라 변천해 간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들의 건축물들이 공존하는 프라하의 거리는 마치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극무대와도 같았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아마데우스"를 위해 무대 장치를 해 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걸으며 왠지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까요?
구 시가 광장은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었고 종교개혁사가 쓰여진 장소였습니다. 4백년 전, 신교와 구교와의 종교전쟁의 물결이 몰아쳤던 곳입니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 자체가 그러한 역사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힘차게 치솟은 검은 쌍둥이 종탑 때문에 이 광장의 상징적인 건물이 된 고딕양식의 틴 성당(Church of Our Lady of Tyn 1365년 건축됨)만해도, 처음엔 구교의 성당이었던 것이 한때 신교 성당이 되었다가, 다시 구교 성당으로 바뀌어지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광장 중앙엔 체코인들이 마음으로부터 흠모하는 종교개혁의 물꼬를 텄던 개혁자, 얀 후스(Jan Hus 1370-1415)의 동상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진리를 위해 죽기를 선택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 후스. 1415년 7월 콘스탄스 공의회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 당한 후스의 영향으로 체코는 종교개혁의 발원지가 됩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켜라" 얀 후스의 동상에 쓰여진 문구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했을까, 도대체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후스의 생애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서너 군데 검색해 본 내용을 아래 발췌, 요약해 보았습니다.
[후스에게 사상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성경이 성직자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이 되게 했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존 위클리프(1324-1384)였습니다. 위클리프는 당시 교황이 세속 정치권력을 조종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성서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나 전통보다 우위에 둘 것을 주장함으로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선구자적인 인물입니다. 후스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프라하에 돌아와 프라하 대학 철학부에서 강의했고, 1402년부터는 3천 명 가량 모이는 프라하 베들레헴 성당에서 설교자로 활동했는데, 그의 모국어를 중심한 신학운동, 교회개혁과 사회윤리적 내용을 담은 설교는 평민들로부터 왕족, 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그러나 후스의 비판이 중세교회의 치부였던 면죄부 판매에 이르자 교황, 교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됩니다. 개혁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프라하의 대주교는 교황으로 하여금 명령을 내려, 위클리프의 작품을 금서로 하고, 설교도 성당과 수도원 내에서만 하도록 합니다. 이때 후스는 오랜 숙고 끝에 그 같은 교황의 칙령에 순종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유롭게 학교와 강의실에서도 설교를 했습니다. 결국 1411년, 교황은 그에게 파문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보헤미아의 국민들은 후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 후스와 교황청의 정면 대결이 전개됩니다.
후스는 교황이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면 과연 교황으로서의 권위가 계속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야말로 교황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 신자들을 포함하는 궁극적 권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성경에 순종하지 않는 교황에게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교황 요한 23세가 전쟁 비용에 쓸 목적으로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를 비판하며 "죄의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인데, 면죄부 판매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흥분한 요한 23세는 후스를 재차 파문시켰고, 1414년 콘스탄스 종교대회에 참석했다가 체포, 구금되게 됩니다. 종교회의에 순종하고, 이단사상을 철회하면 방면해 주겠다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후스는 자기가 이단 사상을 철회한다면 스스로가 이단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결과가 됨으로 이를 거부한 후 담담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유일한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소하리라. 나는 그분의 손에 처분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 증인들이나 오류에 가득 찬 회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와 공의로 모든 개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415년 7월 6일. 머리가 삭발되고 입고 있던 사제복이 찢겨진 채,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후스는 자신의 저작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시편을 낭송하는 후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주 예수님, 바로 당신을 위하여 이처럼 잔인한 죽음을 아무런 불평없이 감당합니다. 부디 나의 적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이렇게 후스는 콘스탄스 종교회의 운동자들에 의해 장작더미 위에서 이단자의 누명을 쓴 채 한 줌의 재로 화했습니다.
후스의 생애와 사상은 한마디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열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가 화형되기 전 남긴 글은 그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했던 진리가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그것은 진리가 너를 죄와 악마와 영혼의 죽음과 마침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후스의 처형 뒤 후스의 사상과 뜻을 이어받은 강력한 신앙공동체인 보헤미안 동포단이 형성돼 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체코 민중의 가슴에 심어졌습니다. 보헤미안 동포단은 경건주의의 모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했습니다. 1432년 후스파 교도들은 공의회가 열리는 바젤에 와서 후스가 지향했던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후스는 단순히 교회개혁의 선구자로서 뿐 아니라 주체적인 민족정신을 고양시킨 애국자로 지금까지 체코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프라하 구 시가 광장 중심부에 세워진 후스의 동상은, 후스가 사망한 지 500주년 됨을 기념하여 1915년,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체코인들에게 후스는 민족 주체성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 민족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스승입니다. 1968년, 막 움터 나오던 자유화의 새싹,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군의 침공 당시, 이 얀 후스의 동상의 눈은 검은 띠로 가려지기도 했습니다. 피어나지 못하고 떨어진 민주주의 죽음을 애도하듯이...
또한 바로 이 구 시청사 앞에는 "1621년 6월 21"일이란 글자가 광장 바닥 돌 위에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종교전쟁 당시, 개신교 지도자들이 참수당했던 날짜를 기념한 것입니다. 이 날짜와 함께, 바닥에 박혀 있는 색깔을 달리 한 보도 블록 27개는 그때 이 자리에서 참수되었던 27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추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구교도들에 의한 박해의 역사를 정식으로 참회하며 사과했다고 하니, 이 구 시가 광장이야말로 종교사가 계속 씌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0신 (2005년 7월).
사진: 2005년 5월 체코 프라하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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