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동유럽(E. Europe)

동유럽: 뮌헨-님펜브르그 여름 궁전, 다카우 유대인 포로 수용소

wisdomwell 2007. 10. 15. 14:14
여행지
동유럽: 뮌헨-님펜브르그 여름 궁전, 다카우 유대인 포로 수용소
여행기간
2005년 5월
비용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나의 여행 스토리

두 개의 창밖 풍경

-다카우 유태인 포로 수용소와 님펜브르그의 여름 궁전-

 

다카우(Dachau). 뮌헨 근교의 소도시. 유태인 학살을 다루었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 도시 이름, 다카우. 이차대전을 다룬 영화 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유태인 포로수용소가 있는 도시. 평소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를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여행일정 중에 다카우가 끼어 있는 것이 저의 관심을 끌었었습니다.

포로수용소로 들어가는 까만 철문엔 "Arbeit Macht Frei. 일이 자유롭게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철장 안에 가두어둔 채 강제노역을 강요하면서 감히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일단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 살아서 다시 나올는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철장 문을 들어섰을 60년 전의 포로들의 공포를 느껴봅니다.

 

넓은 운동장 중앙에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가 있고 우편으로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있는 나치군을 위한 행정 건물, 그리고 저만치 좌측에 유태인 포로들이 살았던 막사들이 있었습니다. 막사들이 도열해 있는 중앙 큰 길 좌우편엔 포플러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그 푸른 잎새들로 포로수용소 안의 황량함을 다소 완화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이차대전 당시 갓 심겨진 어린 나무였을 이 포플러들은, 이 수용소 안에서 일어났을 온갖 만행과 참상을 목도한 말없는 증인들입니다. 철조망 울타리 바로 앞에 우뚝 선 감시 망대. 그 앞 풀밭엔 60년 전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름 모를 하얀 풀꽃들이 속절없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당시 30개의 막사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기초석들만이 남아있고, 단지 첫줄의 캠프만을 복원하여 전시용으로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208명을 수용하도록 지어진 막사 안으로 때로는 1,600명이 밀려 들어왔었다니 그 상황이 어땠을까요?

 

아직도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지는 숨막히는 포로수용소의 막사 안에서 창밖을 보며, 1945년 봄 바로 이 자리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쳤을 창밖의 암울한 풍경을... 수용소 주변을 두르고 있는 전선이 얽힌 철조망. 탈출이 어렵도록 철조망 앞에 파놓아 물이 흐르게 한 수로(水路). 이탈자를 감시하는 높은 망대. 나치의 서슬프른 눈빛, 군화 발자국 소리. 저만치 화장터에서 뿜어나오는 연기. 연기 속에 실려오는 시체 타는 냄새. 황량한 수용소의 캠프들. 핏기 없는 얼굴들.. 소망을 잃어버린 발걸음. 극한상황 속에서 해골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 적대감. 멸시, 잔혹,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 될대로 유린된 곳.


다카우에서 떠나온 지 불과 반시간도 못되어 저는 뮌헨 시에 있는 님펜부르그 성(城) 발코니에 올라 서 있었습니다. 님펜부르그는 페르디난드 선제가 그의 부인 사보이 사이에 낳은 아이 임마누엘을 위해 지은 여름 궁전으로 그 정원이 유명합니다. 눈 앞에 탁 트이며 전개되는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 베르사이유 궁전의 뜰과도 흡사한 형태의 정원이었습니다. 한창 하얀 꽃을 피우기 시작한 마로니에 나무들이 정원 가장자리에 울창하게 늘어서 있었고, 중앙 길 좌우엔 조각품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초록색 잔디 위엔 페튜니아의 푸른 빛 보라색이 잔디 선과 평행을 이루며 심겨져 있었고 정원 중앙엔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댑니다. 궁전 앞쪽으로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수많은 창문을 지닌 하얀 벽의 단정해 보이는 궁전의 실루엣을 수면에 그대로 담고 있었고 그 위로 백조들이 우아한 자태로 미끄러지듯 헤엄쳐 갑니다.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창밖에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조형미가 함께 어울어진 정원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며 여름날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두 개의 창밖 풍경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제 마음속에서 오버랩 됩니다. 님펜브르그 여름궁전과 다카우 포로 수용소 막사에서 보는 창밖 풍경.

왕의 여름궁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타고난 그의 신분 때문에 그곳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다카우 포로 수용소의 사람들도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기에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와는 관계없이 타고난 인종과 신분이 그들을 그곳에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상황을 경험합니다. 그들 자신의 업적이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문득 인생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는 참 여유있고 행복하게 호사스런 정원 풍경을 즐기며 인생을 보냈고, 또 누구는 단지 어느 특종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짐승보다도 더 처참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살다가 죽어갔단 말인가?

 

그러나 저는 곧 맥스밀리언 콜베 신부를 기억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제비 뽑혀 죽임을 당해야 할 사나이 대신, 자신은 처자식이 없는 몸이니 그를 대신하여 죽겠다고 자원했고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쳤던 한 신부, 예수처럼 친구대신 죽어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제 말입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이 기술했듯이, 짐승처럼 취급당했던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의연함을 가지고 삶과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면 님펜브르그의 왕족, 귀족들이 그들의 호화로운 삶 속에서 진정 행복과 평화를 누리며 살았겠는가? 반문케 됩니다. 오히려 가진 자의 교만과 이기심, 권모술수, 나의 소유를 잃지 않으려는 집착으로 불안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이번 여행중 방문한, 비엔나에 있는 셴부른 궁전의 한 방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이 가져온 비극을 안고 있는 방이었습니다.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아 루이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이 방에 연금된 채 살다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죽어갔습니다. 참된 평화와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가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느냐와는 무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곳은 궁전일 수도 있고 포로수용소일 수도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늘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예수님 주시는 사랑의 힘,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 사는 장소와 관계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때,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코르작크와 그의 고아들"이라는 희곡에서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게된 아이들에게 천국을 그려 보여주며, 가스실의 공포를 오히려 평화롭게 맞이하도록 독려한 주인공 코르작크의 이야기 같은 사건들이 실제로도 일어났으리라 믿습니다. 비록 죽음의 자리지만, 참된 사랑이 있는 곳, 그곳은 분명히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다카우의 을씨년스러움 속에 성스러움이 묻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어찌 섣불리 다카우의 화장터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의미없이 죽어갔고, 님펜브르그 궁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행복했다고 속단할 수 있겠습니까?


필립 얀시는 다카우 포로 수용소 마당의 신교 예배당에서, 대학살의 생존자이며, 인간의 악행의 구렁텅이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은 한 놀라운 사람을 만납니다. 다카우에서 4년간 포로 생활을 했던 크리스천 리거였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반대한 독일 주립 교회의 지 교회인 고백 교회에 속했었습니다. 리거는 필립 얀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니체는 사람이 만일 자기 생의 이유를 안다면 고통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 다카우에서 훨씬 더 큰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내 생의 주인공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분은 그때에도 나를 지켜 주시기에 충분하셨고, 지금도 역시 나를 지켜 주시기에 충분하십니다."

 

한 번은 리거가 수용소 안에서 아내의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 사도행전 4장 26절-29절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별 감동없이 그 말씀을 읽고 지나갔는데, 같은 날 심문을 앞두고 초조해 있었던 그에게 어느 목사가 성냥갑을 몰래 건네주었습니다. 나중에 성냥갑을 열어보니 그속에 쪽지 하나가 있었고 그 쪽지에 "사도행전 26절-29절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리거는 이 우연한 일치에 놀라며, 하나님이 이곳에 그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고, 이 사건은 그가 그후 4년 동안 다카우에서 보게 될 잔학, 살인 그리고 인간의 악행이 흔들어 놓을 수 없는 바윗돌 위에 그의 믿음을 세워 주기에 충분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해 내시지도, 내 고난을 쉽게 만드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나에게 그는 여전히 살아 계시며, 여전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신다고 증명해 주셨습니다."

고통이 심한 곳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더 밝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 당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와 연합하셨다. 그는 상처받으셨고, 피흘리셨고, 우셨고, 고난당하셨다. 그는 고통받는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심으로 언제나 그들을 높여 주셨다. 그는 지금도 그의 영을 통해, 그리고 우리를 지탱해 주며 몸된 교회의 머리를 위해 우리의 고난을 덜어주도록 위임받은 그 몸의 지체들을 통해 우리를 섬기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필립 얀시/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글: 이 영순  (새벽에 쓰는 편지)



**  님펜부르그 궁전 앞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