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동유럽(E. Europe)

프라하의 천문시계

wisdomwell 2008. 6. 9. 14:55

천문시계 -- 다가오는 죽음을 알리는 시간의 흐름-

 

 프라하의 구 시가지에서, 모든 관광객이 꼭 보고가는 명물이 있다면 단연 천문시계입니다.  구 시청사 높다란 벽돌탑 아래쪽에 설치된 유서 깊은 시계.  이 시계속엔 과학과 철학과 역사와 종교, 농사와 정치 권력 등 한 도시의 다양한 삶의 양태가 함축되어 있어 마치 마법의 시간이 담긴 듯한 흥미로운 시계입니다.  15세기 초 미쿨라스가 처음으로 시계를 만들어 이곳에 장치했고, 15세기 말 하누스가 다시 시계를 제작했으며, 16세기 타브로스키가 재차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탑 벽면에 두 개의 커다란 시계판이 위 아래로 장치되어 위쪽 시계판은 시간을 알리고(12궁(宮); zodiac), 아래쪽은 농사월력으로 12개의 원 속에 12달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위쪽 시계판은 하늘색과 갈색과 검은색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각 해가 떠 있는 시간, 일출, 일몰을 알리는 시간, 그리고 밤 시간을 서로 다른 색깔로 알려줍니다.

 

 이 시계를 다른 시계들과 차별화 하는 재미있는 것은 천문시계 좌우에 있는 남자 인형들입니다.  위쪽 시계의 좌측에는 거울을 든 인형과 주머니를 쥔 인형이, 우측으로는 해골인형과 기타를 든 인형이 서 있습니다.  거울을 든 인형은 인간의 허영심(Vanity)을, 주머니를 움켜 쥔 인형은 인간의 탐욕(Greed)을, 기타를 든 인형은 인간의 쾌락(Lust) 추구를, 그리고 해골 인형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가야할 종착역인 죽음(Death)을 상징합니다.


 

 

 

  해골인형은 다른 인형들에게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유희도, 권력도, 돈도 없어지고 모든 인간은 나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그 말에 다른  인형들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대답합니다.  "내가 그럴 리는 없지..."  그러자 해골인형이 잡고있던 줄을 잡아다닙니다.  "자, 시간이 되었다.  너희에게도 죽음의 시간이 왔다"  줄을 잡아다니며, 죽음을 알리는 종을 울립니다.


 

 시간의 흐름이 곧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임을 이 천문시계의 인형들은 이야기해줍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지금 우리들은 이 시계의 인형들처럼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물질과 쾌락과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어 재깍재깍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계속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채 그저 물결 따라 강물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 10, 12]

 

 

 아래쪽 천문시계의 좌우에도 역시 네 개의 인형이 있습니다.  좌측으로 천사 인형 옆에 펜을 들고 있는 인형은 역사기록자, 우측으로 망원경을 들고 있는 학자는 이 시계의 제작자인 하누스(과학자), 책을 들고 있는 인형은 철학자입니다.  거대한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결국 과학, 역사, 철학, 종교임을 상징해주는 것이겠지요.
 

이 천문시계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새삼 끄는 것은 또 하나.  매시 정각이 되면 한 시간 동안 닫혔던 시계판 위쪽의 두 개의 작은 창문이 열리면서 예수의 열 두 제자 인형들이 창문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음악과 함께 번갈아 등장하는 열 두 제자의 모습들을 보느라고 매 정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계탑 앞에 모여들곤 합니다.  종교사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프라하 시(市)다운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쪽 시계 왼편엔 검은 색깔의 쪽문이 있는데 이 문은 하누스가 시계를 점검하고 관리하기 위해 드나들던 문이라고 합니다.  천문시계는 프라하의 자랑이었고, 그러기에 이렇게 진귀한 시계가 또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권력자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꾸며낸 계략은 시계를 더 이상 만들 수 없도록 제작자인 하누스를 장님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십 세 때 장님이 된 하누스는 3년 후 죽음을 맞게 되는데, 죽기 전에 시계를 만져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시계를 만지고 죽은 후 어찌된 일인지 3백년 간 시계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이 한 과학자에게 미친 비극의 역사 때문일까요.  이 천문시계는 여느 시계가 갖지 못한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우리네의 삶이 죽음으로 향해 가는 시간의 흐름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0신 (2005년 7월)에서

사진: 체코 프라하. 천문시계 (2005년 5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