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아프리카(Africa)

[케냐여행5] 마사이마라: 모든 야생동물을 품는 광활한 사바나

wisdomwell 2007. 10. 29. 08:01

 

 마사이마라의 광활한 사바나 (2007년 6월, ysl)

 

쓰지 않으면, 아프리카의 추억들이 모두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이 이름들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름들이 아니다. 너무도 내 기억 속에 진하게 박혀 있지 아니한가?

헤밍웨이가 다시 가보고 싶어했을 만도 하다. 영원한 자유로움의 상징 같은 곳이 아닌가? 온갖 동물들이 포효하고 서로를 부르고 달리며 소리내는 아프리카의 밤을 바라보며 그는 말한다. 증오, 굶주림, 공포, 사랑 모든 것을 품고있는 소리라고... "한 권의 책"이라고 그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묘사한다.

아프리카는 모든 인간 속에 깃들인 야성을 일깨워준다. 모든 인간 속에 잠재한 남성성을 불러 일으켜준다. 방랑과 자유로움과 본능과 직관의 세계.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는 정착을 거부한다. 구름처럼 떠돈다. 자유와 모험과 예측을 불허하는 위험. 광활함. 탁 트인 끝없는 초원. 지평선과 맞닿은 끝간데 없는 사바나.... 가끔씩 외롭게 서있는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얼룩말과 누우(Gnu: 윌더비스트)의 무리들.... 그러나 그곳에 찾아드는 돌연한 긴장감. 쫓기고 쫓는 생존을 위한 사투. 그것은 인간 속에 내재한 야성을 잠깨우는 풍경들이다.

눈을 감으면,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가 전개되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 마음은 아직도 마사아마라의 대 초원을 헤맨다. 사바나의 기억은 쉽게 나를 놓아줄 것 같지 않다. 아니 그 대평원은 아프리카의 둥둥 북소리처럼 언젠가는 나를 그 곁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말리라. 헤밍웨이를 다시 그곳으로 불러들였던 것처럼.


 

천국을 향한 지옥길: 나록에서 마사이마라로


 

나록을 뒤로하고 우리들의 마지막 목적지인 마사이마라로의 장정에 오른다. 약 2시간 40분이 소요되는 길인데, 여정의 반은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게 된다. 여행의 거의 마지막 지점이어서인가? 모두들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앞서 가던 우리 팀의 차가 길옆에 정차한다. 뒤따르던 차들도 보조를 맞추어 차를 멈춘다. 뒤에 우리 팀의 차 하나가 멀미 난 사람이 있어 처져 있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게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사바나의 풍경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흐릿한 날씨. 얼룩말이 초원을 거닌다. 지평선 가까이 기린 두세 마리가 그 긴 목을 하고 느릿느릿 걷는다. 국립공원도 아닌 길인데 이렇게 야생동물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곳 마사이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은 떼어놓을 수 없는 환경의 일부, 아니 그들의 삶 자체가 아닌가?

 

승합차가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에 사방이 어두워진다. 비가 왔었는지, 도로의 웅덩이엔 물이 차 있다. 비에 젖은 길이어서 먼지로부터는 해방되었는데, 대신 진흙탕으로 죽이 된 길이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다. 길이 미끄러워 달리는 차들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얼마 되지 않아서다. 앞에 가던 차들이 더 이상 가지를 못한다. 버스 하나가 앞에서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길이 좁은 탓에 다른 차들도 모두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 5분, 10분, 20분이 지난다. 이러다 사바나 한복판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스러워진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우리 일행의 차들이 하나씩 하나씩 진흙길을 조심스레 돌진하여 문제의 버스 옆을 간신히 비껴 앞으로 전진한다. 비틀비틀 용케 웅덩이 속에 빠지지 않고 여섯 대의 차가 모두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던 곳에서 곡예를 하듯 헤어 나온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어렵게 차를 몬 운전사 조지에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

 

구름 낀 하늘과 일찍 찾아오는 적도의 저녁이 창밖 풍경을 어둠 속에 잠겨들게 한다. 서둘러 집으로 향해가는 마사이 부족의 소떼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간다. 마사이 사람들의 촌락이 여기저기 펼쳐진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이 멀지 않은 곳이다. 이 국립공원 역시 마사이족의 땅이었는데,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주민들과의 마찰이 많았다. 마사이마라의 사바나는 이들이 조상 대대로 소를 몰고 다니며 풀을 찾던 곳이 아니겠는가? 야생동물들을 보호키 위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어둠 속에 비가 흩뿌린다. 자동차들은 진흙탕 웅덩이들을 피해 가느라 덜컹거리고... 가는 길은 지옥 같은데, 국립공원 안에 끝없는 초원과 그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생 동물들의 모습은 천국이다. 천국에 이르려면, 좁고 험난한 길을 지나야만 한다. 어쩌면, 이 길이 이렇게 어렵고 험했기에 마사이마라 사바나의 풍광이 더 더욱 돋보였을는지도 모르겠다.

 

1969년 5월 여행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오대산을 갔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만 해도, 영동고속도로가 없어, 마장동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국도를 이용하여 강원도 진부에 갔었다. 거의 하루 종일을 버스에 시달려야 했다. 진부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오대산 월정사에 이르니 벌써 땅거미가 지고, 코끝에 느껴지던 해질녘 전나무의 향기가 얼마나 싱그러웠었는지... 다음날 아침 일찍, 월정사에서 10km 떨어진 상원사로 향했었다. 적막강산이었다. 타박타박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의 구비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한 구비를 지나면, 또 다른 구비가 나타나곤 했다. 인가는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심심산천이었다. 5월의 신록과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새 소리만 이어지는 호젓한 길이었다. 두어 시간을 걸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드디어 상원사에 이르러 아래쪽의 전나무숲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그 상쾌함이란... 상원사에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적멸보궁이 있는 곳에 올랐다. 앞이 탁 트여 아래쪽으로 낮은 산들과 숲이 눈 아래 깔린다. 그곳엔 아직도 진달래가 피어 있었고, 진달래꽃들 사이로 벌 두어 마리가 윙윙 날개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다. 오월의 햇살이 쾌적하리 만치 따뜻했고, 나는 그 분위기가 너무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이 어느 산에 올라서 느꼈던 그 분위기와 비슷한 데 놀라고 있었다.

 

그 뒤에도 두 세 번 오대산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가장 최근 그곳에 간 것은 1993년이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은 더 이상 예전의 그 길은 아니었다. 영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누구든지 쉽게 올 수 있어서인가?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은 자가용들이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도보로 호젓한 산길을 걷던 낭만이, 자가용들의 먼지로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수많은 인파로 더 이상 그곳은 심심산천일 수가 없었다. 내 추억의 앨범 속에서나마 1969년 5월의 오대산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오대산을 떠올리며, 마사이마라로 가는 험한 길이 그대로 있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가는 길이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자연 관광객들을 통제케 되고 사바나의 자연도 사람들이나 차의 매연으로 인한 피해를 덜 보지 않겠는가? 사바나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그 원래의 모습과 가장 가깝게 있을 수만 있다면, 이같은 자동차의 덜컹거림은 얼마든지 기쁨으로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부러 놀이공원에 가서도 롤로코스터를 타니 말이다.

 

 

 

 

모든 야생동물을 품는 마사이마라의 광활한 사바나

 

새벽,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마사이마라의 사바나를 우리 일행을 태운 사파리용으로 개조한 일제 승합차가 달려간다. 차 지붕이 열려져 있어, 야생동물이 있으면, 열려진 지붕 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동물들을 카메라 렌즈에 담을 수 있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일어나 어둠 속을 응시한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은 초원에 사자의 몸이 얼핏 보인다. 무조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플래시가 번쩍 터진다. 과연 사자가 렌즈 안에 담겼을는지는 의문이다. 조금 후 여명의 빛 속에서 두 마리 가젤을 보았다. 다시 그 가젤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중에 프린트된 사진을 보니 가젤의 눈 대신 동그란 안광(眼光)이 찍혀 있었다. 원시(原始)의 빛처럼 느껴지는 안광이었다.

 

**마사이마라 초원의 아침

 

점차 마사이마라의 초원이 밝아져 온다. 그러나 잔뜩 구름이 낀 날씨여서 여전히 잿빛 어둠의 자락이 사바나를 덮고 있다. 제법 키가 자란 누렇게 마른 풀들이 초원을 뒤덮고 있어서인가? 어제 마사이마라의 국립공원을 향해 오는 길에서 보았던 그 많던 동물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그 흔한 얼룩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약 30분 간을 그 드넓은 초원을 달렸는데도 동물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섭섭하긴 했지만, 사바나의 아침녘, 그 쓸쓸한 듯한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조용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황량한 초원 위에 단 한 그루 외롭게 우뚝 선 나무의 모습이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사면이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이 넓은 사바나의 초원이 주는 느낌은 청결함이다. 수많은 동물들이 풀을 뜯고 거대한 양의 배설물을 쏟아내고 있는데 어찌 이 초원은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짐승의 똥을 돌돌 말아, 땅 속에 파묻는다는 초원의 청소부, 말똥 풍뎅이의 숨은 노력의 이야기를 듣는다. 야생동물의 배설물은 다시 이곳 초원의 풀들을 자라게 하는 자연퇴비로 순환된다. 풀은 동물들을 먹이고, 동물들은 풀을 자라게 하며 이들은 수천, 수만 년을 함께 도우며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오른 편으로 낮은 산이 누워 있었는데, 그쪽은 탄자니아라고 한다. 바로 동물들의 천국 세랭게티 국립공원이다. 보너스인가? 동물들을 만나지 못한 채 별 소득없이 돌아오는 길에 세 마리 사자 가족들이 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파리 차들이 사자들을 둘러싸고 모두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는다.

 

**마사이마라의 야생동물들

 

 

 

 

일단 호텔에 와서 조반을 먹은 후, 다시 마사이마라의 들판으로 사파리를 나갔다. 이번에는 마라 강쪽으로 가서 하마를 본다고 한다. 동물들이 이제서야 잠에서 깨어난 것일까? 얼룩말들의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가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길가 풀속에서 머리를 들고 앉아 있는 수사자와 만난다. 지친 표정이어서 아픈 사자인 줄 알았는데, 한창 사랑을 나누고 있는 수사자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기린 한 마리가 우리 일행이 탄 차 앞길을 서서히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바로 코앞에 선 기린을 보게 될 줄이야. 유연한 걸음걸이로 기린은 유유자적 길을 건너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누구보다도 하늘을 더 가깝게 보는 목이 긴 동물이어서인가? 초연하고 우아한 자세가 언제 보아도 멋들어진다.

몇 분 후, 길 옆 푸른 초원에 수 십 마리 임팔라의 암수 떼들이 모여있는 현장을 발견한다.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세련미가 넘치는 임팔라는 일부다처제를 원칙으로 한다. 다른 수컷들과의 싸움에서 최종 승자가 된 수컷 임팔라가 모든 암컷들을 거느리게 된다. 왼편에 암컷들이 몰려 있었고, 그들을 큰 뿔을 자랑하는 수컷이 다른 숫놈들로부터 보호하듯 막아서고 있다. 오른 편엔, 싸움에서 패배한 수컷들이 재기의 기회를 노리며,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임팔라의 암놈들은 한 눈 팔지 않고, 최종 승자가 된 수컷만을 지아비로 모신다. 가장 강한 수컷으로부터 새끼를 얻고자 하는 본능이 작용한 탓이리라.


 

 

 

**국경을 무시한 누우떼의 대이동: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풀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사바나다. 바다 물결 같은 풀밭이어서 어제 길이었던 곳이 오늘은 초원이 되고, 그 위를 차들이 달리면, 다시 길이 되곤 한다. 앞차들이 남기고 간 두 줄기 바퀴 자국을 따라 차는 달려 초라한 돌기둥이 서 있는 지점에서 정차한다. 이 돌이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을 알리는 지계라는 것이었다. 돌기둥에 올라서서 그 위쪽 면을 보니 T 와 K라는 두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탄자니아의 T와 케냐의 K를 알리는 글자다. 이렇게 간단한 국경 표지판이 또 어디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작고 소박한 돌기둥이 광활한 들판 위에 서 있다. 지난 해 방문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국경, 요르단 국경의 삼엄했던 분위기들이 이곳 국경의 모습에 오버랩 된다. 마지못해 국경임을 알리는 듯한 T와 K의 작은 글자 표시가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결코 사람들에 의해 나뉠 수 없는 사바나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한창 제국주의 물결이 아프리카에 넘칠 때, 독일과 영국은 탄자니아와 케냐라는 이름으로 이 동부 아프리카의 땅을 인위적으로 갈라 차지한다. 지도를 보면 직선으로 이 두 나라의 국경이 갈라져 있다. 그곳 주민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사바나 지역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마사이족은 같은 부족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에 의해 졸지에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쟁투와 탐욕으로 물들어진 문명인보다는 풀이 자라는 곳을 찾아 머나먼 여정에 오르는 야생 동물들을 더 닮은 마사이족들은 이러한 국경을 무시한다. 누우(Gnu: Wildebeest)떼들이 열강들의 이기심으로 그어진 이 인위적인 국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세렝게티(탄자니아)에서 마사이마라(케냐)로 이동해 왔다가 다시 돌아가듯이 말이다.

 

   누우 (Wilderbeast)

 

누우는 참 재미있는 동물이다. 머리는 커다란 양같고, 꼬리를 보면 말과도 같은, 어찌보면 소를 닮기도 한 회색빛깔의 짐승이 수천, 수만 씩 떼를 지어 비 온 뒤에 새로 돋아난 풀을 찾아 매해 1,800마일을 시계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들의 눈엔 탄자니아나 케냐라는 구분이 있을리 없다. 그저 먹을만한 풀을 찾아나서는 사활을 건 대장정이 있을 따름이다. 세랭게티 초원에 풀이 마르면, 그들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들의 생존을 위해 긴 여행길에 오른다. 그 여정엔, 늘 위험이 도사린다. 사자, 치타, 하이에나가 호시탐탐 누우떼들을 노린다. 그들의 이동의 클라이맥스는 마라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이다. 리더격인 한 마리의 누우가 강에 몸을 던지면, 수천의 다른 누우떼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 과정에서 수 백 마리의 누우들이 희생된다.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짓밟혀 죽기도 하고, 마라강 속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악어의 밥이 되기도 한다. 새로 태어난 누우 새끼들 중 1년 생일을 맞지 못하고 죽는 비율이 85%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우떼들은 매해 7월이나 8월경, 어김없이 큰 무리를 이루며 이 강을 건너 마사이마라에 오곤 한다. 아직 6월 중순이어서인가? 누우떼들이 이동하는 장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마라 강에 하마와 악어

 

 

 

우리가 탄 차가 진흙빛 물이 흐르는 제법 폭이 넓은 시내에 이른다. 군복 같은 유니폼에 긴 장총을 든 안내인이 우리를 맞는다. 얼굴빛이 유난히 새까맣다. 자신의 이름을 바나바(성서에 나오는 바나바)라고 소개한 이 청년은 아주 친절하게 앞서가며 하마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길을 안내한다. 왜 총을 가지고 있냐?고 궁금해하자, 동물들이 습격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호신용으로 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저는 루오(Luo) 족입니다. 루오족은 얼굴이 까만 것이 특징이지요." "마사이족들은 귀를 크게 뚫었던데 왜 그렇게 하는거죠?" "귀를 뚫어 자신이 마사이족임을 나타내는 것이죠. 우리 루오족은 이렇게 안쪽 이빨을 빼서 우리가 루오족임을 나타냅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빠진 안쪽 이들을 웃으며 보여준다. 유태인이 할례를 함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듯,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이 부족의 사람임을 확인해 보이는 모양이다.

 

지난 밤 내렸던 비로 진흙바닥이 된 강가 길들을 우회하여 가다가 드디어 하마가 있다는 강으로 다시 내려온다. "마라 강입니다." 바로 이 지점은 아니겠지만, 누우떼가 건너야 하는 마라 강이다. 물살이 제법 센 듯, 흘러가는 물결이 느껴진다. 그 진흙빛 물 위로 하마의 쫑긋한 두 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반대편엔 헤엄쳐 가는 두 마리 하마의 등이 보인다. 바나바가 강 저편 언덕에 기다란 회색의 나무토막 같은 것을 가리키며, "악어"라고 한다. 영락없는 쓰러진 늙은 나무 같은데, 악어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강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악어의 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TV에서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강가에 와서 물을 마시던 얼룩말을 물고는, 그 버둥대는 얼룩말을 깊은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질식시킨 뒤, 서서히 그 사지를 찢어 먹는 악어의 모습이 끔찍했었다. 강 아래쪽을 보니, 과연 하마의 서식지답게 십 여 마리의 하마 일가족들이 귀와 코를 내어놓고 헤엄을 친다. 하마는 그 몸집이 보여주듯 대식가여서, 하룻밤 10마일씩 배회하며 3백에서 4백 파운드의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예의 그 사자와 다시 만난다. 이제는 아주 풀숲에서 벗어나 적나라한 모습으로 두 마리의 암수사자가 어울러져 있는 모습을 본다. 그를 둘러싼 인간 구경꾼들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 아프리카를 떠나며

 

 

나이로비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하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파리 여행도 이것으로 끝난다. 호텔 로비에 걸린 빅 화이브(Big Five)의 사진들이 정답다. 코끼리, 사자, 코뿔소, 표범, 버팔로. 이들 다섯 동물을 보았으면 봐야 할 동물은 다 본 셈이라고 한다. 이중 가장 빠르게 달린다(시속 110km)는 표범은 보지 못했지만, Big Four는 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온갖 동물들의 사랑과 굶주림과 공포와 경계심... 태어남과 생존을 위한 투쟁과 안식, 죽음의 이야기들을 품은 마라이마라. 황량하기에 더 아름다운 사바나를 뒤로하며, 아프리카를 떠난다는 사실이 새삼 아픔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이 사바나의 모든 것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게 되겠기에...

 

아프리카를 떠나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바나를 향한 애틋함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와디 럼의 사막이 그랬듯이, 이 사바나의 자연이 하나님 창조하신 때의 모습을 그래도 이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보다도 가장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직도 그 창조 질서에 절대 순응하며 살아가는 선량한 야생동물의 삶과 죽음이 이어져 가는 세계이기에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내 마음에 각인된 까닭이라는 것을...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88신 (2007년 11월)에서

사진: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2007년 6월 ysl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