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아프리카(Africa)

[케냐 여행] Out of Africa: 카렌 (Karen Blixen) 박물관

wisdomwell 2007. 10. 20. 13:55

Out of Africa: 카렌 (Karen Blixen) 박물관

 

나이로비는 해발 1,670m 고원에 위치한 도시다. 따라서 적도 가까이 있는 도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쾌적한 기후를 자랑한다. 무척이나 덥고 모기도 많으리라 예상했었는데, 바람은 살랑거리고 습도도 별로 느껴지지 않아 여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나이로비 시내의 매연은, 카렌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져 오면서 점차 사라져간다. 점차 외곽의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나무는 많아지고 차량은 뜸해진 탓이리라. 길 양쪽으로 푸른 초목이 무성해지며 보행자도 없다. 비로소 아프리카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공(Ngong)이라는 도로 이름이 설지 않다.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 Karen Blixen의 필명)의 책, "Out of Africa"는 이렇게 시작된다. "I had a farm in Africa, at the foot of the Ngong Hills.: 아프리카 공 언덕 자락에 농장을 갖고 있었지요." 바로 그 공 힐이 아닌가? "백 마일 북쪽으로 적도가 가로지르는 6천 피트 고원에 나의 농장이 있습니다. 낮에는 태양과 아주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은 맑고 쾌적합니다. 그리고 밤은 춥지요."

 

   

 

덴마크 출신의 카렌 블릭센은 1914년부터 1931년, 이곳 케냐 나이로비 근처 공힐에 살면서 커피 농장을 경영한다. 커피 농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녀가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아프리카의 풍경들을 담은 그녀의 책 "아프리카를 떠나며 Out of Africa"는 어떤 책보다도 이 대륙을 친근하게 서구인들에게 소개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5년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이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 덕분이 아닐까? (영화 "Out of Africa"는 1986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 감독, 각색, 촬영, 미술, 작곡, 녹음상을 수상한다). 메릴 스트립이 카렌 블릭센으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녀의 연인, 데니스로 분(扮)해, 동부 아프리카의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열연한다.

 

블릭센 남작부인이 살았던 36에이커 농장과 그녀의 저택은, 덴마크에 의해 케냐에게 선물로 주어지고, 케냐 정부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카렌의 삶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연녹색의 잔디가 넓게 펼쳐진 곳에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카렌이 살았던 담황색 기와지붕의 오래 된 단층 저택이 단아하게 서 있다. 영화 "Out of Africa"에서 보았던 바로 그 저택이라 눈에 익다. 내부로 들어가 거실, 침실, 부엌, 목욕탕을 돌아본다. 그녀가 이곳에 올 때 들고왔던 커다란 옛 트렁크, 구식 축음기, 커피를 끊이는 주전자며 커피를 재배하던 도구, 기타 당시의 생활용구 등 이제는 골동품이 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이닝룸에 걸린 초상화 속에 키쿠유족 소녀가 매력적이다. 카렌의 집에서 일했던 소녀를 그린 것이다.

 

앞뜰의 푸른 잔디가 내다보이는 거실 벽엔 빛 바랜 옛날 사진들이 붙여져 있다. 카렌의 젊은 날의 사진과 그녀의 노년의 사진이 대조를 이루며, 흘러간 세월들을 실감케 한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블릭센 남작과, 연인이었던 데니스의 사진이 함께 거실을 장식한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카렌이 밤이 깊도록, 그녀의 상상이 이끌어내는 스토리를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풀어내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마도 바로 이 거실에서 그녀는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요즈음 비디오 테이프 드라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듯이 데니스와 그의 친구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으리라.

 

 

두 사람은 사랑했고, 카렌은 데니스와의 결혼을 희망한다. 그러나 데니스는 이대로가 좋다며, 결혼을 원치 않는다. 그가 이곳 아프리카에 온 것은 자유에의 갈망 때문이었다. 붙잡아 두려는 여자와, 자유로움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남자와의 창조 이래의 갈등이 이곳에서 다시 재연된다.

 

데니스는 사냥을 다니며 사바나, 그 광활한 초원을 누빈다. 그의 영혼은 끝없이 자유를 갈망한다. 그를 아프리카로 오게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자유에의 갈망이었으리라. 그러나 여인은 정착을 원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자기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한다. 다시는 떠나지 못하도록... 그러나 그것은 남자로 하여금 그 여인에게 식상케 하는 일이 된다. 자신의 자유가 구속받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것은 그의 남성성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한 때문이다. 동물원의 표범처럼, 그는 그의 울타리를 참을 수 없다. 동물원에서의 안락을 누린다는 것은 그의 야성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안에 표범은 더 이상 표범일 수 없기에 자유를 사랑하는 영혼은 모험 속으로 자신을 던진다. 진짜 야생의 표범이 되기 위하여...

 

커피 농장은 끊임없는 관리를 요청한다. 한시도 그 농장에서 떠날 수 없도록 사람을 붙들어맨다. 카렌은 이러한 커피 농장에 묶여 있다. 농장은 정착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의 사랑하는 이도 자신과 함께 정착하기를 원한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데니스가 사랑하는 사바나는 농장과는 다르다. 야생의 동물들이 늘 풀을 찾아, 먹이를 찾아 이동하듯, 사바나는 정착을 거부한다. 사바나는 바람처럼 이리 저리로 사람을 불러낸다. 유목민의 삶이다. 항상 평원을 떠돈다.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하고 싶어하는 모험과 야성의 사람들은 이 아프리카의 초원이 그를 부르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방랑자의 삶을 택한다.

 

영화 "Out of Africa"는 바로 이러한 해묵은 자유와 모험을 갈망하는 방랑하는 남자와 정착하여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여자와의 갈등을 커피농장과 사바나라는 자연이 갖는 상징적인 배경을 십분 이용하여 그려낸다. 결국 데니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세렝게티의 초원 위를 날다가 추락하는 바람에 그가 그토록 사랑한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죽는다. 영원히 떠나버린 남자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가슴에 묻은 채 카렌은 1931년 그녀의 커피 농장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아프리카에 돌아오지 않는다. 1962년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선악과를 따먹은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과 함께 하나님은 또 하나의 벌을 덧붙이신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3장 16절]

여자는 불순종의 대가로, 집착과도 같은 영원히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모의 정을 품고 살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러한 숨막힌 집착이 오히려 남자를 떠나게 하기에 여자의 사모의 정(情)은 남녀의 관계를 깨트리는 형벌이 된다.

이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사랑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역시 모험과 자유를 추구하여 언제든 바람처럼 떠나려는 남자와 아기를 낳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여자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주제로 담는

다.

 

 

이제는 박물관으로 변한 카렌 블릭센의 녹색의 장원에 작별을 고한다. 저택 주위에 우뚝 선 오래된 나무들의 가지들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아마도 이 고목들은, 이제는 희미한 옛 이야기로 변해 버린 두 남녀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목격했던 말없는 증인이리라.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