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담긴 여행/아프리카(Africa)

[케냐 션교 여행1] 나이로비 빈민촌에서

wisdomwell 2007. 10. 25. 13:50

케냐 나이로비 빈민촌에서


 

케냐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어젯밤 늦게, 시카고에서 선교팀이 와 합류했다. 오늘은 수도 나이로비의 한 빈민촌에서 의료사역을 하도록 계획된 날이다. 시카고, LA, 샌 디아고, 플로리다, 덴버, 캐나다 벤쿠버 등 미국 곳곳에서 총 39명이 이곳에 와 Messengers of Mercy(MOM) 선교회 주관으로 관광과 선교사역을 하도록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6개의 중고 일제 봉고승합차에 예닐곱 명씩 나누어 타고 케냐의 한 빈민촌 교회로 향한다. 나이로비의 도로엔 차선이 없다. 오고가는 차들이 각자 알아서 뚫린 곳을 달린다. 거의 모든 차들이 낡아 족히 20년은 된 차들인 듯 싶었고, 한결같이 검은 매연들을 경쟁하듯 뿜어대고 있어,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운전자들도 이력이 난 듯, 신호등도 차선도 없는 길을 요리조리 곡예를 하듯 다른 차를 피해가면서 무절제하게 질주해간다. 도로 연변엔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언뜻언뜻 보이는 구멍가게에는 마르고 오래된 듯한 바나나 파인애플들이 조금씩 진열되어 있는데 초라하고 빈곤함이 묻어난다. 인구의 5%의 사람들에게 부(富)가 편중되고, 나머지 케냐인들은 빈곤속에 살아간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GNP가 4백불 정도라고 한다. 나이로비 외곽이어서 그런가?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벽으로 된 거리의 집들이 무질서한 모습으로 서 있고 보행자들의 차림에서도 가난이 엿보인다. 당나귀가 끄는 달구지들이 길 옆을 지나간다. 도로 옆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무언가 도구를 들고 툭툭 치며 자르고 있는 아주머니도 보였는데, 그 도구를 가지고서는 힘만 들었지, 일이 진척될 것 같지 않다. 모든 것이 낙후되어 보인다. 1950년 대 서울 외곽지대를 연상시키는 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포장 도로에서 벗어나, 흙길로 접어든다. 매연과 함께 흙먼지가 뿌옇게 이는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드디어 오늘 사역할 교회로 다가간다. 길 연변엔 벌써부터 아이들이 나와 서서 작은 손을 흔든다. 버터가 칠해 지지 않은 둔탁한 발음으로 마치 "쟘보! (스와힐리어의 인사말)"를 외치듯 아이들이 "하와유!"를 외친다. 낙후되고, 지저분해 보이는 집들 사이로 하얀 아프리카 나팔꽃들의 커다란 꽃잎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이곳 저곳 무리져 피어있어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슬레이트로 지어진 자그만한 건물 입구에 교회이름이 보인다. 교회 앞엔 이국땅에서 온 피부빛 다른 사람들을 맞는 흥분감이 어린이들의 얼굴에 가득하다. 까만 피부에 커다란 눈과 긴 속눈썹, 오똑한 코를 가진 이 나이로비 키쿠유 부족의 아이들은 모두 미남 미녀들이다. 더구나, 그들 입가에 담긴 미소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밝은 것인지.... 이곳을 향해오는 차 속에서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빈민지역의 위생상황, 경제적인 빈곤, 지저분한 환경들이 얼마나 이 아이들의 정서를 피폐하게 만들 것인가? 우려했었는데, 이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서, 이들 속에 내재한 어린이 특유의 건강한 마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찮게 여기는 연필 한 자루, 볼펜 하나가 이곳 케냐의 빈민촌 아이들에게는 기쁨이 되고, 생필품이 귀하기에 모텔에서 얻는 샴푸나 작은 비누 등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참 요긴하게 여겨진다. 내 어린 시절인들 이들보다 얼마나 더 나았겠는가? 6.25 전후(戰後)를 살면서 가난한 삶을 살았다.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이 아버지의 직장이었던 관계로 회사 사택으로 주어진 소박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공중변소 3개를 8세대의 가족들이 함께 사용해야 했고, 물을 쓰려면, 역시 공중 수도가 있는 곳에 나와 3개의 수도꼭지를 기다려서 써야 했었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조금도 불편하다는 느낌을 갖고 산 적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아파트의 다른 아이들과 밤이 맞도록, 술래잡기도 하고 연극도 하며 놀던 즐거운 추억들이 우선 떠오른다. 모두가 가난했던 탓일까? 전혀 가난하다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지 않은가? 물자가 부족했었기에 오히려 교회에서 암송대회 상으로 받았던 자그마한 크레파스를 아직도 기억하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 구진홍님 (케냐. 나이로비. 2007년 6월)

 

이 케냐 빈민가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빈곤하기에, 이들은 어쩌면, 우리 미국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리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 속엔 가난하기에 오히려, 작은 것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귀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들의 빈곤을 불쌍히 여기는 우리들보다도 그들의 마음은 더 풍요로울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곳 케냐 교회 목사님의 간단한 인사말과 기도 후에 본격적인 선교사역이 시작된다. MOM 선교회를 이끄시는 최순자 박사가 인도하시는대로, 다섯 개의 스테이션으로 나누어 각각 일할 곳이 할당되었다. 현직 의사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의료봉사, 환자들을 위해 의약품을 분배하는 일, 시력을 검시하고 근시, 돋보기, 썬 글라스를 나누어주는 일, 현지 목사님의 영혼구원을 위한 말씀선포, 정성껏 준비한 기념품을 선사하는 사역,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용 프린터를 이용해 가족사진을 찍고 프린트해주는 일들이 각 스테이션에서 행해졌다.

 

내게 할당된 사역은 연세 높은 분들께 돋보기를 나누어 드리는 일이다. 안경을 쓰고 잘 보인다며 좋아하는 모습들, 썬 글라스를 얻고 싶어서 눈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력검사를 하기 위해 한참 동안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이들... 글씨가 작아 성경을 읽을 수 없다면서, 그곳 스와힐리어로 된 성경을 가져와 보여주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덕분에 낡은 스와힐리어로 된 성경을 뒤적거려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린다.

 

1950년대, 구제품이라는 명목으로 우유가루통과 서양아이의 원피스를 받았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많은 것으로 6.25로 폐허가 되었던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주시고 축복해 주셨다. 수많은 선교사들을 세계 곳곳에 파송하는 선교의 나라가 되어, 우리가 도움 받았던 것을 다시 되돌리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 우리 일행이 이곳 사람들에게 준 것은 너무도 작은 것이지만, 이 일을 통해 이곳 주민들 가운데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알고 영접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면, 그것보다 귀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낡은 차들이 끊임없이 내뿜는 매연, 지저분한 거리,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 비위생적인 삶의 현장을 떠난다.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또 다시 손을 흔들며 더욱 친근해진 미소로 우리를 배웅한다. 저녁, 김현수 장로님으로부터 우리가 사역한 곳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날 갱단과 경찰의 대치로 33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어제도 십 여명의 사상자가 있었다. 삶은 문자 그대로 전장(戰場)이다. 경찰과 갱단의 전쟁터. 악의 세력과 하나님의 나라가 대치한다. 바로 이 빈민촌의 삶의 현장이 순수한 미소를 지닌 이 아이들의 영혼을 두고 각축을 버리는 치열한 전쟁터가 아닌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열정과 헌신이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새벽에 쓰는 편지 제 83신에서.  이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