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하고 기온이 떨어졌기에 더 삽상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아침들은 겨울 우기(雨氣)만 빼면 어김없이 밝고 아름답습니다. 축복입니다. 새들이 지저귀며 나뭇가지 사이들을 날아오릅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른 아침을 사랑하는 부지런한 새들입니
다.
제 창문앞 버겐빌라는 아직 깊은 겨울 침묵 속에서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씨클라멘은 제 철을 만난 듯 활기차게 솟아나와 빨간색과 흰 색의 꽃들을 피웁니다. 지난 늦가을 심었던 작은 동백나무에 어른 주먹보다도 더 큰 진홍색 동백꽃이 피어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동백나무는 겨울 속에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그 반짝이는 녹색의 잎들이 신선한 기쁨을 줍니다. 처음 심어본 아네모네는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처럼 고혹적인 자태로 봄의 화단을 장식합니다. 수년전 심은 수선화도 집 앞쪽과 뒤쪽에 각각 꽃을 피워 제일 먼저 봄의 도래를 알렸습니다. 오랜 친구가 다시 방문한 것처럼 정겹습니다.
조그만 타운하우스, 아주 작은 텃밭에 심겨진 꽃들인데 이렇게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즐거움을 주다니... 꽃들은 모두 다 다르게 각각의 개성으로 피어납니다. 다르지만 모두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작은 꽃은 작은 대로, 큰 꽃은 큰 대로, 색깔별로, 모양별로, 계절별로 다 제각각 다른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기쁨을 안겨줍니다.
우리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이 꽃들과 같을 것입니다. 나만의 개성과 독특함으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있을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들도 이 꽃들처럼 아름답지 않을까요?
안개꽃같이 아주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애잔한 하늘빛깔의 물망초, 하얗게 핀 커다란 칼라 릴리, 늘 성실하게 꽃밭을 각가지 색깔로 장식해주는 임페이션스, 그리고 6,7년 째 변함없이 꽃을 피워 아예 식구가 되어버린 진홍색 제라늄.... 모두가 사랑스럽고 귀합니다. 산책길에서 저를 반기는 핑크레이디의 수많은 꽃망울들은 마치 군무(群舞)를 추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개나리가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면, 남가주에서는 이 분홍색 아가씨들이 봄을 알려주는 귀여운 전령(傳令)입니다. 이웃집 뜰에 심겨진 자목련나무의 꽃들에선 우아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름날 찬란한 태양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는 선명한 빛깔의 채송화들은 마치 제가 가르치는 주일학교의 어린이합창단과도 같이 귀엽습니다.
채송화는 해바라기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채송화다운 채송화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채송화가 채송화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백합은 백합일 때라야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장미가 되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도 없을뿐더러, 나 아닌 다른 것이 되기 위해 살았을 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처럼 되려고 했을 때 쌓이는 것이라곤 열등의식뿐입니다. 백합에게는 충실하게 가장 백합다운 백합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것이 백합을 향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이 되어라. 가장 너답게 되어라.
너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부합되는 것임을 잊지 말라.
네가 받은 은사가 있느냐?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네가 가진 은사를 발견하고 발전시켜라.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너는 너 자신이 되어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로마서 12장 4절-6절]
사람들은 나의 봄 꽃밭에 꽃들처럼 서로 다릅니다. 그 받은 은사들이 제 각각입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단에 활력이 넘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우리들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며 섬길 수 있습니다. 그 다양성 때문에 서로를 품어주는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발과 손, 어느 것이 더 귀한가? 비교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肢體)된 우리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사명이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독특하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선 자리에서, 내게 주신 은사를 충분히 개발하고 발휘하여 섬기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요,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2신에서 (2003년 3월). 사진: 나의 뜰에 봄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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