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숲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숲과 돌은 어떤 스승한테서도 들을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준다."
-클레어보의 버나드-
새벽 두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다녀온 챈트리 플랫 계곡의 영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높이로의 등반이 아니고 깊이로의 하강이라는데 다른 산과의 차이점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처음 이 계곡을 찾았을 때, 왠지 섬뜩하고 불안해졌던 느낌들은 아마도 모든 것이 터져 있는 산 정상으로의 오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감추는 계곡으로의 내림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내 영혼의 은밀한 곳. 비밀의 화원의 굳게 닫힌 문을 슬며시 밀었을 때와 같은 조심스럽고 호기심 어린 느낌. 좁다란 오솔길을 구비구비 돌아 내려가 마침내 수풀 속에 감추인 계곡의 물과 만나는 놀라움, 신비로움,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 크고 작은 나무들, 그 숲 속을 흐르는 시냇물 줄기를 따라 인적 없는 산길을 무작정 걷노라면, 마치 미지의 세계로 초대받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또한 깊은 곳으로의 유혹이기도 하고 무의식과의 만남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LA라는 대도시 지척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 높은 산들 사이에 숨어있는 맑은 물줄기와 계곡의 수풀은 마치 여성의 내밀한 부분과 만나지는 감각적인 느낌도 갖게 합니다.
깍아지른 바위 봉우리들이 힘차게 치솟은 북한산이 남성경험이라면, 챈트리 플랫의 깊은 숲 사이를 흘러내리는 물은 대지를 축축이 적셔주는 여성경험입니다.
도봉산 등반이 밖을 향해 내 마음을 활짝 열어제치게 하는 경험이라면, 챈트리 플랫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향한 사색, 숨겨진 영혼, 감추인 무의식과 만나는 안을 향한 여행입니다.
계곡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토마스 모어가 쓴 희랍신화의 나르시서스를 재해석한 글을 읽었습니다. 나르시서스가 깊은 계곡, 축축함이 스며드는 분위기, 물소리만 들리는 고요 속에서, 수면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이야기가, 마치 챈트리 플랫에서의 경험을 되살려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그 동안 내 영혼을 돌보는 일을 등한시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도 챈트리 플랫 체험이 바로 내 영혼을 일깨우는 촉매가 되어 내게 도전해왔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깊은 골짜기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산꽃들, 바위와 주위 모습에 따라 변하는 계곡의 물,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나무줄기, 연녹색의 신록, 폭포에서 이는 물보라. 그리고 자연의 소리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 깊은 계곡의 영상들이 잠자는 내 영혼을 일시에 뒤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르시서스. 대리석처럼 반듯하고, 차갑고, 조각처럼 아름다운 청년.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사랑의 열병에 신음하게 된 비극적인 인물. 자기 도취에 빠져 아무 것도 베풀 수 없었던 청년은 결국 사랑의 아픔 때문에 쓰러져 시냇가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그 자리에 황금빛 꽃이 피었습니다. 이렇게 피어난 수선화는 유연하고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수줍음 속에 겸손함이 깃들인 꽃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영혼과의 만남은 우리의 옛 사람을 죽게 하고, 새 사람을 낳게 합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들은 그 고통 속에서 영혼과 만나지는 축복을 누립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늘 양지와 함께 그늘진 부분까지를 경험케 하고, 그런 경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영혼과 만나게 합니다. 토마스 모어의 나르시서스 이야기는, 마치 내 사랑의 아픈 경험들을 이야기해주는 듯 싶었습니다. 자기도취에 빠졌던 나르시서스 같았던 내가, 결국 사랑의 아픔과 사랑의 죽음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죽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나는 나를, 인간의 고통을 만났습니다. 그 아름답고 반듯하고, 차갑고, 대리석 같았던 내가 죽어 땅 속에 묻힌 경험... 그런데 과연 나는 이 자아의 죽음을 통해 수선화의 싹을 틔우고 있는가?
얼어붙은 겨울 땅을 뚫고 나오는 수선화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함, 겸허한 아름다움으로 미소짓는 황금빛 수선화를 나의 사랑의 죽음으로부터 피워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의 고통과 수치까지를 내 가슴에 보듬어야 합니다. 나의 죽음을 공포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어두운 부분, 그늘진 곳까지를 내 보일 수 있는 용기와 의연함 가운데서 황금빛 수선화는 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사진: 이 영순
챈트리 플랫(Chantry Flat)은 샌 개브리엘 산들 가운데 있는 계곡입니다. 남가주 LA 동북쪽 Arcadia 북쪽 산에 위치합니다.
'Photo Essay > 산 따라 물 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가 있는 풍경 (0) | 2010.04.09 |
---|---|
달력 2: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 (0) | 2010.03.11 |
겨울 산, 겨울 호수 - 록키 마운튼에서 (0) | 2009.01.14 |
이튼 케년 폭포와의 만남 (0) | 2008.12.30 |
록키 마운튼: 레이크 에스테스에서 만난 야생의 엘크떼 (0) | 2007.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