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 하실찌라도"의 신앙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축복만 즐기는 감상적인 신앙 생활은 믿음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 본질상 믿음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시험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데 있지 않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품성을 분명히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일어나는 많은 일 속에서도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셔도 끝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리라'는 확신입니다. 여기에 성경을 관통한 가장 숭고한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 [욥 13: 15]" -오스왈드 챔버스/주님은 나의 최고봉-
다윗의 인생의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아버지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여 그로 하여금 광야로의 피난길에 오르게 했습니다. 민심이 압살롬의 용의주도한 획책으로 다윗에게서 젊은 압살롬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언제 끝날는지 모르는 피난길에 오를 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워 다윗과 함께 떠나려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합법적 왕권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막 안에 두도록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사무엘하 15장 25, 26절]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에 도착했을 때, 기뻐 옷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춤추며 환호하던 다윗이 아니었던가? 언약궤는 그에게 자신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혈육상잔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시기에 언약궤를 그냥 두고 떠난다는 것은 다윗에겐 뼈를 깎는 아픔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불레셋과의 전쟁이 패배로 치닫자,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가 이길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부적처럼 자신들의 도구로 이용했지만 다윗은 조용히 하나님의 심판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뜻대로 내게 행하소서. 그것이 나를 향한 심판일지라도...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법궤가 부적이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도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 접었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이 다윗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주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나의 도구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진 않은지요? 나의 간절한 기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도외시한 채, 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완강한 고집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설득되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느브갓네살 왕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버리겠다는 왕의 서슬 푸른 명령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장 17, 18절]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을 정도에 이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복음 14장 36절]
하나님의 뜻이라면 설령 그것이 나를 고통을 넘어 죽음으로 이끄는 길일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최선의 것임을 확신하는 "그리 아니 하실찌라도"의 신앙은 언제나 우리에게 강한 도전이 되어 다가옵니다. 삶과 죽음의 벽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그 밑바닥에 깔린 까닭입니다.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5, 38-39]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8신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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