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나의 친구들

주신 것들을 누리라: 팔로스 버디스 아발론 코브에서

wisdomwell 2009. 8. 2. 05:59

주신 것들을 누리라: 팔로스 버디스 아발론 코브에서

 

 

지난 10월의 어느 토요일, 혜주가 사는 팔로스버디스  (Palos Verdes) 바닷가를 방문했습니다.  마침 세경이가 한국에서 왔길래 그녀에게 팔로스버디스 바닷가에 유리로 지어진 작은 교회와, 그 주변의 바다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유리교회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친구의 집 뒷마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혜주가 기른 여러 종류의 화초들이 그녀의 거실 앞에 작은 식물원이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인장 지난봄에 양옥이 한테 얻어온 건데 이렇게 꽃이 피었어."  선인장의 작은 줄기들이 제법 자라서 각각 제나름의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는데, 그 식물들을 길러낸 혜주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생각해봅니다.  엄마가 자기 아기를 자랑하듯이, 화분에 담긴 하나하나의 화초들을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혜주는 작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풀꽃 같은 꽃들을 특별히 좋아하며 감탄을 보냅니다.  "이 하얀 꽃 좀 봐.  이 안에 자주색 줄로 멋을 내고 있잖아."  무심한 사람들에겐, 꽃이 피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손톱만한 작은 꽃들인데, 혜주는 그 꽃을 애정을 섞어 들여다봅니다.  그러니까 그 작은 꽃은 멋을 낸 귀여운 아가씨가 되어 혜주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친구는 떨어진 벌집을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거실 앞 패티오에 놓아두고 있다가, 그것을 들어보이며 신기해합니다.  어린애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끔찍해하는 마음으로 떨어진 벌집을 멀리 던져버리던 나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가 되던지요....

 


 

 

 "글쎄, 다람쥐가 단감을 이 화분 안 흙속에 숨겨두지 않았겠니?" 다람쥐의 그 행동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중에 단감이 없어진 것을 알고 당혹해하는 '그 사랑스런 다람쥐' 이야기를 한참동안 들려줍니다.  "한 번은 밤중에 파란 안광이 보이기에 고양이가 왔나 해서 자세히 봤더니 글쎄 라쿤이 온 거야.  불러서 먹이를 주었더니, 저만큼 떨어져 있던 가족들을 다시 데리고 오는 거야."  라쿤 가족이라고 동물을 의인화시켜 부르는 혜주의 언어 속에서, 그녀와 자연과의 거리감 없는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 같으면 겁을 내며, 행여 다시 나타날까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을 텐데...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Waldon)"에서 자신과 숲속의 동물, 식물들과의 자연스런 친화감을 묘사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후에 혜주의 인도로 그녀가 좋아하는 팔로스버디스 바닷가, 아발론 코브에 갔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밑, 험한 바위들 사이로 바닷물이 넘실대며 들어오는 곳입니다.  친구나 친지가 오면 으레 이곳을 보여줄 정도로 그녀가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물속에 잠기곤 하는 바위들이어서 물이 나간 뒤 바위가 조금씩 패인 웅덩이들엔 바닷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 고인 물 속에 작은 연둣빛 해초들과 검은 회색의 꼬마 홍합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집 뒷마당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혜주는 감탄하며 작은 물웅덩이를 드려다 봅니다.  내게는 별 감흥을 주지 않는 평범한 웅덩이인데, 혜주에겐 그것이 보물처럼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친구의 감격이 전달된 탓일까? 나도 덩달아 그 웅덩이 속에서 미니 바다를 보는 듯한 잔잔한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위 사이로 바닷물이 출렁이는 속에 흐느적거리는 말미잘과 공 모양의 보랏빛 성게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언뜻 나타났다가 얼른 바위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재빠른 작은 게들... 

 

혜주는 여름을 지난 바다에 더 이상 불가사리, 그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자연학습차 왔다가 다 가져갔나 봐.." 

 

 

작년 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별 모양의 붉은 불가사리를 떠올렸습니다.  친구는 능숙한 솜씨로 바위에 붙어있던 작은 전복을 몇 개 따서 그것이 살아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물속 바위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건 내가 키우고 있는 거야...  다음에 와서 또 봐야지.  얼마나 컸나."  

 


  이곳에 사는 전복과 성게와 말미잘과 불가사리들, 그리고 해초들은 모두 그녀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발론 코브, 이 절벽 밑은 주 정부의 것이 아니라, 혜주의 것이 아니겠는가?  등기상의 기록이 무슨 문제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경이의 눈으로, 기쁨으로 누리는 사람들에게 그 실질적인 소유권을 주시고 계신데....  친구가 아발론 코브의 소유권을 가졌기에 나도 덩달아 그녀의 기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의 경이가 나의 경이로 전달되고 그녀의 바다생물을 향한 애정이 나의 애정으로 전이되어집니다.  


 아, 하나님 주신 것들을 누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어라.

 

 

 

글: 2004년 11월, 새벽에 쓰는 편지 제 52신 ㅡ 지혜의 샘 블로그

사진: 2004년 10월, 남가주, 팔로스버디스(Palos Verdis)  아발론 코브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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