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나의 친구들

오랜 친구

wisdomwell 2007. 11. 5. 10:56

 

 

안녕하세요.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9일(2004년)까지 고국을 방문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벚꽃들이 바람 불 때마다 눈오듯 떨어져 내리고, 연둣빛 신록들이 우리 산천을 싱그럽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3주간의 방문이었지만, 1년 동안 두고두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이 기간에 모두 만난 것같이 바쁜 일정들을 보냈습니다.


제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연결-Connection"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끊어졌던 사람들과 다시 연결되었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마음 가득 뿌듯함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시(詩)처럼, 섬처럼 분리되어 따로 따로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깊은 바다 속에서 서로 서로 대륙으로 하나가 되어 연결되어 있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끈끈한 이어짐. 그리고 이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하나님께서 고독함 속에서의 만족에 익숙해져 있는 저를 공동체 속으로 불러내셔서 "연결됨"이 주는 기쁨을 또한 체험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사적(私的)인 일이 되도록 계획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우리는 다른 믿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영원히 서로에게 속한다."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장 5절]

 

 


                                                  오랜 친구

"11년만에 만났는데, 그저 어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중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네 명(수향, 세경, 옥희, 영숙)의 친구 중 하나인 영숙이가 말했습니다. 서로가 너무 달라서 도저히 친구일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친구냐? 고 다른 동창들이 묻기도 했는데, "그저 우리는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 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를 함께 보냈기 때문에 11년 동안 아무 소식 없이 지냈어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친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아무런 조건 없이 친구가 된 이 친구들이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생각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삶의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입니다. 싫은 점이 있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친구입니다.

일단 다시 만나니까, 11년의 공백, 아니 40년의 틈이 그대로 상쇄되며, 모두들 중학교 시절로 곧바로 되돌아 가, 그때처럼 깔깔거리며 웃고 추억 속에 잠겨 들어갔습니다. 숱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용납되어지고 있기에 만남이 편안합니다.

우리들이 친구인 것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정(情) 때문임을 압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성인이 된 후 만난 사람들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면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무엇무엇 때문에" 만남이 지속되는 조건적인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나의 옛 친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랑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가 율법(조건)의 관계라면, 후자는 은혜(사랑/무조건)의 관계입니다. 사랑과 은혜의 관계이기에 마음에 안식이 있습니다.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한동안 빈 채로 놓아두어서 한국 방문 중 제가 거처할 언니의 아파트 방에는 검은 먼지가 쌓여 있었습니다. 청소를 해야만 짐을 풀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피곤하겠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고. 넌 어서 샤워나 해, 그 동안 내가 방을 걸레로 닦아 놓을게..." 세경에게 대신 걸레질을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친구의 사랑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나를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언니같은 친구임을 알고 있기에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는 오랜 친구만이 줄 수 있는 자유로움일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5절]

예수는 우리를 향해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태초부터 나를 아시고, 또 영원까지 나를 아실 영원부터 영원까지로 이어지는 오랜 친구이십니다. 제가 이 친구의 존재를 의식한 것은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였습니다. 이 친구는 저의 어린 시절을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여중 때의 나의 친구들보다 더 오랫동안 내 삶 속에 관여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나의 옛 친구들과 소원해졌던 때에도 이 예수란 나의 친구는 계속 나의 뇌리 속에 있었고, 특히 고통스런 시기에는 더 가까이 계셔서 나를 일으켜 주셨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주셨고, 새로운 사명으로 인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오래 간만에 고국에서 친한 벗들을 재회하는 경험 속에서 저는 새삼스레 예수께서 나의 여학교 동창생들보다 더 오랜 친구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친구인 만큼, 그분의 사랑 속에서 참 자유함과 평안함이 있음을.... 인간적인 나의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되어지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케 되는데, 그들보다 더 오랜 나날들, 아니 영겁의 세월 동안 저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분이셨으니, 제게로 향한 그분의 용납과 사랑, 은혜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컸었던지 친구인 나를 위해 죽으실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주여, 당신께서 정말 나의 좋은 친구, 해묵은 친구 되시니 그보다 더한 축복이 없겠습니다.

주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46신

[사진: 2004년 4월 쌍계사. 보성차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