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나의 친구들

흔쾌한 베품

wisdomwell 2007. 11. 19. 11:29

 흔쾌한 베품

 

 11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큰오빠가 사는 덴버에 다녀왔습니다.  오빠 내외가 어머니를 다문 한 달간이라도 모시기를 원해서 오랜만에 덴버로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가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나"  "덴버에 갔다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니?" 어머니는 당신의 불안감과 모든 것이 잘못될 것만 같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과도한 걱정이 많으셨지만, 결국 오빠와 저의 권유로 덴버 여행을 하기로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허약함 때문임을 알기에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필요한 약과 옷들, 기타 소지품 등, 어머니의 여행 가방을 챙겨드렸습니다. 

 

 공항에 파킹을 하고, 떠나기로 작정하곤 있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관계로 누군가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별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유독 여행할 때만은 아무도 공항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래서 구차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외지에서 오빠들이나 친척들이 오면 늘 제가 공항으로 차를 가지고 나가는데, 막상 제가 공항에 갈 때면, 자유스런 마음으로 라이드를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저로 하여금 자기연민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젖어들게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둔 때인지라, 파킹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염려도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부축해야 하고, 가방도 두 개를 끌고 움직여야 하는데...

 떠나기 바로 전날 밤, 친구 양옥에게서 안부전화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어머니와 함께 덴버에 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다짜고짜 묻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공항에 데려다 주니?"  "공항에 파킹하고 가려고 해"  "안 돼지.  어머니 모시고 가는데...  내가 데려다 줄께. 몇 시에 떠나니?"  "아침 여섯 시에 떠나."  "그래?  내가 해줄께.  일찍 일어나니까...  돌아올 때도 내가 마중 나갈께."  "네가 해준다면, 나는 너무 좋지만, 괜찮겠니?"  "이웃사람들도 공항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으면 내가 라이드를 주는데, 친구인 너를 못해 주겠니?"

 

 친구가 흔쾌한 어조로 공항에 데려다 줄 것을 제안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타이밍도 절묘하게 일치하는 때 전화를 주어서 하나님께서 친구를 알맞은 때 전화하도록 하신 게 아닌가?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11월 22일. 새벽 6시.  양옥의 집으로 갔습니다.  친구가 춥겠다면서 저와 어머니를 위해 커피와 녹차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곤 어머니 목에 털목덜이를 매어주었습니다.  또 공항에서 기다릴 때 어머니 드리라면서, 바나나와 요구르트, 깐 호도가 담긴 봉투를 안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정성과 자상한 배려가 담긴 선물이었습니다.  나같이 둔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따뜻한 베품이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친구 덕분에, 터미널 입구에서 내릴 수 있었고, 이른 시간이어서 공항도 한산해 이렇다할 어려움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덴버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오빠 내외에게 어제 우연히 친구가 전화를 걸어 공항까지 잘 올 수 있었다고 양옥의 친절을 이야기했더니 오빠가 말했습니다.  "우연이 아니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셨구나."  사실 저 역시도 우연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친구의 섬세한 손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또한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친구는 그녀의 모든 삶 속에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양옥이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겐 거절하지 않고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 내 삶의 원칙이야.  오죽하면 그런 부탁들을 하겠니?"

 특별히 종교적이 아니면서도 늘 베품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 전도사이면서도 베풀고 섬기는 일이 낯설고 설익은 저 자신의 모습이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5신(2005년 12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