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를 걷는 것은 쉽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에는 깊은 묵상과 영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자극과 도전과 반성과 깨달음 또 위로를 얻습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을 수정케도 되고, 나의 알지 못했던 불순한 동기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는 참 귀한 영적 안내자입니다. 그의 묵상의 글을 읽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더 알아가게 됩니다. 그의 직관(insight), 그의 지혜는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글들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큰 위기를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과 자부심이 그 긴장과 압력을 능히 견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24시간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로 계속 살려면 성도라 할지라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탁월하고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즉 평범한 일들 속에서 뛰어나야 하고 보통의 거리에서, 보통 사람 중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주님은 나의 최고봉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선망하고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지에 나가 선교를 하고, 강단에서 열정적인 설교를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로 사람들의 고통을 잠재우고, 능력있게 부흥회나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거침없이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보며, 나도 그런 은혜 속에 있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을 위해서 탁월하고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닥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명예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명의 존재로서, 짐짓 보기에 별 가치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 일을 하며 24시간 살려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챔버스는 말합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거룩해지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지성과 영성으로 수많은 영재를 교육할 수 있는 하버드 신학대학원 교수의 자리를 버리고, 정신 지체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라르쉬의 데이 브레이크로 가서 그곳에서 그의 마지막 삶을 지체 부자유자를 도와주며 보냈습니다. 그가 받은 은사가 아깝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그의 결정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영성신학자로서 가르치는 탁월한 일을 하는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도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데이 브레이크에서의 24시간 단조롭고 의미 없어 보이는 장애인 사역을 하며 거룩해지는 일은 정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전도사로 사역하며, 교인들 앞에서 말씀 전하고 강의하는 일은, 늘 몸이 편치 않다고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관심을 요구하는 노모를 모시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처럼 보입니다. 더 쉽습니다. 보람도 느껴집니다. 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그것이 보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챔버스가 지적한대로, 설교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루해 보이는 끝없는 일상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나에게 맡겨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없인 불가능합니다.
"제자의 삶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충동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위를 걷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메마른 땅을 걸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께로 가기 위해 물위를 걸었지만 마른 땅 위에서는 예수를 멀찍이 뒤따랐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당신께 맡겨진 노약자나 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때로는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은혜에 매달리게 하심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에 이르게 하는 것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며, 물위를 걷는 탁월한 일이 아니라, 타박타박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땅을 주님과 매일의 삶 속에서 손잡고 꾸준히 걷는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당신의 단조로운 일상 속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에는 깊은 묵상과 영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자극과 도전과 반성과 깨달음 또 위로를 얻습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을 수정케도 되고, 나의 알지 못했던 불순한 동기들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는 참 귀한 영적 안내자입니다. 그의 묵상의 글을 읽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더 알아가게 됩니다. 그의 직관(insight), 그의 지혜는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관계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글들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늘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큰 위기를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과 자부심이 그 긴장과 압력을 능히 견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24시간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로 계속 살려면 성도라 할지라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탁월하고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즉 평범한 일들 속에서 뛰어나야 하고 보통의 거리에서, 보통 사람 중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이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주님은 나의 최고봉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선망하고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지에 나가 선교를 하고, 강단에서 열정적인 설교를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로 사람들의 고통을 잠재우고, 능력있게 부흥회나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거침없이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보며, 나도 그런 은혜 속에 있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을 위해서 탁월하고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닥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명예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명의 존재로서, 짐짓 보기에 별 가치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 일을 하며 24시간 살려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챔버스는 말합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거룩해지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지성과 영성으로 수많은 영재를 교육할 수 있는 하버드 신학대학원 교수의 자리를 버리고, 정신 지체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라르쉬의 데이 브레이크로 가서 그곳에서 그의 마지막 삶을 지체 부자유자를 도와주며 보냈습니다. 그가 받은 은사가 아깝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그의 결정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영성신학자로서 가르치는 탁월한 일을 하는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도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데이 브레이크에서의 24시간 단조롭고 의미 없어 보이는 장애인 사역을 하며 거룩해지는 일은 정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전도사로 사역하며, 교인들 앞에서 말씀 전하고 강의하는 일은, 늘 몸이 편치 않다고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관심을 요구하는 노모를 모시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처럼 보입니다. 더 쉽습니다. 보람도 느껴집니다. 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그것이 보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챔버스가 지적한대로, 설교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아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루해 보이는 끝없는 일상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나에게 맡겨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없인 불가능합니다.
"제자의 삶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충동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위를 걷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메마른 땅을 걸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께로 가기 위해 물위를 걸었지만 마른 땅 위에서는 예수를 멀찍이 뒤따랐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당신께 맡겨진 노약자나 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때로는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은혜에 매달리게 하심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에 이르게 하는 것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며, 물위를 걷는 탁월한 일이 아니라, 타박타박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땅을 주님과 매일의 삶 속에서 손잡고 꾸준히 걷는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당신의 단조로운 일상 속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4신 (2005년 11월) 중에서
'새벽에 쓰는 편지 >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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