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반갑게 악수하기: 홍당무, 계란, 커피
고통, 시련 앞에서 사람들은 각각 다르게 반응합니다. 어떤 이는 홍당무처럼, 어떤 이는 달걀처럼, 또 어떤 사람은 커피처럼...
탄줘잉이 편집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에 이런 예화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결혼 생활의 불협화음으로 심한 갈등을 겪는 딸에게, 지혜로운 아버지는 홍당무와 달걀과 원두커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끓는 물에 넣게 합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이 세 가지의 식품이 끓는 물에서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관찰하게 합니다.
"홍당무, 계란, 원두커피는 똑같이 팔팔 끓는 물에 들어가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홍당무는 솥에 들어가기 전에는 딱딱하고 강했지만, 끓는 물 속에 들어가자 정반대로 부드러워졌다.
계란은 쉽게 깨지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얇은 껍질로 내부의 액체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펄펄 끊는 물 속에서 삶아내자 내부의 액체가 단단해졌다.
원두커피는 더욱 특이하다. 끓는 물에 들어간 뒤 물과 하나로 융화되었고, 마침내는 물을 변화시켰다. 향기를 가득 담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고통 자체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고통에 대해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외부로부터의 어떤 고통들은 전혀 인간의 통제 영역밖에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한 반응만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끓는 물과도 같은 고통 앞에서 우리는 홍당무처럼 반응할 수도 있고, 계란처럼, 또 커피처럼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홍당무가 그랬던 것처럼 의기소침해지고 유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계란처럼 오히려 고통 때문에 더 거칠어지고 그악스러워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처럼 자신이 받은 고통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며 향기를 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 앞에 어떠한 반응을 선택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커피처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것은 팔팔 끓는 물의 소용돌이뿐이지만, 그래서 앞날이 어찌 될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명히 이 어려움 가운데서 선을 창출해내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그에게 있겠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를 신뢰하지 말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8,9절]
사도바울은 생사(生死)가 오락가락 하는 연속적인 고난 가운데서 그가 간파한 고난이 주는 유익을 위와 같이 고백합니다.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믿는 신뢰 속에, 사도바울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끓는 물의 고통 속에서 구수한 커피향이 되어 주변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바울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또한 그 위로를 릴레이 선수가 바톤을 넘겨주듯 고난 당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가 온갖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온갖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로, 여러분은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4-6절]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1신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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