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상담수첩

성경 속에 펄럭이는 노란 손수건

wisdomwell 2010. 9. 6. 19:12

 

 

성경 속에 펄럭이는 노란 손수건

 

 아침 산책길에 어느 집 나무에 매어 있는 노란 리본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이라크에 파병되어 그의 무사 귀환을 고대하며 부모가 달아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색 바랜 노란 리본 속에 기다리는 사람의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음을 봅니다.

 

 새벽 기도회 시간에 최은석 목사님이 구약 예레미야서를 강해하며 이 책의 주제는 "기다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죄악의 길을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그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애틋하게 바라는 하나님의 "기다림"이 장(章)마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기다림"이 주제가 된 다른 이야기, "노란 손수건"을 듣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 감동이 다시 새로워짐을 느꼈습니다.

 

어느 시골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에 한 사나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얼굴, 사람들을 피하는 듯한 무뚝뚝함,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 깊은 한숨....  함께 버스에 동승한 사람들은 그로부터 그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집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가는 길임을...  "출감하기 전 그녀에게 편지를 했어요.  몇 년만에...  그녀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여 기다리고 있다면 집 앞 나뭇가지에 노란 손수건을 하나 걸어 놓으라고 했지요.  만일 노란 손수건이 없다면 난 그곳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요."  그의 고향이 가까워 오면서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가슴을 조였습니다.  노란 손수건이 없으면 어쩌나...  당사자인 그 사나이는 애인의 집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더욱 더 창 밖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소리에 머리를 들었습니다.  창 밖, 참나무 가지에 노란 손수건이 휘날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셋, 넷... 놀랍게도 수 십 개의 노란 손수건들이 참나무 가지들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의 귀향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뭇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을 달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당신 품으로 돌아오기를...  그래야만 살 것이라고...  가슴 조이며 사랑하는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예레미야서 뿐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돌아오라!"는 외침이 성경 곳곳에서 울려 퍼집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의 노란 손수건이 장(章)마다 펄럭입니다." 


최목사님의 덧붙인 말이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성경을 펼 때마다 곳곳에서 펄럭이는 노란 손수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기다림이 노란 손수건의 이미지와 얽혀지며 새로운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펼치면 그곳엔 한 장의 노란 손수건이 아니라, 수 십, 아니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들이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 모든 나무들을 뒤덮고 있을 것입니다.  상수리나무, 무화과나무, 살구나무, 포도나무, 올리브 나무....... 나뭇가지들마다 노란 손수건들이 휘날립니다.  잃어버려진 사람들을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펄럭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 [누가복음 15장 20절, 24절]

 

 하나님을 떠난 자의 귀향은 아버지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입니다.

  

 

 

집을 떠난 H

 

 도망치는 심정으로 목표도 없이, 이렇다 하게 정해 놓은 곳도 없이, 그녀는 화급하게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와 친척들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쫓겨 그녀는 부랴부랴 아버지의 집을 뒤로 했습니다.  수년 전 짝사랑했었던 한 남학생이 멀리서 그녀를 부르고 있다는 망상이 그녀를 멀리 피닉스까지 가게 했습니다.

 머지 않아 몰고 가던 낡은 자동차에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수중에 있던 얼마 되지 않은 돈은 벌써 바닥이 난지 오래였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잘 곳도 없었습니다.  휘발유를 구걸하다 지쳐 차를 포기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빵과 우유를 구걸하고, 잠 잘 곳을 구걸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지 며칠 못되어 그녀는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두 주일을 버티었습니다.

"왜 집에 연락하지 않았나요?"
"집안 식구들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서 못했어요.  연락하면 나도 죽게 될 것 같았거든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H를 가장 안전한 곳인 집에서 갖은 위험이 산적한 삭막한 거리로 내몬 것은 그녀의 사고장애(Thought Disorder), 정신분열증이었습니다.  그녀에겐 집이 피해야 할 살해의 현장으로 인식되었었던 것입니다.

 H가 쫓기듯 거리를 방황하는 동안, 그녀의 부모들은 속이 숯덩이처럼 시꺼멓게 타들어 가도록 딸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고, 있을만한 모든 곳을 수소문해 보고, 갖가지 끔찍한 상상들로 소스라쳐지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딸을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안타까운 기다림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맸습니다. 

 

 

 

 H의 가출 행각은, 다행히도 경찰이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이송함으로써 일단락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약을 먹고 망상증세가 완화되어 H는 부모의 집에 되돌아 왔습니다.  이제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계신 집이 그녀에게 가장 안전한 곳임을....

 

 우리에게 영혼의 망상증세는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H처럼 부모의 사랑을 살의(殺意)로 왜곡하는 피해의식, 나의 최상의 안전지대를 살인이 일어난 살벌한 장소로 오해하는 사고 장애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환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노란 손수건을 나뭇가지마다 걸으시며 기다리시는 사랑 넘치는 하나님의 영상이 나의 왜곡된 신(神) 관념으로부터 나를 자유케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2004년.  사진: 2008년 Rosemead, California  이영순 (지혜의 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