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제가(主題歌)는 무엇입니까?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역대상 25장 3절]
어느날 아침 얼핏 라디오에서 어떤 노래를 들으면,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그 멜로디를 떠올리며 흥얼대곤 합니다.
계속 혀끝에 그 곡조가 맴돌고 있으니 그날의 주제가가 된 셈이지요.
영화음악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음악이 방송되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듣곤 했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겠지요.
영화의 주제가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또 주도해 갑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태리 영화 "길 La Strada"을 기억하십니까? 니노 로타가 작곡한 가슴에 파고드는 듯한 트럼펫의 선율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가끔 떠오를 정도로 뇌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멜로디를 들으면, 안소니 퀸이 분(扮)했던 주인공 쟘파노가 그랬듯이 정신이 박약했던 여주인공 "젤소미나"의 그 순수한 모습이 아프게 되살아나곤 합니다.
"길"이란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해 주는 곡, 아니 영화 자체의 무드를 창출해나가는 능동적인 주제가였습니다.
데이비드 린이 감독하고, 모리스 잘이 음악을 작곡했던 영화 "닥터 지바고"도 그 주제 음악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어린 유리 지바고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서글프게 들려지던 바라라이카의 애잔한 선율은, 관 위에 무겁게 흙이 덮이자 카메라가 위쪽으로 앵글을 잡으며 포플러 나뭇잎들이 사나운 바람에 무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 듯 격정적으로 연주되면서 어린 지바고의 앞날에 닥쳐올 온갖 격랑(激浪)들을 예고해 줍니다. 발레리노에서 지바고가 연인 라라를 떠나 보낼 때, 또 이 주제음악이 들려집니다. 사랑하는 이의 마차가 지평선 위에 한 점이 되어 설원(雪原)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안타깝게 지켜보는 지바고의 얼굴위로 라라의 테마가 넘실댑니다. 그 주제음악을 들으며, 관객들은 그것이 유리가 라라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임을 직감합니다.
위의 두 곡이 그렇듯, 제가 좋아했던 영화의 주제가들은 서정적이고, 엷은 슬픔의 색조가 낀 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Sun Rise, Sun Set", "Sound of Silence", "September Song", "A Shadow of Your Smile" 등등...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결국 나 자신의 일면들을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18번은 무슨 곡입니까?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나의 머릿속에서 줄곧 맴돌고 있는 생각들은 어떤 내용들입니까?
나의 혼잣말(Self-Talk)은 어떤 것들입니까? 내가 긴 세월을 두고 불러온 나의 주제가는 무엇입니까?
흔히 들을 수 있는 우리들의 주제가 중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너무 바빠서요." "돈이 없어요..." "살이 쪄서 걱정입니다." 장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사람들의 주제가 중엔 "몸이 아파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제게 상담을 받고 있는 현희라는 젊은 여성의 줄기찬 주제가는 "I have low self-esteem. 나는 자존감이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상담 시간마다 이 말을 적어도 대 여섯 번씩 되뇌곤 합니다. 그야말로 그녀의 주제가인 셈입니다. 자기 혼자 있을 때도 지칠 줄 모르고 이 말을 반복할 터이니, 이러한 스스로의 세뇌(洗腦)에 정복당하지 않을 이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비하의 주제곡...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주제가. 이 주제가들을 지난 20여년 간 불러 왔으니, 그녀가 열등감에 시달릴 것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너 믿은 대로 되리라. 네 말한 대로 되리라"는 성경말씀대로, 그녀는 그녀가 열등하다고 믿으며, 매일 그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강화시키는 삶을 살아왔기에 결국 그 믿음대로 열등의식에 짓눌린 병든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상담자로서 해주고 싶은 것은 그녀의 주제가를 바꾸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주제곡을 바꿔 불러라! 원망의 노래, 자조(自嘲)의 노래, 자기 연민의 노래, 불만과 한탄의 노래를 던져 버려라.
살아가는데 당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그 주제가를 더 이상 부르지 말라.
대신 그 노래를 감사의 노래로 바꾸어라. 하나님에 대한 감사,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노래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느껴도, 억지로라도, 지어서라도 감사를 찾으라. 노래를 바꾸지 않는 한 당신은 당신의 그 오랜 병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당신의 주제가를 바꾸어라!" 이 말은 또한 제가 제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합니다.
다윗왕은 시와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시인이며 탁월한 하프 연주자였던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할 사람들을 임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합니다(역대상 25장 1-31절).
본문은 세 번이나 거듭하여(1,2,3절),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아들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다고 강조합니다.
신령한 노래란 어떤 노래입니까? 3절에 보면,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라고 적고 있습니다.
신령한 노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도 신령한 노래의 내용은 감사와 찬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매일 매일의 주제가가 감사와 찬양이 되어야함을 봅니다.
다윗은 신령한 노래를 위하여 288명을 뽑았는데 그들은 모두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사람들"(역대상 25장 7절)이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불평과 섭섭함, 자기연민의 주제가에 길들여진 내가, 감사와 찬양, 격려의 곡조를 부르려고 하면, 소프라노가 베이스를 위한 곡을 부르는 것처럼 처음엔 어설프고 쑥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나의 주제가가 되기 위해서는, 성가대원들이 시간과 열정을 바쳐 찬양연습을 하며 그 곡을 익혀 자기의 노래로 소화시키듯이, 감사의 말을 연습하고 익혀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말들을 매일 읊조리고 다니며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나의 주제가(主題歌)를 바꾸기를 원합니다.
원망, 비난, 걱정, 자기혐오 대신에 감사, 찬양, 기쁨, 격려의 노래를 부르기 원합니다.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움을 구가(謳歌)하는 나무들과 꽃들과 강물을 주신 주님께,
숨쉴 수 있는 대기와 안식할 수 있는 공간을 주신 하나님께...
가족과 이웃과 믿음의 공동체를 허락하신 나의 아버지께...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주시고, 나의 앞날을 당신의 뜻대로 계획해 주시는 나의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를 올려 드립니다.
감사와 찬양이 영원한 나의 주제가가 되도록 주여, 당신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새벽에 쓰는 편지 제 26신 (2002년9월)에서
사진: 영화 "닥터 지바고", "길". 집 뜰에 핀 봄꽃들 2007년/2008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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