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스프링스 (Running Springs) 산속에 수선화
지난 4월 초, 초등부 교사들 수양회를 빅 베어(Big Bear Lake) 못 미처 위치한 러닝 스프링스(Running Springs)의 한 산속 수양관에서 가졌더랬습니다. 사실 이름이 수양관이지, 산 속에 지어진 자그마한 집이었습니다. 저는 일행보다 서너 시간 일찍 굽이굽이 산길을 운전하여 혼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비밀번호를 이리저리 돌려 어렵사리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에 감추어진 열쇠를 찾았습니다. 수양관의 문을 여니, 빈 집 냄새가 어둠 속에서 스며 나왔습니다. 그러나 집안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자그마한 꽃장식들이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배낭과 슬리핑백을 빈 집안에 들여놓은 후 혼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제법 차가와,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면서 소나무와 전나무가 어우러진 숲속길을 걸었습니다.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처럼 느껴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습니다. 길옆 언덕위로 띄엄띄엄 누군가의 별장들이 나무들 사이로 보이긴 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인적은 없었습니다.
갈림길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저는 그만 숨이 막히는 듯한 아름다움과 만났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수선화들이었습니다. 길옆 산등성이에 어림짐작하여 이백 송이가 넘을 것 같은 수선화들이 무리지어 피어있었습니다.
그 수선화들은 지난 3월 피워낸 저의 집 뜰에 수선화들보다 더 환상적이었습니다. 공해가 없는 산 속에서 차가운 정기를 먹고, 눈보라, 비바람 다 견디어낸 후 피어난 꽃이기 때문일까요? 노란 벨 모양의 수선화들이 짙은 초록색 이파리와 조화를 이루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즈의 "Daffodils(수선화)"란 시의 첫구절을 연상시키는 한 무리의 수선화들. 이렇게 자연스럽게 무리지어 피어난 수선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오, 내 사랑 수선화야!" 예기치 못했던 수선화와의 만남 때문에 기쁨으로 마음이 하나 가득 부풀러 올랐습니다.
언덕으로 올라가, 가까이 가서 꽃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살그머니 꽃잎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차를 몰고 언덕길을 올라왔습니다. 그 드라이브 웨이의 주인이었습니다.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요!" 소리쳤더니, 주인은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원하면 꺾어가세요!" 그리고는 자기 집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넉넉한 사람인가? 그러나 꽃을 꺾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수선화는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겠기에... 1년만에 모처럼 피어난 꽃인데 꺾어버리면, 금방 시들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 초등부 수양회의 예배를 위해 수선화 몇 송이를 가져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선화들도 자신들이 예배를 돕기 위해 꺾여졌다면,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헌신으로 더 귀한 예배가 될 수 있다면, 이 수선화들도 보람을 느끼지 않겠는가? 조심스럽게 예닐곱 송이의 수선화들을 꺾어 들었습니다. 제가 말씀을 인도할 때, 이 수선화들이 친구처럼, 서포터처럼 제게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었습니다. 손에 든 수선화들 때문에 산장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산장에 들어와 유리컵에 그 꽃들을 꽂았습니다. 그들의 미소는 밝고 풍요로웠습니다. 수선화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맑은 미소가 제게로 전이되어 저도 덩달아 미소짓게 되었습니다. 혼자 낯선 산 속 집에서 침묵 속에 세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 것은 수선화가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일까요? 그날 저녁 내내 일곱 송이의 황금빛 수선화들은 저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해가 지면서부터 지척을 구분할 수 없는 안개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산을 향해 올라오던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산 속의 밤안개 때문에 이 기도원을 찿느라고 애를 먹기도 했지만, 모두들 무사히 도착하여 계획된 순서들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밤 동안, 안개가 우박으로 바뀌고, 우박이 싸라기눈으로 변하더니, 급기야는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차 위에 5cm 두께의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산도 나무도 도로도 온통 하양으로 채색되었습니다. 다행히 눈은 걷혀 있었고,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들고 있었습니다. 어제 본 언덕 위에 수선화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걸어 내려가 예의 수선화들이 피어 있던 언덕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앗뿔사!, 간밤 이곳을 스치고 간 매서운 눈보라 때문인가? 수선화 꽃들이 하나같이 얼어 버렸습니다. 얼어버린 노란 꽃송이들이 한결같이 눈 속에 고개를 푹 박고 있었습니다. 패잔병처럼... 어제 오후, 이 곳에 울려퍼지던 꽃들의 그 아름다운 합창소리는 꿈처럼 오고 간데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여운이 되어 남았습니다. 오늘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름다움은 순간이구나...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니로구나...
인간의 운명이란 것도 이런 것일까?
늘 내일이 오리라 내일을 기약하며 살지만, 그 내일이란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내일 때문에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
오늘 하루가 오늘로서 살아있도록, 활짝 충만의 꽃을 피우도록 하라.
언덕 위의 수선화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눈 속에 묻힌 나의 사랑, 수선화야! 너희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기뻤었는지 아니? 너희들 모습을 되새겨보며 적어도 한 달은 기쁨으로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비록 눈 속에 얼어버렸지만, 너희들의 환한 미소와 한들거리며 노래하던 모습은 내 가슴에 두고두고 그대로 살아있을 것임을 알고 있는지? 내 마음, 추억의 사진첩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기에 그대들은 죽었지만, 사실은 영원히 살아있는 것임을...
내년 이맘 때 쯤 행여 이곳을 들를 수 있어, 새로 피어난 수선화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 기쁨이 어떠할까? 물론 부활한 나사로를 만나는 그 누이들의 기쁨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기쁨의 색깔이 비슷할 것 같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안에서 이 영 순 드림
글: 2003년 5월,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4신에서.
사진: 2005년 3월 California 안자 보레고 스프링스에서 쥴리앙으로 가는 길(Highway 79)에서 만난 수선화.
'새벽에 쓰는 편지 > 계절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팔꽃-위를 향한 열정 (0) | 2009.07.27 |
---|---|
숲속 눈길을 걸으며 (0) | 2009.02.16 |
라호야 비치에서 (0) | 2008.07.14 |
파피(Poppy)에게 배우는 지혜 (0) | 2008.04.14 |
프리지어꽃처럼 (0) | 2008.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