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Tyre): 물 속에 잠긴 한 여름밤의 꿈
두로: 물 속에 잠긴 한 여름밤의 꿈
시돈에서 40km 남쪽에 위치한 두로에 도착하니 비가 완전히 걷히고 햇빛이 찬란하다. 바닷가에 팜트리들이 시원스럽다.
두로는 고대 페니키아(성서명: 베니게)의 주도(主都)로, 지중해를 주름잡는 무역의 중심지로 자주물감 산업과 조선사업, 카르타고를 비롯한 중동 각국과의 해상무역으로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의 꽃을 피웠던 역사적인 상업도시이다.
세라큐레스란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개의 입에 붉은 물감을 보고 처음으로 자주색 물감을 발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자주색 물감의 값은 금의 가격과도 같았다고 하니, 성경이 특별히 루디아를 두아빌라 성(터키)에서 자주장사를 했다고 기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해상의 여왕과도 같았던 두로는 경제적인 풍요속에 주변 지중해의 많은 섬들을 식민지로 거느리는 부유한 왕국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두로의 이러한 번영은 열강의 야욕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어, 이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는 그 자신 끊임없는 침입과 찬탈의 목표물이 되곤 했다.
옛 두로의 유적지를 방문한다. 로마인들이 두로에 남긴 자취들이다.
로마제국은 그들의 세력이 머무는 곳마다. 로마 스타일의 도시를 건설해 놓는다.
에베소에서, 파묵칼레에서 또 레바논 두로에서 이러한 로마시대의 유적지를 만났다.
개선문과 돌로 포장된 로마의 길, 로마인들의 목욕탕, 원형극장과 히포드럼 등등.
두로의 네크로폴리스(죽음의 성읍)
두로 성읍의 동편에서 서편으로 이어지는 로마 가도(街道)를 따라 두로의 네크로폴리스가 놓여 있다. 옛 공동묘지이다.
밝은 햇빛 아래 무심하게 핀 봄의 들꽃들이 공동묘지 석관들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감추어준다.
터키 파묵칼레 근처 히에라 폴리스에서도 성 앞에 네크로폴리스를 보았었는데... 으레 도시가 시작되는 성문 앞에 공동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당시 로마의 관습이었던 모양이다.
이 공동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네크로폴리스로, 로마와 비잔틴 시대 (AD 2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유적이다. 멋지게 장식된 거창한 돌관들. 어떤 석관들에는 고인의 이름과 직업을 새겨놓기도 했다.
대리석으로 된 여러 개의 석관들도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관들이 그리스나 소아시아에서 직수입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부유층의 무덤들이다. 그러기에 이곳의 무덤들은 귀중품을 훔치려는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왔다.
그 당시, 시체들의 입에 동전을 물려주는 풍습이 있었다. 저승으로 가려면 망각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때 사용할 뱃삯이라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동전들이 도굴꾼들의 유혹물이 된 것이다. 이것을 훔치느라고 도적들이 공동묘지에 와서 동전과 함께 다른 귀중품들도 가져갔다.
뱃삯을 도둑맞은 망인들은 어찌되었을까? 배를 태워주지 않아 저승에도 갈 수 없어 떠도는 혼령이 되었을까?
개선문
네크로폴리스가 끝나는 곳에 20m 높이의 아치가 있는 개선문을 통과한다. 로마황제 세브러스 셉티무스를 기리기 위해 B.C. 2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히포드럼
개선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같은 시기에 이룩된 고대 로마의 거대한 전차경기장 히포드럼이 펼쳐진다. 두로의 히포드럼은 그 길이가 480m이고 폭이 160m이다.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잘 보전된 전차경기장이다. 경기장 양편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돌 대야를 7바퀴 도는 경주가 벌어졌다고 한다.
거석들로 쌓아올려진 관중석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어 가파른 돌 좌석에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옛 로마의 도시국가가 된 두로의 시민처럼 그때의 흥분과 함성들을 떠올려본다.
이곳 히포드럼은 오늘날 국제적인 페스티발, 음악회들이 열리는 공연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글, 사진: 이영순 지혜의 샘 블로그http://blog.daum.net/wisdomwell
2006년 3월.
레바논 Tyre(두로)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