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계절의 향기

나팔꽃-위를 향한 열정

wisdomwell 2009. 7. 27. 06:57

 

 

 


 나팔꽃 - 위를 향한 열정

 

 

 노발리스의 "푸른 꽃"을 연상시키는 연한 하늘색 나팔꽃 두 송이가 막 퍼지는 아침 햇살과 함께 그 오므렸던 입을 펴고 피어나기 시작한다.

 

 

 

 

  지난 5월의 어느 날, 뒤늦게 나팔꽃 씨앗들을 시험삼아 심었었는데,

한 보름쯤 지났을까?

싹이 나오더니 어느 틈에 덩굴을 내어 의지하여 올라갈 곳을 찾는다. 

 

 

줄을 매주는 것도 일이어서 그냥 아이비 늘어진 화분 옆에 놓아두었더니 아이비 줄기들에 의지하며 위로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나팔꽃은 땅에 미련을 갖지 않고 그저 위쪽으로만 향한다.  밑을 보면 아무런 잔가지도 없이 달랑 한 줄. 

너무도 조금 땅을 차지한다.  밑줄기는 말라서 곧 시들어버릴 듯 빈약한데 그 위의 잎들과 덩굴들은 무성하다. 

 

이토록 작은 땅에 뿌리박고 있는데, 위쪽에서는 그렇게 무성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그러나 나팔꽃의 관심은 오로지 위에만 있다. 

 

끊임없이 위로 뻗어갈 수 있기 위해 무언가 딛고 갈 수 있는 것아 없을까 힘껏 덩굴을 뻗는다. 

 

옆에 있는 것이 버겐빌라의 가지든, 제라늄의 가지든 상관없이

일단 손에 닿는 것이 있으면 힘을 뻗쳐 그것들을 연약한 팔로 휘어 감는다. 

 

  

 

 

 

그러나 나팔꽃은 그것들에 안주하진 않는다.  단지 거쳐 지나가는 버팀목일 뿐이다. 

 

가볍게 다른 가지든 철사든, 줄이든 휘어 감은 후에는 다시 위로 향해 갈 뿐이다. 

무언가 감을 것만 있다면, 나팔꽃 덩굴은 하늘로하늘로 치솟아 올라갈 것이다. 

그런 버팀목이 없기에 나팔꽃 덩굴은 허공 속에서 위를 갈망하며 바람에 이리저리 춤춘다.

 

  

 

 

펀(fern)이라는 양치류의 식물은 끝없이 문어발이 되어 온 땅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처럼, 정복할 수 있는 땅이란 땅은 다 차지하려는 듯 옆으로옆으로 돌진해 나간다. 

급기야는 철사같이 강한 뿌리로, 꽃밭의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릴 수 없도록 땅 속에서 옥죄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팔꽃은 애기 손만한 땅, 자신의 뿌리를 넣을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그의 관심은 저 위 하늘에 있기에...

 

  

  

 

 

 

 

 

 

  

나팔꽃의 위를 향한 열정이 내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나도 나팔꽃처럼, 영적으로 늘 위를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펀처럼, 이 땅에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소유에 집착하며, 옆으로옆으로 나를 뻗어가며 살고 있는가? 

 

혹시 그 뻗음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은 아닌지.... 

 

 늘 하늘을 향해 가는 나팔꽃이 마음에 든다. 

 

태양과 함께 피어났다가 태양과 함께 지는 나팔꽃.... 

 

단 하루를 꽃 피우는 단명의 여린 꽃이지만, 아침 일찍 시원스레 피어나 나팔을 분다. 

Morning Glory. 

 

그 이름에 걸맞게 아침의 영광, 떠오르는 태양을 찬양한다.

 

 

 


 어제 처음으로 나팔꽃이 꽃을 피웠다.  너무 늦게 심었기에 꽃을 볼 수 있으려나 반신반의했었는데, 드디어 꽃을 한 송이 피운 것이다.  진한 보라색 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주 연해 흰 색에 가까운 푸르스름한 꽃이었다.  내심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오늘 아침 어제의 꽃은 지고, 새롭게 두 송이의 꽃이 피었다.  그 푸른 색깔이, 꼭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의 빛깔처럼 은은하고 차분하다. 

 

 

 

 

 

 

 

파스텔 색조. 

그 차분한 빛깔 앞에,

만데빌라꽃들의 진한 분홍색들이 대조를 이루니 

푸른 나팔꽃이 더욱 기품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강렬한 빛깔로 시선을 끌진 않지만,

위를 향해 가다 피워낸 이 나팔꽃 속에서

나는 단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우아함과 만난다. 

 

다른 꽃들이 주지 못했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이란 시처럼 신비함이 담긴 꽃. 

나팔꽃이 싹을 낸 후에 아침마다 나는 그 자라남을 지켜본다. 

매일 아침 덩굴이 얼마나 올라갔나 점검해 보는 것이 일과가 되도록...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기에 나팔꽃의 개화는 내겐 큰 사건이 된다.  

내가 씨를 심은 꽃이기에... 

내가 물을 준 꽃이기에... 

내가 덩굴을 이리저리 옮겨주었던 꽃이기에 더 그랬으리라..  

 

주로 모종을 사서 꽃을 심었고,

씨를 직접 심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 나의 꽃이란 의식이 강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러한 것이리라.  하나님이 나의 태어남부터 나를 당신의 자녀로 작정하셨기에 나는 늘 하나님의 관심사이리라. 

당신의 자녀이기에...  그 자라남의 몸짓 하나하나가 귀한 것이리라... 

  

 

 호세아서(9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사막에서 포도열매를 보는 듯한 감격을 가지고, 농부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대하는 듯한 기쁨을 가지고 나를 대하신다고... 

 하나님의 사랑에 전율을 느낄 만큼 귀한 대목이 아닌가?
 

내가 씨를 심고, 물을 주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나는 나팔꽃의 개화에 환호작약하는데,

하물며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해낸 당신의 자녀인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기쁨은 어떠한 것이겠는가?

 

 

 

 

   창문을 여니, 오늘도 어김없이 나팔꽃 서너 송이가 싱그런 미소로 나의 아침을 밝혀준다. 

그리고 나는 이 여름 내내, 신선한 기쁨이 있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리라. 

나의 아침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나팔꽃들의 푸른 나팔 소리로 힘차게 시작될 것이기에...
 나팔꽃,  그대들로 인해 나의 여름은 행복합니다.

 

 

 

 

 

글:  2006년 9월, 새벽에 쓰는 편지 74신에서 (이영순)

사진: 2008년 7월/8월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