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피정의 집 (Serra Retreat Center)
세라 피정의 집 (Serra Retreat Center)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음에 들면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그 곳을 방문하여, 나의 삶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아니면 그저 정원 뜰을 거닐면서 하나님 주신 세계를 바라보고, 또 말씀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말리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 경사진 좁은 길이었는데 일단 세라 피정의 집에 들어서니 꽤 넓은 터 위에 수양관 건물이 단아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뒤쪽에 산을 등에 업고 앞으로는 말리부 푸른 바다가 눈 아래 펼쳐있는 언덕 위의 집. 세라 수양관은 원래 수녀원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말리부 시내의 집들도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산기슭을 이용하여 세워진 수녀원이기에 곳곳에 층계와 언덕길이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여 운치가 있었고,
정원엔 장미, 유칼립투스, 무궁화, 초롱꽃, 제라늄, 버겐빌라를 비롯 야생의 꽃들이 여름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분수들이 가는 물줄기를 뿜어대며 이 곳이 수녀원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있었던 사건들(14처)을 재현한 하얀 석고 조각품들이 산길을 따라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혼자 이 곳에 오면, 이 수난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 주님 당하신 고난의 순간들을 묵상해야지 다짐해 보았습니다.
곳곳에 놓여있는 한 사람이 앉을만한 작은 벤취들이 정겹게 눈에 들어왔는데, 홀로 말씀 읽으며 기도드리며 묵상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장소들이었습니다.
뜰을 거닐며, 수녀원의 고즈녁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화로워짐을 느꼈습니다.
아침, 말씀 묵상하면서 느헤미야 11장을 읽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한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성전과 성벽이 드디어 개축되고, 이제 할 일은, 완성된 성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관리하고, 또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업을 위해 자기 본래 기업을 떠나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살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비 뽑아, 혹은 자원하여 오게 된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성전과 성벽을 돌보는 책무를 맡게 됩니다.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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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향 땅에 돌아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길 원했을 터였습니다.
그러기에 성전 책무를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거하기로 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장황하게 성경에 열거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관리하고, 성벽을 방어하며 살기로 한 사람들...
본문 말씀은 내 마음의 성소를 생각게 합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의 성소를 관리하는 일이 남아 있다. 세라 수양관 처럼, 곳곳에 나무와 꽃을 심고, 제라늄 화분으로 계단을 장식하고, 쉬어갈 수 있도록 벤취를 놓아 두고, 작은 연못, 분수들을 만들어 누구라도 성소의 뜰을 거닐고 싶도록 내 내면의 정원을 관리해야다."고 생각해 봅니다.
건물만 우뚝선 삭막한 성소가 아니라, 뭔가 푸근한 분위기를 주는 곳. 절로 기도하고 싶고 명상에 잠기고픈 곳.
오솔길 끝나는 곳엔 토마스 킨케이드의 그림에 나오곤 하는 넝쿨 장미 올라간 하얀 정자도 있는 곳.
내 마음의 성소의 뜰이 이런 곳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철을 따라 이름 모르는 꽃이 웃음 짓는 곳. 새들이 찾아와 노래하는 곳.
가을엔 아스핀나무,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곳, 겨울엔 흰 눈과 전나무 향기로 가득 차는 곳. 작은 시냇물도 흐르는 정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 내면의 뜰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도록, 주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소서.
매일 매일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나의 성소를 사랑과 평화가 깃들인 곳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그 정원의 정적과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세라 피정의 집 뜰처럼,
내 마음의 정원을 개방하고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여 주소서."
글: 2000년 11월 새벽에 쓰는 편지 제 3신. 사진: 2009년 4월, Serra Retreat Center(California)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