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야 비치에서
말씀의 바닷물 속으로
라호야 비치. 아침 바닷가에서 밀려드는 바닷물을 만지며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들은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 가사처럼, 아침바다가 희망에 찬 바다임을 얘기해 줍니다. 똑같은 바다인데도 어제 저녁 해질녘의 뼈가 시린 듯 외로운 바다와 지금의 아침바다는 하늘과 땅처럼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합니다.
밀려들어온 바다 물결이 다시 바다로 밀려 나갈 때마다, 작은 물새들이 쫑쫑쫑... 먹이를 찾아 바다 쪽으로 바쁘게 내달립니다. 그러다가 파도가 밀려들어오면 다시 안쪽으로 그 바쁜 걸음을 재촉합니다. 반복되는 물새들의 앙증스런 몸짓이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싱그러운 아침 바람과 바다 내음. 바닷가에 찰랑이는 물결... 손을 덮는 바닷물의 감촉이 다정스럽습니다. 이 바다의 또 다른 끝이 동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밀려드는 파도 끝에서 신(神)의 손길이 만져지는 듯한 감각적인 기쁨도 경험해 봅니다.
홀로 여행하는 이들에게 자연은, 동반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내면의 깊이와 신비를 선물로 안겨 줍니다. 저만치 있던 자연이 한껏 클로즈 업 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글처럼 "이 세상에서 커다란 아름다움을 맛보는 체험은 항상 깊은 고독 체험과 불가사의한 끈으로 맺어져 있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려니 문득 대학시절 포스틱의 "젊은 지성인에게[Dear Mr. Brown]"라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들에 편지 형식을 빌어 답변한 책이었는데 제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에 의하면,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가지고 바닷물을 푸며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바다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은 극히 미세한 하나님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인간의 사고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 인간의 언어로는 그 하나님을 표현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이대 채플 시간에서 김흥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크신지 발가락 한 개만 보았어요." 내가 경험하는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새끼발가락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얼마나 귀한지요.
바닷가에서 어린아이가 만나는 바다는 극히 미세한 부분이지만, 이 바다의 경험이 어린아이에게 줄 선물은 그 누구도 하찮게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는 바닷물을 만지며 바다가 물이라는 것, 그 맛이 짜다는 것, 바다에는 조개가 살고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바다의 중요한 속성을 나름대로 터득합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이 바닷가의 아이가 바다에 대해 아는 것만큼 적은 것일지라도,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지요.
일단 바다와 친해진 아이들은 바다를 향한 그리움과 바다를 더 알아보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됩니다. "나는 또 다시 바다로 가야만 하리.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맨스필드의 싯귀처럼 열병을 앓듯 또 다시 바다로 가고 싶은 열망에 불타 오릅니다.
일엽편주(一葉片舟) 타고 그 망망한 대해로 나가 낚시질하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인 노인은 아마도 이 어린아이보다는 바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것입니다. 정어리 떼의 출몰 시기와 돌고래가 나오는 지역, 상어의 위협, 돌발적인 폭풍 등을 알고 있습니다. 더 깊이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쿠버 다이버들은 바다가 품고 있는 자원들을 알아내고 그 생태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특별한 장비를 가지고 바다 속 깊은 곳을 탐사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사랑하여 바다로 바다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바닷가에만 머물지 않고 저 멀리 그 분의 은혜의 바다로 노저어 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다양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I'll...show myself to him)" [요한복음 14장 21절]
죽을 때까지 항해한다 해도 못 다할 거대한 대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탐사의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새벽 미명, 책상 위에 바다처럼 성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주여, 바다를 사랑하여 바다의 신비를 탐사하는 스쿠버 다이버 처럼, 당신을 경험하고 당신을 알기 위해 말씀의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14신 (2001년 9월)
사진: 호주 시드니의 아침 바다. (2006년 12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