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아름다움
이번 고국여행 중에서 예기치 않게 이루어졌던 특별한 만남은 순전히 "새벽에 쓰는 편지"가 인연이 되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지난 수년, "새벽에 쓰는 편지"를 자신이 속한 성경공부 그룹과 매달 나누고 있었던 부산에 사는 친구 혜숙에게 저의 귀국을 이 메일로 알려주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의 귀국 기간 중에 그 그룹 회원들과 함께 동유럽 여행을 가게 되어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답신을 받았었는데, 이틀 후인가 다시 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룹의 회원들이 저를 부산으로 초대하기를 원한다면서 여행 떠나기 전 월요일에 그곳에서 만남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해운대 호텔에 묵으며 근처의 바다 경치도 감상하라면서...
이왕 가는 김에 바다만 볼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할 수 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제안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부탁하고 싶었었다고 답신을 보내 왔었습니다.
4월 26일 개통한 지 얼마 안된 서울-부산간 고속전철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회색빛으로 잔뜩 흐렸습니다. 2시간 50분만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과도, 또 마중 나온 혜숙과도 35년만의 해후였습니다. 친구는 약간의 잔주름을 제외하곤, 여고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해운대로 가는 길, 무겁게 드리웠던 검은 구름들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혜숙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부산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 또 성경공부 그룹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년도 넘게 함께 모여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말씀 안에서 구성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서로의 신앙을 돈독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모임이었습니다.
3년 전이던가, 혜숙이가 "새벽에 쓰는 편지"를 우연히 나의 대학동창인 루시를 통해 받게 되어 그 편지들을 복사하여 그룹에서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래로 매달 은혜롭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해운대에 소재한 한 회원의 아파트에서 모두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겨주는 모습들 속에서 진정으로 환대해주는 마음들이 느껴져 왔습니다. 정성스런 점심식사, 차대접, 식탁을 둘러싸고 나누어지는 차분하면서도 애교 섞인 부산사투리들이 정겹게 귓전을 울렸습니다.
창밖에 내다보이는 회색 바다엔, 줄곧 봄비가 희뿌옇게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말씀에만 집중하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고통에서 인격적 성숙으로"란 주제로 준비한 말씀을 약 2시간 동안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두 여덟 사람이 참석했는데, 그 중엔 개신교 권사님들, 집사님도 있었고, 제 친구처럼 가톨릭 성당에 나가는 이들, 또 착실한 원불교 신자도 있었습니다.
심각한 질병, 사별의 슬픔, 크고 작은 가정 안에서의 갈등 등이 그룹의 모임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나누어지며, 서로를 통해 참 위로를 받는 모습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참으로 끈끈한 그룹의 결속력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룹 가운데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있었고, 성령님께서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력이 넘치는 그룹에 소속되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그룹성원들이 부러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20절]
또 이 분들이 입을 열어 찬양을 시작했는데, 아름다운 목소리, 잘 훈련된 자연스런 화음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담긴 마음들이 한 곡, 한 곡 불려지는 찬송 속에서 전달되어와 감동적이었습니다. 헤어질 무렵엔, 제게도 정성스럽게 축복송을 불러주었습니다. 밖에는 오랜 동안 가물었던 땅에 계속 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후줄근하게 내리는 부산의 저녁,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먹는 물 좋은 대구매운탕의 따끈한 국물.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별미였습니다.
그룹의 호의로, 창을 통해 해운대 앞바다가 엿보이는 정갈한 호텔방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분들을 통해 제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고립은 속임을 낳는다. 주위에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없을 때 자신이 성숙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성숙함은 관계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에는 성경 말씀을 믿는 것,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믿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행동의 책임을 점검받을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더 빠르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와 나눌 때에 우리도 역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그날 밤, 최근에 읽었던 릭 워렌 목사의 글을 되새기며,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실제적인 모본(模本)을 통해 구체적으로 내게 보여주셨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쓰는 편지 제 46신 (2004년 5월)에서
사진: 2004년 5월. 부산 해운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