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계절의 향기

나의 창(窓)가에 찾아온 가을축제

wisdomwell 2007. 10. 17. 13:37

 

나의 창(窓)가에 찾아온 가을축제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Maple Tree)들 위에 아침햇살이 빛납니다. 스며드는 광선 속에 반짝이는 나뭇잎들... 청명한 아침 햇살과 가을 단풍의 가지각색 빛깔들이 교감하며 만들어 내는 빛의 실내악. 은혜, 은혜, 은혜입니다. 이제는 나의 친한 벗이 된 단풍나무들이 내가 사는 작은 집을 감싸 안으며, 열린 창을 통해 가을 소식을 전합니다. 가을 빛깔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도 유리창 안으로 스며듭니다.

 

해마다 11월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우리집의 가을 단풍은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며,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합니다. 축복입니다. 집은 보잘 것 없지만, 단풍나무들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축복이 있어서 제겐 천국입니다.

집을 둘러싸고 심겨진 단풍나무들을 세어보니 모두 열 여섯 그루였습니다. 내가 심지도 않았고 물을 주지도 않았고, 기르지도 않은 나무들. 늘 나의 눈 안에 들어오지만 나의 소유도 아닌 나무들인데.... 그 나무들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많이 입고 있어 감사합니다.

 

봄이면 막 돋아나오는 끈적끈적한 연한 신록들 속에 생명의 신비가 용솟음칩니다. 햇빛의 강도에 따라 다양한 녹색들이, 초록을 주제로 한 변주곡을 들려주며 살아있음을 노래합니다. 여름엔 그 무성하고 짙은 수천, 수만의 녹색 잎사귀들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며 남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여름햇살을 막아 줍니다. 피곤했던 눈이 이 잎들 위에 머물며 휴식을 누립니다. 가을이면,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시인의 시처럼, 빨강, 주홍, 노랑, 오렌지, 자주, 초록 등등의 색깔들이 어울어져 단풍의 대 향연을 벌입니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은 내 인생의 가을을 준비하게 해줍니다.

그리도 많았던 잎들이 낙엽이 되어 모두 떨어져 내리면, 우리집 메이플 트리들은 화려했던 옷들을 모두 벗어버린 채 겸허함으로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냅니다. 벌거벗은 겨울나무들은 나에게, 겸손과 솔직함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줍니다. 겨울엔 그 동안 나뭇잎들에 가리워져 있었던 노을진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해가 뜨기 전, 장미빛 아침 노을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이 되어 서있는 잎을 벗은 나무들의 숙연한 모습. 겨울나무들이 내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단풍나무들에게 겨울은 결코 외로운 계절은 아닙니다. 씨들이 영그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싸라기가 내리듯, 단풍나무 씨들이 눈처럼 떨어지면, 어디서 왔는지 크고 작은 새떼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침식사를 하는 장관을 연출하곤 합니다. 영화 "바베트의 향연"처럼, 단풍나무들은 새들에게 진수성찬의 식탁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나 역시 새들처럼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고 나무들이 제공해주는 혜택을 누립니다. 이 모든 자연의 선물이 매년 공짜로 주어집니다.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집 나무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그냥, 애정 어린 마음으로, 경이의 눈으로 자기들을 바라봐 달라는 것뿐입니다. 때때로 "와아!" 감탄사를 발하면서 좋아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창밖,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정겨운 가을나무들을 봅니다. 베란다를 둘러 싼 단풍잎들이 미풍에 흔들리며, 내가 있는 방안을 기웃거립니다. 동편 창을 통해 막 퍼지기 시작한 햇살이 나의 책상 위에 내려앉습니다. 단풍을 만졌기 때문일까? 아침 햇살은 단풍잎처럼 나의 책상까지 발그스레 물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분의 축복이 이 가을 내내 나의 나무들처럼 나를 감싸줍니다. Delightful!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이 하나가득 채워집니다. 감사의 달 11월, 한 달 내내 나는 나의 창가에서 하나님께서 분에 넘치게 베풀어주시는 단풍의 향연을 만끽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오리나무와 백양나무 잎들에 대한 친화감 때문에 거의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러나 호수나 내 마음이나 잔물결만 일뿐 거칠어지지는 않는다. ..... 내가 사계절을 벗삼아 그 우정을 즐기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것도 삶을 짐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52신, 200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