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자가 누리리라-매화꽃 동산에서
누리는 자가 누리리라
우리들 머리 위엔 누구에게나 똑같이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오직 눈을 들어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자만이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고 있다면, 그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하늘의 청명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무겁게 커튼을 드리우고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둠뿐입니다. 나의 마음이 어둠 속에 닫혀 있는 한, 찬란한 태양빛이 가져다주는 생의 환희를, 나무와 숲과 꽃이 뿜어내는 향취를, 시내와 새들이 노래하는 생의 찬가를, 싱그러운 바람의 감촉과 따뜻한 햇볕이 주는 다감한 손길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 누릴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모두가 원하기만 하면 볼 수 있도록 봄을 재촉하는 매화꽃들이 그 가지마다 초롱초롱 매달려 있는데, 오직 보는 자만이 그 매화를 봅니다. 이른봄의 그 꽃가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인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그것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자만이 기쁨에 잠깁니다. 감사에 젖습니다. 그리고 충만한 순간, 풍성한 하루를 삽니다.
주님 주신 것들이 이렇게 세상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온 천하에 가득한데 그것들은 오직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만 남습니다. 하나님 주신 것들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능력, 그것들을 누릴 수 있어 기쁨이 있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아무리 예쁜 꽃도 볼 마음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진실이 있으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됩니다." -최일도/마음열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철따라 새롭게 옷 입는 공원이 있고 그곳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지금 공원은.... 매화꽃이 봄을 예고합니다. 누가 와서 보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은 채 그렇게 화창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젯밤 산타아나 강풍이 몰아쳤습니다. 밤새 나뭇가지들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꿈결에 들었기에, 한창 피어나고 있는 여리디 여린 매화꽃들이 모두 떨어져 버렸겠지 아쉬운 마음으로 공원 매화 동산에 갔었는데 오! 감사합니다. 꽃들이 그저 피어 있었습니다. 먼저 봉오리를 열었던 꽃잎들이 하얀 팝콘을 뿌려 놓은 것처럼 나무 밑에 떨어져 있었지만, 가지엔 새로운 꽃들이 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봉오리들도 가지에 꼭 붙어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기특한가? 바로 그 뒤쪽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들은 그 굵은 가지들이 강풍에 못이겨 찢기고 꺾어진 채 길 위에 뒹굴고 있는데, 이 가느다란 매화 가지들에 붙은 여리고 작은 봉오리들은 그 거센 바람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굳세게 가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하얀 미소로 그 꽃잎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진홍, 연한 분홍, 하얀색 매화들이 어우러져 길 양쪽에 늘어서서 아치를 만든 오솔길, 살랑이는 바람 속에 흩날리는 작은 꽃잎들을 눈처럼 맞으며 꽃길을 걷노라니, 오스카 시상식장 입구의 레드 카펫 위를 걷고 있는 스타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환영 인파 대신 새하얗게, 또 핑크 빛으로 가지를 덮은 매화꽃들이 기쁨으로 나를 맞으며 축복해줍니다. 꽃들의 시냇물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싶습니다. Delightful! 갑자기 등불을 밝힌 것처럼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리고 아쉬워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동산이 이곳에 있어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건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인데도 누리는 사람만이 이것을 누립니다.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광고를 해야 하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아직도 매화꽃이 피고 있다고. 늦게 핀 분홍 매화꽃들이 마치 무릉도원처럼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에 오라고... 그리고 즐기라고...."
아침 공원을 산책하며, 이 공원이 나의 일상이 되어 있음을 새삼 감사드리게 됩니다. 지난 12월 돌배나무들의 그 고혹적인 단풍 풍경을 즐겼었는데, 1월은 매화 꽃동산 때문에 아침 시간들이 풍요합니다. 겨울비가 내리고 봄기운이 감싸면, 곧 이 돌배나무들은 나뭇가지마다 새하얀 꽃들을 피워내리라.... 3, 4월이 되면, 공원 산등성에 펼쳐진 나의 산책로는 노란 갓꽃들로 온통 덮여버려 전혀 다른 봄 세상을 연출할 것입니다.
성급한 장다리꽃들이 벌써부터 연보라빛으로 언덕을 수놓기 시작했고, 싱싱한 갓들이 파릇파릇 길가에 돋아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언덕에 오르면서 만나게 되는 서편 하늘로 기우는 달과 떠오르는 태양... 그리고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도회의 새벽 불빛. 아침빛의 퍼짐과 함께 드높아지는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 그 속을 걷는 즐거움.
일상 속에 자리한 이 공원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기쁨을 안겨 주고 있었는지.... 새삼 이 도심 속의 공원이 베풀어주는 그 숱한 혜택에 감사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지난 주, 제가 수년 째 상담을 하고 있는 K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야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동안은 아무리 좋은 경치를 보아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었어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억울하고 원통한 생각들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마치 과거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듯이.... 그래서 기쁨도 감사도 없었지요.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그런데 요즈음, 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예요."
지난 연말, 그녀는 상담실에서 나오며, 거리에 불빛이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말 한 마디로 K의 우울증이 많이 감소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는 눈. 그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어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지천으로 세상에 널려 있는데... 청명한 하늘처럼, 빛나는 태양처럼, 공원의 매화처럼 모두에게 똑같이 공짜로 주어지고 있는데... 오직 볼 수 있는 자만이 그 은혜를 볼 것입니다. 그리고 누리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중심성이라는 쇠사슬에 얽매여, 내 생각과 내 자아 속으로만 파고들지 말고.... 눈을 들어 나의 일상 속에 깃들여 있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67신(2006년 2월)에서
사진: Rowland Heights 소재, Schbarum Park의 매화동산. 2006년 2월.